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배신 Nickel and Di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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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배신
#NickelAndDimed
#바버라에런라이크
#옮긴이_최희봉
죄송하지만 먼저 여쭙겠습니다.
지금 수입으로 살만하십니까?
아마도 답하시기 좀 그럴겁니다.
저자는 다음의 질문에 몸소 답을 얻고자 했습니다.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들이 그들의 임금만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할까?”
뛰어 듭니다.
똥끗타게 달려 들었습니다.
그녀가 내린 결론은?
여러분들의 예상이 틀리진 않으실 겁니다.
다만, 저자의 똥끗타는 하루하루와 동행하시면서 “왜?” 그런지 분명한 가닥을 잡아 보시기 바랍니다.
<욕심 난 문장들>
아무나 할 수 있는 저임금 노동
헤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 임금 노예
빈곤은 공포와 너무나 비슷한 냄새를 풍긴다.
가난하기에 돈이 더 든다.
가난한 자들만의 절약법 따윈 없다.
빈곤 속의 삶도 시작 조건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모두가 우리를 무시한다.
구직 활동(저임금 일자리에 지원하는 일)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자신이 재산가라는, 들통날 게 빤한 거짓말을 떠벌릴 수 밖에 없는 그의 심리 상태보다 왠지 이 말이 나를 울컥하게 했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끔찍하게 엉망진항인 것처럼 묘사한 이 곳이 그에게는 아주 소중하고 진정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공동체라는 사실이 놀랍고 슬펐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어쩌면 현세의 기독교가 실제로 하고 있는 일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를 반복해서 그의 입에서 한 마디의 말도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종류의 운동(노동)은 완전히 비대칭이고 무자비하게 반복적이어서 근육과 뼈를 단련 시키는 동시에 망가뜨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깥 세상의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물론 홀리를 돕고 싶고, 곤경에 처한 모든 사람을, 가능하다면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돕고 싶었다. ~ 그러난 한편으로 갑자기 처하게 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싫었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는 제시 잭슨 목사가 즐겨 말했듯 '무시할 수 없는 사람(somebody)'이 되고 싶은 건지도 몰랐다. 관대하고, 능력있고, 용감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남들 눈에 띄는 사람.
멈추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단 한 순간이라도 정지하지 마라. 안 그랬다가는 ~ 결국 피로가 나를 굴복 시킬 것이다.
전반적으로 볼 때 동료들은 계급 불평등이라는 낭떠러지에 작은 틈새를 차지한 데에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솔로 문지르고, 윈덱스로 닦고 광을 내 가면서, 나는 조금씩 아주 멋진 초연함의 철학을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 그렇게 해서 탄생한 아름다운 판타지 속에서 나는 청소 용역 회사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가장 천대 받는 일을 거의 공짜로 기꺼이 봉헌하는 신비로운 결사에 가입한 셈이었고, 복종하고 수고함으로써 은혜 받을 기회를 얻게 된 것에 오히려 감사했다.
그러나 더 메이즈에 사람들이 계속 남아 있는 데는 몇가지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우선 직장을 옮긴다는 건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의 기간을 급여 없이 살아야 함을 의미했다.
테드(반장, 관리자)의 인정을 받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무척 궁금했다. 내가 보기에는 동료들의 '애정결핍'은 만성적인 박탈감 때문에 생긴듯 했다.
~ 경비원, 청소부, 단순 노동자, 성인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사람들, 이들은 신분제가 존재하지 않는 민주 사회의 불가촉 천민들이었다. 그리하여 테드같은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카리스마가 부여된 것이다. ~ 혹은 일반적으로 저임금 노동 자체가 노동자 스스로를 천민처럼 느끼게 만드는지도 몰랐다.
가난한 사람들은 문화 전반에서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고 그 사람들이 가진 걸 바라지 않아요. 내 말은 그런건 나한테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예요. 내가 바라는 건 다만 가끔씩 꼭 쉬어야 할 때 하루 쉴 수 있었으면, 그리도 그래도 다음 날 식료품을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거예요.
단순 노동은 '단순'하지 않다.
어떤 일을 해 보지도 않고 단순 노동이니 쉬울 거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금발인 린은 얼굴 한 쪽만 웃었다.
기업의 인색함이 지배하는 곳에서 소리없이 그것과 반대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친절한 마음씨를 발견하고 감동했다.
"경제가 좋아질수록 임대료 상승에 대한 압력도 강해진다." 따라서 나는 빈곤의 피해자가 아니라 '번영의 피해자'인 셈이었다.
실제로 일을 하는 것과 일을 하는 척하는 것의 차이
나는 저임금 노동과 대다수의 중간 임금 노동 medium wage work에 관한 심오한 진리를 터득했는 데 그건 바로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는 것, 도는 늘 똑같은 일이 반복되기 때문에 아무 일도 안 생기는거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자기의 시간을 시간당 얼마라고 판다는 것은, 처음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겠지만 사실은 인생은 파는 것이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직업이라도 '아무 기술도 필요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 전반에서 성취한 것들과 상관 없이 저임금 노동의 세계에서 나는 일하는 법을 새로 배울 줄도 알지만 잘못해서 실수를 저지르는 그저 평균적인 능력의 소유자였을 뿐이다.
일을 어느 정도로 열심히 할 것인가도 애매한 사안 중의 하나였다.
오늘 기운을 얼마나 쓰고 내일을 위해 얼마나 남겨 둘지를 계산하면서 일하는 것이다.
단순히 개인의 부족함과 계산 착오에 기인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된 문제였다.
(임금, 노동시장)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더 이상 지켜지지 않는다는 말
진정한 '노동력 부족현상'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현재 제시된 임금을 받고 일하려는 사람들의 수가 부족할 뿐이라는 것
내가 저임금 직장에서 가장 놀라고 불쾌하게 느꼈던 점은 기본적인 시민권과 자존감을 포기해야 하는 정도가 상상을 초월할만큼 심각하다는 것이다.
워킹 푸어 working poor의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 모두를 위해 익명의 기증자, 이름 없는 기부자가 되는 것이다.
두 사람 다 불경기에 특별히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미 오랜전 부터 영구적인 경제공황 상태에서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다.
#펴낸곳_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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