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결정 Wie Wollen Wir Le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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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어떻게살고싶은가
#행복하고존엄한삶은내가결정하는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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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어떻게 살고픈가?
어떻게 살아갈 건가?
끝없이 질문하고 끝없이 대답하고 끝없이 시도하고 끝없이 외면하며
만족을 얻지 못한 채 또 반복하는 주제지요.
작가는 세 편의 강연을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하고 풀어주고 강조합니다.
얇고 가볍게 제본된 책이지만 주체적 삶을 살아가야 할 우리들에게 #주체 와 #자기결정 에 대한 두텁고 깊은 이해화 통찰을 줍니다.
<욕심 난 문장들>
스스로 결정짓는 삶은 이 규범의 틀 안에서 외부로부터의 강제가 없는 삶, 그리고 어떤 규범을 통용할 것인지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내적)독립성은 타인에 관한 것이 아닌, 스스로에 대해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되지요.
삶의 내적 연출권, 즉 내 내면 세계에 내가 지휘권을 갖는
자신의 의견과 바람과 느낌들에 관한한 그저 맹목적으로 닥치는대로 살아가거나 되는대로 맡겨선 안 되고 우리 스스로를 테마로 삼아서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의 특징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이것은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경험과 내적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러한 거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 인식과 이해의 거리, 평가하며 거리 두기
자아상은 우리가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입니다.
우리의 삶이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우리의 자아상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 때, 그리고 우리가 행위와 사고와 감정과 소망에 있어서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의 사람이 되었을 때, 그것을 자기 결정적 삶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바꿔 말하면 자기 결정이 한계에 부딛히거나 실패하는 것은 자아상과 현실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할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인식
원하는 나의 모습과 현재의 내가 너무 달라 계속해서 마음의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면 자아상뿐만 아니라 자꾸만 고개를 쳐드는 그 욕구들의 근원지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자기 결정은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과 굉장히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개인의 삶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력이나 의식되고 있는 내적 이력 ~ 의식되지 않은 삶의 이력
자기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투명한 정신적 정체성을 형성해 주고, 이를 통해서라야만 말 그대로 삶의 작가와 삶의 주체가 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즉 자기 인식은 사치품이나 뜬 구름같은 철학적 이상이 아니라 자기 결정적 삶, 더 나아가 존엄성과 행복의 구체적 조건입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는 것, 스스로를 이해한다는 것, 변화한다는 것, 이것들은 과연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이는 말과 큰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들에 대한 정확한 말을 찾아 내는 것입니다.
자신에 관해 결정한다는 것, 이것은 자신의 생각에 관해 방향을 정하고 믿어 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올린다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확실하다고 믿어 왔던 것들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증거를 찾아가는 동안 나는 그 확신들이 변화할 수 있는 내적 과정의 문을 열게 됩니다. 이 과정이 충분히 반복되면 내 의견의 총합이 완전히 탈바꿈하여 결과적으로 생각의 정체성이 변화하게 됩니다. 때문에 중요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그것을 명백히 밝히는 과정이 자기 결정의 한 행위인 것이지요.
사고의 들러리
그러다가 비판적 물음을 통해서 익숙하던 생각의 패턴에서 한 발짝 거리를 두고 검증 과정을 통해 생각의 주인 자리를 찾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이 지녀 온 언어적 습관과 거리를 두는 것과도 큰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또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많은 것들이 모국어를 그대로 따라함으로써 생겨나기 때문이지요. 어떤 것을 다들 그렇게 부르니까 나도 그냥 그렇게 부르는 것이에요. 사고에 있어서 성숙해지고 자립적이 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생각한다고 믿게끔 속이는 맹목적인 언어 습관에 대해 잠들어 있던 촉을 세우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각심은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정확한 의미를 따져 보는 것이고 둘째는 그것이 그 의미를 가졌다는 것을 과연 무엇을 통해 알게 되었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경험을 나타내는 우리의 언어가 세분화될수록 경험 자체도 세분화된다고 할 수 있겠지요.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기억은 이야기될 때 이해 가능한 것이 되고 우리는 기억의 힘없는 희생양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자기 결정적 존재가 되려면 일단 이해하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 사고의 측면에서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열립니다. 인간이 삶을 이끌어 나가는 모습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가를 알게 되는 것이지요. ~ 뿐만아니라 한 삶의 내적 관점에 대해서도 우리의 공감 능력이 성장 합니다.
문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법입니다.
자기 결정적 삶
도덕적 친밀감
도덕 의식과 자기 결정이 서로 공존하려면 두려움이 원인이 되어서도 안 되며 열정 없는 의무감에 의한 것이어서도 안 됩니다. 자기 결정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야 하지요.
자기 결정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일은 타인의 시선을 맞닥뜨리고 그에 맞설 때만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가장 쉬운 방법은, 외부로부터의 모든 시선을 독립적인 정신의 정체성으로 되받아치는 겁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시선과의 대결이 자기 결정적인 성질을 띠려면 자기가 누구인지 끊임 없이 묻고 또 묻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질문을 던지며 깨어 있도록 노력
다른 이가 먼저 살아가고 먼저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이 가르치는 논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지요.
좀 더 복잡한 형태의 자기 결정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기, 각자 차별화된 자아상 만들어 가기, 그 자아상을 마지막 순간까지 끊임없이 새롭게 고쳐나가며 발전시키기, 자기 인식을 넓혀가기,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과 기억을 갈고 닦기,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타자의 조종을 명료히 꿰뚫어 보고 방어하기, 그리고 자기 목소리 찾기. 이 모든 것들은 지극히 당연하고 언제나 지켜져야 할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타인의 인식과 우리의 자아상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는 이유는 자아상이 자기기만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기만은 이익이 동기가 된, 자기 자신에 대한 착각이지요. 자아상의 인물처럼 생각하고 바라고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에요.
인식하고 조치하기, 개념적 분화
인식된 것과 인식되지 않은 것의 구별
자기가 어떤 사람이 아닌지 아는 것
자신이 누구인지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자신의 표현 안에서 스스로를 찾는다는 것은 자신의 상상력 안에서 스스로를 찾는다는 말과 언제나 일치합니다.
때로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본다.
자신만의 언어를 통해 어떠한 길을 밟으면서 살아왔는지 떠올리는 것, 이것 또한 자기 인식의 한 형태입니다.
모든 것의 열쇠는 언어다.
언어적 정체성은 정신적 정체성을 표명하는 성격을 띱니다.
언어의 낯섦에서 다른 정신의 낯섦을 배울 수 있습니다.
언어를 바꾸면 삶은 다른 소리와 맛을 냅니다.
문화적 정체성이란 우연한 것이며 항상 대체물이 있습니다.
하나의 문화적 정체성은 동시에 도덕적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펴낸곳_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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