하나님을 앞세워 살라

[김옥순 수녀님 성화 "베드로와 예수]



본문말씀 : 나훔 2장 11-13절
11 이제 사자의 굴이 어디냐 젊은 사자가 먹을 곳이 어디냐 전에는 수사자 암사자가 그 새끼 사자와 함께 거기서 다니되 그것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었으며 12 수사자가 그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충분히 찢고 그의 암사자들을 위하여 움켜 사냥한 것으로 그 굴을 채웠고 찢은 것으로 그 구멍을 채웠었도다 13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 대적이 되어 네 병거들을 불살라 연기가 되게 하고 네 젊은 사자들을 칼로 멸할 것이며 내가 또 네 노략한 것을 땅에서 끊으리니 네 파견자의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힘을 악용하지 말라 >

 <나훔> 2장에는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가 바벨론 연합군에게 패배하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왜 니느웨가 비참하게 패망했는가? 사자처럼 힘이 있었지만 그 힘으로 남들을 잔인하게 대하고 더 많이 취하려고 욕심을 부렸기 때문이다(11-12절). 힘을 악용하면 자신도 상당한 대가를 치른다는 암시다. 힘을 추구하되 힘이 생기면 필요한 곳에 힘을 보태려고 하라. 힘은 행사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선용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힘이 있다면 힘이 없는 사람을 늘 살펴서 아래로 미끄러지는 사람의 손을 잡아끌어 올려주라.

 많은 사람이 힘을 악용하는 사람 때문에 상처를 입고 불안에 떤다. 평화롭게 살고 싶어도 힘을 악용하는 사람 때문에 평화가 깨진다. 찬란한 비전도 힘 앞에서 맥을 못 출 때가 많다. 그때 사람들은 힘이 없음을 원망하다가 때로는 하나님까지 원망한다. 힘에 의해 압도당하면 비전이 퇴색되고 그저 살아남기만 해도 좋겠다는 굴종적인 태도가 생긴다. 인간의 역사는 그런 역사의 반복이다.

 담대한 사람도 내면에는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움은 때로 나를 잘못된 곳으로 이끌고 좋은 일을 시도하지 못하게 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마음으로 살기보다 간신히 연명하게 만든다. 힘 있는 사람에게서 불의한 일을 계속 당하면 공포가 내재화되고 공포의 기억은 비전을 향한 발걸음을 약화시킨다. 힘을 추구하는 핵심 목적 중 하나가 다른 힘으로부터 더 이상 상처 입는 기억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어릴 때 폭력과 억압을 심하게 경험하면 발걸음이 늘 위축된 상태가 된다. 형식적인 믿음은 위축된 발걸음을 희망찬 발걸음으로 변화시키기 힘들다. 하나님의 손길은 왠지 멀리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굳게 붙잡지 않으면 내면 깊은 곳의 위축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이 사람의 약함과 한계다. 힘을 악용하지도 말고 힘을 악용하는 사람 앞에서 너무 위축되거나 흔들리지 말라. 하나님을 꼭 붙들면 하나님이 나를 힘 있게 하시거나 내 대신 힘 있게 싸워주실 것이다.

< 하나님을 앞세워 살라 >

 힘이 없어도 힘없게 살지 말라. 힘이 선용되는 미래를 꿈꾸고 힘이 생기면 그 힘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르며 영혼 구원과 영혼 변화에 보탬이 되라. 성도는 하나님이 힘 있게 도우심으로 세상의 어떤 힘도 극복할 수 있다. 불의한 일을 많이 겪어도 힘 있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고 좌절하지 말라. 하나님을 앞세워 나아가면 하나님이 어떤 힘 있는 대적도 능히 물리치게 하신다. 앗수르의 멸망은 바벨론 연합군에 의해서가 아니라 배후에서 하나님이 앗수르의 대적이 되어 이루신 일이었다(13절).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 진실한 성도에게 그 손길은 늘 선한 손길로 나타나기에 하나님 우선순위의 삶처럼 복된 삶은 없다. 위대한 인물에게 있는 공통적인 삶의 자세는 우선순위가 분명한 것이다.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잘 구분하면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앞세워 살겠다고 다짐하라.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믿음에 하나님의 축복이 담겨지기 힘들다. 위대함이란 하나님을 늘 먼저 생각하는 태도다.

 환란이 닥치고 실패를 당해도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면 수지맞는 인생이 펼쳐진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본심을 확신하면 하나님을 앞세우는 삶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심을 모르면 하나님을 오래 믿어도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이뤄지지 않는다. 하나님께 합한 사람이란 하나님과 마음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본심은 내게 은혜를 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로부터 무엇을 받는 데 관심이 없으시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하나님은 주려는 생각으로 늘 가득 차 있다. 사람은 받으며 사는 존재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더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 받았다는 감사의 표시다. 하나님은 나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 두신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시다. 내게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길도 하나님 우선순위의 삶을 통해 더 은혜 받는 길이다. 주일은 어떤 날인가? 일주일을 승리하도록 하나님 우선순위의 삶을 다짐하며 더 큰 은혜를 예비하는 날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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