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느냐고 Death is a day worth l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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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_민승남
한참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제목의 질문에 붙들렸던 것이지요.
애도에 익숙해지지 못하고, 상실을 외면하기만 했던 내 머릿속은 온갖 반문으로 가득했던 것이지요.
고개를 털며 내용을 살펴 봅니다.
“인생이 삶, 죽어감, 그리고 죽음의 순서로~”
시작과 끝은 익히 아는 것인데 그 사이가 그 과정이 “죽어감” ??? !!!
어렵지만 인정해야 할 삶의 과정, 죽어감, 절대사실 죽음….
저자는 완화의료 전문가입니다.
이 책은,
“더 이상 할 수 있는게 없습니다.”에서 ”그래요, 언제라도 해줄 수 있는게 있습니다.”까지 나아 간 과정을 이야기 해 줍니다.
저자는 죽음이라는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과 오랜 시간 또 여전히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사람들, 상실을 준비해야 할 사람들(의료인, 가족 등)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연민’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도 죽음으로의 삶을 살면서,
보장된 죽음을 향해 가는 과정,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되겠느냐고 질문합니다.
나의 삶의 철학을 되돌아 본 시간이었습니다.
<욕심 난 문장들>
완화의료 : 삶의 끝자락에 나타나는 다양한 중상, 특히 통증을 완화시켜 인간이 존엄성을 가지고 세상을 떠날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의 의학이다.
죽음이 찬밥 신세
그리고 그곳에서 '죽어감'을 경험한다.
인생이 삶, 죽어감, 그리고 죽음의 순서로 마무리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삶에 대해 이야기하듯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죽음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할 훌륭한 이유가 된다.
삶은 부침을 겪으며 이어졌고,
환상통 dor fantasma, 유령통증
그가 하고 있는 말과 내가 하고 싶은 말 사이의 간극은 넓어져만 갔다.
날마다 나의 진정한 소명에 대한 조바심이 커져갔다.
사람들은 이유가 존재하는 한 어떤 방식이든 견뎌낼 수 있다. (니체)
카메라 뒤의 눈물은 아무도 보지 못한다. 사진사의 영혼은 작품들을 통해서만 드러난다.
나는 사람들이 보물을 캐듯이 이야기를 캐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언제나 이야기는 캘 때마다 나온다.
연민 피로
몸의 불편함이 크다보니 정신적 불만에 주목하기가 어렵다.
나는 자신을 돌보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보살필 수 있다.
통증도 저마다 유일하다.
죽음의 질
자연스러운 죽음 orthothanasia을 넘어 아름다운 죽음 kalothanasia을 유도하고 보조하겠다는 목표
완화 진정 지수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는다.
완화 의료가 배움의 대상이라는 사회적 이해가 필요하며, 의료인들이 완화 의료를 배울 수 있도록 사회적 협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완화 의료는 고도의 복잡성과 수행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취(직업적, 인간적 성취)와 관련된 전문 기술이다.
"그래요, 언제라도 해줄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의학의 진보입니다.
연민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공감은 소진될 수 있지만 연민은 무궁무진하다.
연민의 경우 타인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한다.
연민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꿔 놓을 수 있게 해준다. ~ 환자에게는 고통을 이해해주고, 의미 있는 무언가로 바꿀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살아가는 모든 날들에 죽는다.
책임감 있는 두려움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따라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삶이 주는 기회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죽음 만큼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보장되어 있다.
시간은 체험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 세상에서 당신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존재의 상태
존재적 좀비
우리는 의식을 지니고 생각하는 포유동물로 태어나지만, 인간이 되는 법을 배우는 만큼만 인간이 된다.
인간화
실수는, '무언가를 하는 것'에 몰두하여 '존재하는 것'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
인간답게 '존재'한다는 것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고, 어디에 있건 본연의 자신이 됨으로써 가치를 지는 것이다.
환자의 희망을 죽이는 건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버림받은 느낌이다.
내가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갖는다는 건, 고통을 존중하지만 나 자신은 고통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다.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야말로 타인을 돌 볼 책임을 질 능력의 척도.
당신 자신이 어디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야 할 지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찾도록 도울 수 있겠는가?
길을 잃었을 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 ~ 그것은 도망칠 일이 아니다. 바로 그 시간 속에서 삶이라는 경이로운 곳에 이르는 난생 처음 가보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언제라도 좋으니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 때 구하라.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만신적' 현상
종교는 심각하고 사악하기까지한 동반 질환이 될수도 있고, 심오하고 효과적인 치유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을 초월하여 진리를 '체험'할 때만 '영적진리'와 접할 수 있다.
'신의 생각'이라고 명명된 뇌의 영역
종교에서 말하는 신앙은 단순한 믿음과는 사뭇 다르다.
나는 신을 믿지 않아요. 신에 대한 신앙을 갖고 있지요.
신앙은 오직 신에 대해서만 갖고 있어요.
신앙에는 굴복이 요구된다.
영적 체험은 직접적 진실이지 관념적 진실이 아니며,
변화를 가져다 주는 건 감정의 표현이며, ~ 나쁜 감정의 표현이 진정한 변화를 불러오는 경우도 많다.
감정은 밖으로 내 보이지 않으면 안에서 쌓인다. 감정적 에너지는 증발하지 않으며,
적이 있다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가끔 적을 통해 장애를 극복할 힘과 용기를 얻는다.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를 돌보는 것과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자기 관리를 하는 건 다르다.
일에서 얻는 에너지도 삶에서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면 나쁜 에너지가 된다.
후회 중에는 순전히 시간 낭비인 것도 있다. 후회 해봐야 고통스럽기만 할 뿐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자신의 과거 행동을 탓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우리가 자신의 믿음에 목소리를 부여할 때 그 말을 우리를 나타낸다.
말로 인한 화재에는 침묵이 요구된다.
낮은 자존감은 왜곡된 형태의 자기중심주의일 수도 있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
감정적 부패의 악취
상징적 상실(죽음) : 관계의 죽음, 직업의 죽음, 확신의 죽음 등
상징적 죽음을 가장 잘 극복하는 법은 그 안에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다.
결국 남는 건 마지막 인상이지 첫 인상이 아니다.
과거의 체험은 돌이킬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체험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체험 자체가 아니라 그 체험을 받아 들이는 방식이다.
당신은 과거가 아닌 성과를 들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펴낸곳_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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