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승리를 추구하라





본문말씀 : 미가 5장 4-8절
4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5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6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7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8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 평화를 추구하라 >

 본문 4절에서 ‘목축한다’는 표현은 ‘평화롭게 양떼를 목양한다’는 표현이다. 즉 메시야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평화롭게 다스리게 될 것이고 그 평화가 확산되어 세상 끝까지 미치게 될 것이란 말씀이다. 본문 5절에 나오는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이란 표현은 이단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이단들은 이런 표현을 보면 명단을 열거하며 신령한 척 행세한다. 그러나 그 표현은 히브리인의 문학적 표현으로서 평강의 왕 메시야가 소수의 인물들을 일으켜 앗수르를 치고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말씀이다(6절).

 예수님 당시는 팩스로마나(로마에 의한 평화) 시대였다. 그 평화는 정치적인 억압과 경제적인 예속을 통한 거짓 평화였다. 참된 평화는 오직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담을 허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영혼의 담이 무너지고 남을 위한 여백의 삶이 생긴다. 사람에게 나눔이 없는 것은 시간과 물질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과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곳을 보면 화려한 도시에는 담이 높지만 초라한 마을에는 담이 낮다. 담장의 높이는 불안의 깊이와 비례한다. 요즘은 곳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점차 고급 아파트나 중요한 건물에는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는 두께 1미터, 높이 8미터의 거대한 시멘트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그런 각종 분리의 장벽들을 허무는 데 앞장서라.

 예수님은 몸을 깨뜨리심으로 벽을 깨뜨리심으로 소통의 통로가 되셨고 상대의 아름다움과 장점을 보는 영안을 열어주셨다. 공기 중의 영양소를 땅에 녹아지게 해서 땅을 기름지고 부드럽게 만드는 이슬처럼 예수님은 영혼을 기름지고 부드럽게 만드셨다. 하나님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하나 되게 하는 님’이시다. 세상은 나누지만 예수님은 하나 되게 한다. 성도가 예수님을 믿는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는 분리의 장벽을 허무는 초석이 되기 위해서다.

< 승리를 추구하라 >

 본문 7-8절에 언급된 ‘야곱의 남은 자’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뜻한다. 그들이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이나 풀 위에 내리는 단비처럼 사람 혹은 인생을 기다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 ‘짐승 중의 사자’나 ‘양떼들 중의 젊은 사자’처럼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강한 존재가 되어 모든 대적들을 물리칠 것이다. 그것은 메시야가 최종 승리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리더는 목자도 되고 동시에 사자도 되어야 한다. 리더에게 목자의 모습이 없이 사자의 모습만 있다면 공동체가 전진하는 것 같지만 후퇴한다. 반대로 리더에게 사자의 모습이 없이 목자의 모습만 있다면 공동체가 질서를 잃고 혼돈에 빠진다. 리더는 유연함과 단호함을 겸비하고 사랑과 공의를 겸비하고 은혜와 심판을 겸비해야 한다. 리더에게 공의의 심판을 행하는 사자의 모습이 나타날 때 무조건 “왜 저 리더가 저렇게 사랑도 없어?”라고 하지 말라. 그것은 사랑의 오해 및 자기 사랑의 과시로 보일 수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때로는 단호하게 공의로 심판하신다. 하나님이 공의대로 무섭게 심판하신다고 사랑이 없는 분인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의 심판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내포된 것을 아는 사람이 참된 성도다. 왜 하나님이 잠시 문제와 패배도 허락하고 때로는 외면도 하시는가?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기 위해서다.

 옛날 인본적인 무신론자들은 지진이나 홍수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내가 이런 잔인한 하나님은 어떻게 믿는가?”라고 했었다. 그들처럼 성도가 고난과 문제와 외면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떠나면 그것은 “하나님! 더 이상 당신은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 아닙니다.”라는 자기 의에 빠진 교만한 선언이 된다. 고난과 문제와 외면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고 감사를 잃지 않고 제 자리를 고수하는 사람이 결국 승리의 역사를 체험할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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