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야샨티의 참된 명상 True Meditation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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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_심성일
기도엔 익숙한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네 기독교인들에게 '묵상', '침묵기도' 등의 형식이 있긴 하지만,
나는, "부르짖음"이 주된 방식이었습니다.
'요구'하는 것이지요.
명상을 시도하고 그 날들을 쌓아오면서 내내 궁금했습니다.
"이게 맞나!"
여전히 궁금하고, 여전히 공부 중 입니다.
저자는 내게,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마음과의 전쟁을 끝내라고 합니다.
욕구의 요구를 통제하거나 조작하기를 포기하라고 합니다.
노력 없는 노력으로 에고를 초월하라고 합니다.
그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잘 안되지만, 그래도 해봅니다. 그냥, 합니다.
명상을 공부하고 실행하기에 참 좋은 교과서 중 하나 입니다.
<욕심 난 문장들>
마음과 전쟁을 벌이면서 이기려고 애쓰면 영원히 전쟁 상태에 있게 될 것입니다.
손재의 깨어 난 상태, 존재의 깨달은 상태는 존재의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통제와 조작이 우리를 자연스러운 상태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자연스러운 상태란, 완전히 자연스럽고 완전히 자발적인 상태이다.
명상과 정신 집중은 별개의 것이다. 정신 집중은 훈련이다. 정신 집중은 사실 우리의 경험을 감독하거나 이끌거나 통제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명상은 통제를 포기하는 것이며, 우리의 경험을 어떤 식으로든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려는 의도를 포기하는 것이다.
명상적인 자기 탐구, 명상 상태에 있는 마음에 질문을, 강력하고 중요한 영적 질문을 제기하는 수행이다.
명상하는 자를 넘어 서는 것, 에고 또는 마음을 초월하는 것
(명상)기법들은 정신적 에너지와 활동적인 마음의 원천들을 끌어 모아서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 가득차게 한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호기심으로 가급적 빨리 옮겨 가야 한다.
참된 명상은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편히 쉬는 것으로 시작된다.
참된 명상은 자연스러운 상태를 향해 가는 것도 아니며, 자연스러운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아니다.
믿음으로 놓아버린다. 영적 탐구에서 우리는 마음을 넘어서기 위해서 실제로 마음을 활용한다. 문제는 마음에 대한 우리의 집착이다.
자세와 눈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몸을 잊어버릴 수 있는 자세로 앉아 있는가? 문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몸을 내버려 둘 수 있는 자세로.
순간순간 자신의 경험과 친밀해져 보라.
너무 많이 노력하면 지나치게 경직되고, 너무 적게 노력하면 꿈꾸듯 몽롱해진다. 그 중간 어디쯤에 생생하고 분명하며 내면이 밝은 상태가 있다.
어느 정도의 노력이 적당한지는 자기 스스로 발견해야만 한다.
우리는 본래 깨어나게 되어 있다.
에고가 가진 통제를 포기할 때, 우리 존재의 본성이 깨어난다.
내면의 모든 것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라. 우리는 우리 안의 모든 것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느껴지도록, 경험되도록, 알려지도록 허용함으로 깨어난다.
오직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더 깊은 수준으로 이동할 수 있다.
두려움이 출구다. 두려움은 우리가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때가 많다.
경험되도록 허용하라.
생각에서 빠져나와 감각으로 들어가라. 느끼는 것을 실제로 느끼는 것.
알아차림은 역동적이다. 알아차림은 당신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흐르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길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이다.
참된 명상은 사실 우리와 늘 함께하는 어떤 것이다.
'나의 영적인 삶'이라는 것이 따로 있고, '나의 일상생활'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 그것이 가장 근본적인 착각이다.
내맡김이란 무엇인가.
탐구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정말로 알고 싶어 해야 한다.
명상적 자기 탐구는 영적으로 강력한 질문을 묻는 기술이다.
무엇이 당신 자신의 질문인가? 만약 당신이 명상을 한다면, 왜 명상을 하는가? 당신이 답을 찾으려 애쓰는 질문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 또는 누구인가?
뺄셈의 길. 비아 네가티바 (via negativa; 부정의 길, 하나님은 ~ 이 아니다.) <--> via positiva (~ 이다.)
우리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게 됨으로써 우리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방법
사실은 알아차림이 우리 자신이다.
알아차림은 진정한 당신 자신이며, 당신 존재의 본질이다.
조화란 우리가 더 이상 둘로 나뉘어 자기 자신과 대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뺄셈의 길' 다음에는 내가 '무한한 포용'이라고 부르는 것이 뒤따른다.
당신에게 변함없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아차려라.
다른 모든 것이 변했고 계속해서 변하고 있지만, 당신이 가리키는 '나'는 항상 거기에 있었다.
외적인 것들은 변했다. 생각들은 변했다. 느낌들은 변했다. 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다.
직관적 통찰에 따르면, 예전 그대로 변함없이 존재하는 앎(knowing)이 있으며, 당신은 '나'라고 말 할 때마다 그것을 가리키고 있다.
명상적 자기탐구는 변함없이 남아 있는 것, 언제나 있는 것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영적여정; 깨어남 이후의 삶
#펴낸곳_침묵의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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