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기쁨을 바라면서 Wishing For Joy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1서 1:2, 4, 새번역)
We proclaim to you the eternal life, which . . . has appeared to us. . . . We write this to make our joy complete. [ 1 JOHN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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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니 웨어는 자신의 블로그 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후회”에 말기 환자 들을 돌보는 간호사로서 들었던 여러가지 후회를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 중에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친구들과 계속 연락하면서 지냈더라면”이라는 후회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좀 더 행복하게 살았더라면”이라는 후회였습니다.
“우리 자신이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직면하는 것이야말로 기쁨으로 가득 찬 삶을 살 수 있는 훌륭한 도구”라고 웨어는 말합니다. 좋은 조언입니다. 과연 그런 기쁨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궁극적인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젊은 시절, 요한 사도는 삶의 목적에 대해 왜곡된 관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와 그의 형제는 예수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요청했습니다(마가복음 10:37). 그들의 요청은 제자들 사이에 불화만 일으켰을 뿐이었습니다(41절).
수십 년 후, 요한은 예수님 안에서 사랑과 공동체에 대해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이 모든 것의 기초 라고 여기고,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라고 기록 했습니다(요한1서 1:2, 새번역). 요한은 “여러분도 우리와 교제를 갖도록 하기 위해” (3절,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하면서, 이어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쓰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3-4절)고 덧붙였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후회를 오직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온전한 기쁨으로 바꾸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Life can bring regrets. Jesus invites us to exchange them for the complete joy only He can g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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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enly Father, I regret __________________. Please step into this pain in my life. I need the joy that comes from being united with You.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는 ___________을 후회합니다. 주여, 제 삶의 이 고통 속으로 찾아와 주세요. 주님과 하나 되어 얻는 기쁨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양식 "온전한 기쁨을 바라면서 Wishing For Joy"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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