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라





본문말씀 : 나훔 1장 7-8절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 하나님을 앞세워 살라 >

 예수님의 놀라운 기적과 가르침을 대하고 많은 군중들이 수군거렸다.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그 수군거림을 듣고 기득권에 위협을 느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인들을 보냈다. 하인들이 가보니까 무리 중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참 선지자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고 했다. 그때 일부 사람들은 반박거리가 없자 지역성을 부각시켜 말했다.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

 그때 바리새인 중 하나인 니고데모가 말했다.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사람을 무조건 거부하지 말고 사람됨과 언행을 보고 판단하자는 말이었다. 그 바른 말에 나머지 바리새인들은 할 말을 잃고 창피스런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지역성을 부각해 자신들의 주장을 합리화시켰다.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요 7:52).”

 성경에는 니고데모의 출신지가 나오지 않지만 그가 갈릴리 출신이어서 예수님을 동향 출신이라고 옹호한 것이 아니라 정의와 양심의 소리를 따라 말한 것이었다. 인간 사회에는 지역성을 부각해 일반화의 오류로 자기 정당성을 변호하고 자기편을 만들려는 모습이 있다. 예를 들어 “남자는 다 늑대야. 여자는 다 여우야.”라는 식의 말이 일반화의 전형적인 말이다. 내가 상대 이성에게 상처를 받았다고 상대 이성을 다 늑대나 여우라고 말할 권리는 없다. 일반화의 오류는 양심의 혼란과 삶의 무지를 낳는다.

 바리새인들이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갈릴리에서 선지자가 많이 나왔다. 엘리야, 엘리사, 아모스, 호세야, 요나, 나훔 등이 갈릴리나 그 인근 출신의 선지자였다. 결국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편견으로 메시야를 거부하는 최대 잘못을 저질렀다. 크고 바른 인물이 되려면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사람과 상황을 보는 겸손하고 성숙한 자세를 가지라.

 왜 예루살렘의 권력층 사람들이 갈릴리를 안 좋게 여겼는가? 예루살렘 중심의 국가관에서 갈릴리는 이방 지역과 경계한 변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역에서도 왜 선지자가 많이 나올 수 있었는가? 하나님이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을 앞세워 살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앞세워 살면 누구든지 자기 한계를 극복하고 인물이 될 수 있다. 나훔이 이방인 문화가 짙게 드리워진 환경에서도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선지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하나님을 앞세워 살았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라 >

 나훔이 하나님을 앞세워 살았다는 사실은 <나훔>의 서론 부분만 봐도 쉽게 파악된다. 하나님을 앞세워 살기 위한 기초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아야 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훔>은 니느웨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 담긴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다(1절). 엘고스는 오늘날 이라크 모술 인근의 알 코스 골짜기를 지칭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갈릴리 지역의 작은 마을이란 주장이 더 설득력이 있다.

 나훔은 묵시의 글을 기록하면서 가장 먼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 언급했다. 그리고 처음에는 하나님을 두려운 분으로 묘사했지만 곧 이어 대적에게는 무서운 하나님이지만 하나님의 품을 찾는 이들에게는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극적인 반전의 말씀을 전한다(7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감사하라. 하나님은 의인에게는 의로우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시고 선인에게는 선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신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잘 알되 무엇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은 한때만 주어지지 않고 일생을 통해 주어진다. 능력이란 고난 중에도 미음속의 노래가 있는 것이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기에 앞날과 앞길에 대한 든든한 믿음을 가지고 고요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는 능력이 어떤 능력보다 위대한 능력이다. 진짜 문제는 환경의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다. 문제가 있는 것보다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다. 반대로 문제가 없는 것보다 믿음이 있는 것이 복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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