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자들 The True Believer
#책
#맹신자들 #TheTrueBeliever
#대중운동의본질에관한125가지단상
#에릭호퍼 #EricHoffer
#옮긴이_이민아
에릭 호퍼, 불운한 어린시절, 7 세때 어머니를 잃고 갑자기 시력까지 잃은, 그러나 15 세때 기적적으로 시력 회복, 이 후 독서 몰두.
평생을 부두 노동자, 떠돌이 노동자로 산 미국의 사회 철학자. 이른바 노동 현장 등의 산증인.
맹신자, 자신의 삶이나 자아에 대해 좌절한 사람들, 외부의 거창한 이념, 대중 운동 등을 도피처로 삼아 새로운 정체성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
대중운동의 원동력, 맹신자들의 자기희생, 맹목적 충성.
대중운동에 슬쩍 발담고, 괜히 아는척하고, 슬쩍 사진을 SNS에 올리는 흉물같은 나를 꼬집고 이해하게 만든 책.
"역시! 대단하다.!"
<욕심 난 문장들>
모든 대중운동은 지지자들에게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는 의지와 단결된 행동 성향을 불러 일으킨다. 대중운동은 어떤 운동이 되었건 어떤 교조를 주창하건 어떤 계획을 제시하건 광신과 열광, 간절한 희망, 증오와 편협을 낳는다. 동시에 일련의 영역에서 강력한 행동의 물결을 일으킬 역량이 있으며, 맹목적 신념과 일편단심의 충성심을 요구한다.
같은 심리 유형의 사람들에게 호소한다.
모든 유형의 헌신과 신념, 권력의지, 단결과 자기 희생에는 어떤 획일적인 속성이 있다.
(장제스가) 최소한 일본의 침략으로 불붙은 민족주의의 열정을 지속 시킬 방법만이라도 알았더라면, ~ 그러나 그 방법을 몰라서 '종교화' 기술 -현실적 목표를 숭고한 대의로 바꿔놓은 기술-의 대가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변화에 대한 저항과 변화를 향한 갈망은 동일한 확신에서 나온 것으로, 열렬하기는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다.
불만 자체가 반드시 변화의 갈망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다른 요인들이 나타나야만 불만이 민심 이반으로 옮겨갈 수 있다.
주위 환경에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은 아무리 비참한 처지에도 변화를 생각하지 않는다.
비참하게 가난한 사람들도 자기를 둘러싼 세계를 두려워하여 변하에 호의적이지 않다.
거대한 변화라는 과업에 달려드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게 어떤 저항 할 수 없는 힘이 있다고 느낀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포함하지 않는 한, 천년왕국의 요소가 없는 한, 어떠한 믿음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희망을 설득할 줄 알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태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현재에 기대고 매달리게 만들지만 미래에 대한 믿음은 변화를 받아들이게 된다.
혁명은 특권층에 의한 것일수도,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에 의한 것일수도 있다.
희망과 그로 인해서 벌어지는 실상은 크게 불일치 할 수 있다.
대중운동은 특히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단계에서는 ~ 쓸모없는 자신을 몰아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는다. (자기부정 열망 충족) (자기부정을 향한 갈망)
자기에 뿌리와 이유를 둔 것이라면 어떤 것도 선하고 고상할 수 없다.
좌절한 사람들에게 대중운동은 자기의 삶을 통째로 대체하는 무언가, 혹은 삶을 견딜만하게 만들어 주는, 그러나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이끌어 낼 수 없는 무언가가 된다.
히틀러에 따르면, "마련해줘야 할 일자리와 사무실이 많아질수록 운동에 모여드는 인력의 질은 떨어지며, 결국에는 이런 모리배들이 성공한 정당을 장악하게 되어 지난날의 정직한 투사들이 그것이 예전의 그 운동이 맞는지 알아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그렇게 될 때, 그 운동의 '사명'은 끝난 셈이다."
대중운동의 가장 강력한 매력의 하나는 그것이 개인적인 희망을 대체할 수 있는 점이다. 이 매력은 특히나 진보라는 신념에 고취된 사회에서 힘을 발휘한다.
대중운동은 흔히 대중을 미래라는 희망에 마취시키면서 그것을 현재의 즐거움이라고 믿게끔 현혹한다고 비난 받는다.
자신의 몸과 마음, 시간과 노력을 다 바치는 모든 행위, 충성하는 행위, 무언가에 헌신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신의 하찮은 삶, 망가진 인생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무언가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를 대신 할 무언가를 받아들이게 되면 열렬하고 극단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이 어떤 대중운동을 시작 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은 어떤 특정 ~ 아니라 어떤 효과적인 운동이라도 뛰어들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다. (동전 던지기)
대중운동의 호환성
대중운동이 하나의 성격만으로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다.
역사라는 놀이는 흔히 중간의 다수자들은 제쳐 놓고 최상위와 최하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사회의 쓰레기 같은 존재와 불평분자가 없는 나라는 질서 정연하고 점잖고 평화롭고 쾌적하지만, 새로운 변화의 씨앗이 없는 셈이다.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달갑지 않은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 대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신세계를 건설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니다. 오로지 그들만이 할 수 있었던 일이다.
불만으로 인한 소란에 맥박이 뛰는 것은 대개 상대적으로 최근에 가난해진, '신빈곤층'이다.
오늘날 서구 세계의 노동자들은 실직을 강등으로 느낀다. 그들은 부당한 세계 질서가 자기네를 박탈하고 상처 입혔다고 느끼며, 그렇기에 언제든 거대한 변혁의 외침에 귀 기울인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노동하는 사람들은 불평불만도, 꿈도 키우지 못한다.
생존을 위한 사투는 "역동적이기는 커녕 정적이다."
불만은 비참함이 견딜만할 때, 상황이 개선되어 어떤 이상적인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지는 시점에 최고조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
불평불만은 문제가 시정될 수 있을 것 같을 때 가장 신랄하다.
반항을 자극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의 경험이다.
불만은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 조금이라도 원할 때보다는 많은 것을 가졌고 더 많은 것을 원할 때 커진다.
우리는 (필수품보다) ~ 사치품을 구할 때 더 대담해진다.
노예제도가 오랜 기간 널리 뿌리 내린 곳에서는 대중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노예들간의 절대적 평등과 노예 사회의 유대 깊은 공동체 생활이 개인의 좌절감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다.
선택의 자유는 실패의 책임을 전적으로 개인의 몫으로 돌린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 낼 재능이 없는 한, 자유란 따분하고 번거로운 부담이다.
혁명정부는 "폭정에 맞서는 자유의 독재" (로베스 피에르)
평등에 열광하는 것은 어느 정도는 익명성에 열광하는 것이다. (드러나지 않을테니)
가난에 창조적 능력이 결합하면 보통은 좌절하지 않는다.
현대에 수공예가 쇠태한 것이 어저면 좌절감이 상승하고 대중운동에 호응하는 개인이 증가히게 된 원인일수도 있다.
서구 식민지 열강은 ~ 원주민에게 자립을 가르치고자 한다. ~ 전인적 공동체의 어리숙하고 서툰 개인을 잘라내어 ~ "무력한 자신이라는 자유(호미야 호프)"를 향해 내보내는 것이다.
대중운동이 좌절한 이를 치유하는 것은 ~ 쓸모없는 자신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때문이다. ~ 유대 깊고 기쁨 충만한 전인적 공통체 안에 ~ 받아들이고 흡수하기 때문이다.
좌절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열망은 '소속되는'것 (히틀러는 이것을 알았음)
애국심이 건달들의 마지막 피신처 ~ 애국심은 죄의식의 피신처 구실을 종종한다.
대중운동이 설정한 많은 목표가 실현 불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현재를 비하하는 운동의 일부가 된다.
기적에 대한 믿음도 현재에 대한 저항과 거부를 담고 있다.
대중운동의 신비주의도 현재를 비하하는 수단이다.
이집트에 노예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노역으로 피폐해진 나머지" 걸밋하면 말다툼하고 서로 헐뜯는 패거리였다.
자기를 아낌없이 바치게 만드는 것은 소유가 아니라 갈망이다.
이상한 일은 현재를 받아들이며 거기에 전력을 다해 매달리는 사람들이 정작 현재를 지킬 역량은 가장 딸린다는 점이다.
꿈과 상상, 무모한 희망은 강력한 무기이자 현실적인 도구다. 진정한 지도자의 현실감각은 이러한 도구의 현실적 가치를 알아보는 능력에서 온다.
자기희생의 각오는 삶이라는 현실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려있다.
맹신은 무수한 불신을 통해 검증된다.
보거나 들을 가치가 없는 사실에 '눈 감고 귀 막는' 능력이야말로 맹신자들이 지닌 불굴의 결단력과 충성심의 원천이다. 믿음의 힘은 산을 옮기는 이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산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베르그송)
(강령의 효과) 강령은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가 아니라 얼마큼 확신을 주느냐에 따라 효력을 발휘한다.
강령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이해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굳게 믿게 만들어야 한다.
강령은 난해하지 못하다면 모호하기라도 해야 하며, 난해하지도 모호하지도 않다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천국에서나 아주 머나 먼 미래에 강령이 옳았는지 판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단순한 말은 풍부한 의미를 담게되며 어떤 암호문의 상징처럼 보이게 된다.
우리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사실과 냉철한 논리를 싫어하는 경향이 생겨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혹은 보지 않으려는 태도는 남의 말에 잘 속는 순진한 기질과 야바위 기질을 동시에 조장한다.
(광신)자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신봉하는 대의가 얼마나 숭고한 것이냐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매달릴 수 있느냐다.
온갖 유형의 광신자들은 상반되는 입장에 서 있는것 처럼 보여도 사실은 전부 한 쪽 긑에 몰려있다.
무신론자는 종교적인 사람이다. 무신론자는 무신론을 하나의 종교로 믿는다. 그는 무신론을 종교인 같은 독실함과 열의로써 받드는 사람이다.
증오는 모든 단결의 동인 중엥서 가장 흔하고 포괄적인 요소다.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전파되려면 신에 대한 믿음은 없어도 가능하지만 악마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장제스, 일본이 종전과 더불어 무대에서 사라진 뒤 적합한 새 악마를 찾지 못했다.
자기경멸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부정하고 터무니 없는 죄악적 열정"을 불러 일으킨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 탓이며 자기가 저지른 과오임을 입증하는 진실에 대항하여 도덕적 증오심을 품기 때문이다."
뻔뻔한 어휘와 행동 뒤에는, 그리고 자기만 옳다는 큰 소리 뒤에는 죄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인들이 사력을 다해 외국인을 혐오하기 시작한다면, 미국적 삶의 방식에 자신감을 잃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모든 대중운동이 소중히 여기는 하나된 정신과 통제는 복종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모방도 그만한 역할을 수행한다. 복종 자체에도 계율을 따르는 복종이 있고 모범을 따라하는 복종이 있다.
우월감은 모방을 방해한다.
분주한 활동은 획일성을 낳은 경향이 있다.
(선전선동은) 생각을 주입한다기보다는 이미 받아들인 사람들의 원래 있던 생각을 한 번 더 표명하고 옹호할 뿐이다.
선전선동이 통하는 대상은 주로 좌절한 사람들이다.
선전성동은 강압과 병행할 때 더 광적이고 집요한 힘을 발휘한다.
광신적 정통파는 모든 운동에서 늦게 만들어진다.
지도자의 놀라운 권능은 대중을 장악하는 능력보다는 소수의 유능한 인재를 넋을 잃게 할 만큼 압도하는 능력에서 나타난다.
에이미 맥피어슨(부흥사)이나 히틀러가 추종 무리를 얻고 유지하게 해준 것은 그들의 조잡한 지성이 아니라 그 터무니 없는 사상을 멋대로 휘두를 수 있게 해 주었던 끝없는 자신감이었다.
지도자는 현실적이고 현실주의자여야 하지만, 그러면서도 몽상적인 이상주의자 언어로 말해야 한다.
모든 대중운동에서 행동은 단결의 수단이 된다.
행동은 자신을 잊게 만들고(좌절한 사람들) 목표의식을 부여하며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는 의식을 심어준다.
대중운동의 기반 작업은 말이나 글을 다루는 기술이 탁월한 사람들이 가장 훌륭하게 해낸다는 사실, 대중운동이 실질적으로 부화하기 위해서는 광신자들의 기질과 재능이 필요하다는 사실, 대중운동이 공고해지는 마지막 단계는 주로 실질적인 행동가들의 몫이라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허영이 혁명을 만든 것이다. 해방은 명목일 뿐이다. (나폴레옹)
(새로운 믿음의 근원) 예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으며, 마르크스도 마르크스 주의자가 아니었다.
지식인 계층을 나누는 중대한 기준은 창조적인 작업에서 성취감을 얻는 지식인과 그렇지 못한 지식인이다.
광신자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대부분은 창조적이지 못한 지식층에서 나온다. 대중운동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광신자가 위험한 것은 그가 정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 긴장과 분열의 요소가 된다.
현실에 발 디딘 행동가의 등장만이 운동의 성과를 지킬 수 있다.
운동을 개척하는 것은 지식인, 실현하는 것은 광신자, 굳건히 다지는 것은 행동가이다.
행동가의 손에 들어간 대중운동은 ~ 야심가의 자기실현 수단으로 바뀐다.
종교화 기술
#펴낸곳_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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