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좋은 날 日日是好日 Every Day a Good Day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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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시타노리코 #森下典子 #MorishitaNoriko
#옮긴이_이유라
다도의 매력에 빠지게 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다를 것 없는 일상의 지루함을 너머
매순간을 만끽하고 지나 간 매순간에 감사하고 다가 올 매순간을 기대하는
작가의 날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작가께서도 대단하시지만, 일본분들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내겐 참 깨끗한 거울이 되었습니다.
<욕심 난 문장들>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바로 알 수 없는 것' 두 종류가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것은 한 번 지나가면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바로 알 수 없는 것은 펠리니 감독의 <길>처럼 몇 번을 오간 뒤에야 서서히 이해하게 되고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간다. 그리고 하나씩 이해할 때 마다 자신이 보고 있던 것은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차'라는 건 그런 존재다.
유리 장막이 사라지자 계절이 '냄새'나 '소리' 같은 오감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낸 결론을 따르고, 그렇게 하길 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살아가면 된단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우리 집처럼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신발은 한 켤레도 없었다.
아무 것도 없는 놀라울만큼 텅 빈 공간이었다.
자질구레한 생황의 냄새
움직임이 마치 흐르는 듯 했다.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을 때도, 처음 맥주를 마셨을 때도, 어른들의 음료는 항상 쓴 맛이 났다.
이유는 상관없이 어쨌든 이렇게 하는 거야.
이유 같은 건 상관 없으니까 어쨌든 이렇게 해, 너희들은 반발심을 느낄지 모르지만 다도라는 건 원래 그런거니까.
시원해 보이는 파란 세로 줄무뉘 항아리
다도에서는 말이지. 무거운 것은 가벼운 듯이, 가벼운 것은 무거운 듯이 드는 거란다.
뭐? 무거운 걸 어떻게 가볍게 들지?
다실에 들어갈 때는 항상 왼발부터 들어가는 거야.
다다미 한 장에 여섯 걸음으로 걷도록 해.
가운데는 차가운 물, 바닥은 뜨거운 물
차라는 건 말이지, '형태'가 그 첫걸음이란다. 먼저 '형태'를 만들어 두고 그 안에 '마음'을 담는거야.
하지만 마음이 들어가지 않은 텅빈 형태를 만든다니, 그냥 형식주의에 불과하잖아. 인간을 틀에 가두는 것 아닌가?
우리 쪽은 거품을 많이 내지 않아. 거의 거품 없이 초승달 모양으로 수면이 보이게 만들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상대방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로' 상태의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시시한 자존심 따위는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에 지나지 않는다. 짐을 버리고 텅 빈 상태가 되어야 했다. 비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채울 수 없다.
머리로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
익히기보다 익숙해지자.
연습은 횟수가 중요해. 한 번이라도 더 횟수를 늘리는 거야.
그렇게 머리로 외우면 안 돼. 다도는 그냥 한 번이라도 더 많이 연습해 보는거야. 그러다 보면 손이 저절로 움직이게 되는 법이니까.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히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수 많은 '점 点'을 찍는다. 그 점과 점이 가득 모여서 '선 線'을 이룬다.
손을 믿으렴. 생각하지마. 손이 알고 있으니까 손한테 물어보도록 하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다.
그런 여름의 차. 이건 겨울의 차
일단 익숙해지자 그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자,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는 거야. 지금 눈 앞에 닥친 일을 하도록 해.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집중하는거야.
똑같은 절차대로 하고 있는데도 신기하게 동작 하나하나에서 미치코다운 진중함이 느껴졌다.
새해 첫 다회가 열리는 다도실은 새로 꺼낸 하얀 시트처럼 깨끗하고 환한 느낌이었다.
진짜 전통은 현대적이고 참신한 것이었다.
절을 한다는 것은 그저 머리를 숙이는 것이 아니었다. 머리를 숙이는 단순한 움직임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형태' 그 자체가 '마음'이었다. 아니, '마음'이 '형태'가 되어 있었다.
결이 다르다.
산속에서 솟아나는 깨끗한 물은 유리처럼 무색투명해서 아무런 냄새도 특징도 없고, 목에 걸리는 느낌없이 우리 몸에 산뜻하게 스며든다고 한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아무것도 빼지 않은, 그런 '물'같은 데마에였다.
음악을 눈으로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경쟁해야 비로소 꽃이라는 말 그대로네.
만원 전철 안에서 좌석 빈틈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는 모습 같았다.
복고의 시끌벅적함 속에서도 유유히 자신의 세계를 즐기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정객도 맨 앞에 앉아서 제일 먼저 차를 마시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손님들이 듣고 싶어하는 질문을 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만큼 맨 앞자리에 앉은 사람은 다인 중에서도 특히나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다.
정객 자리가 채워지자 다실 전체가 한시름 놓았고
환영하는 마음을 담아 열심히 준비했답니다.
배견, 다회에 오면 꼭 다도구를 직접 만져보렴.
계절을 맛보다.
빠지고 싶은 이유는 매 주 있었다. 그런데 ~
화과자는 재료 본연의 맛에 계점감까지 가미한다.
맛 본다는 것, 깜짝 놀랐다. 하얀 과자는 씹을 새도 없이 혀 위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눈이다! 이건 눈이야!' 입속에서 허물어지는 그 감촉은 감동적이었다. 눈이 녹아 사라진 뒤에는 은은한 단 맛이 남았다. ('고시노유키'라는 설탕과자)
하지만 천만에. 들에 피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꽂는 게 의외로 어렵단다. 단순해 보일수록 어려운 법이다.
달필인건지 악필인건지 한 글자도 읽을 수가 없다. ~ 화가 난다. ~ 잘난척하는 것 같다.
맛있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우리는 참 솔직했다.
어려워서 이해하지 못하겠다던 생각이 단숨에 날아갔다. 글자를 머리로 읽는 것이 아니다. 그림처럼 바라보면 되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는 계절을 시각과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 오감 전부를 통해 맛보고 상상으로 체험했다. 매주, 그저 한결같이. 이윽고 무언가 바뀌기 시작했다.
뜨거운 물은 '따랑따랑'하는 둥그스름한 소리였고, 차가운 물은 '또록또록'하고 단단하고 맑은 소리가 났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소리가 갑자기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6 월의 빗소리는 새잎이 빗방울을 반사하는 소리였다. 빗소리는 나뭇잎이 만들어 내는 청춘의 소리였다.
11 월의 비는 힘없이 쓸쓸하게 흙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똑같은 비인데 왜 그런걸까?
어쩐지 개운한 냄새가 났다. 청결한 느낌의 냄새였는데, ~ '아, 숯 냄새다!'
먼 옛날 맡았던 바람과 물, 비의 냄새가 그때의 감정과 하나가 되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연기처럼 사라져 간다. 과거의 수많은 내가 지금의 내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꽃'을 얼마나 작은 테두리 안에서 복 있었던 걸까. 다화가 없는 계절 같은 건 없었다. 따분한 계절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불평) 그조차도 도심의 큰 빌딩 안에 제대로 '있을 곳'이 있는 사람의 고민이었다.
나 혼자 인생의 본경기가 시작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제대로 여기 있으렴. 일단 가마 앞에 앉으면, 제대로 가마 앞에 있는거야.
'신은 사소한 곳에 깃든다,'라는 말이 있는데, 차야말로 정말 사소하고 세세한 곳 까지 심혈을 기울인 결정체라고 할 수 있었다.
말차를 개는 감각에, 그 진한 차 한 잔을 개는 일에만 나의 '마음'의 전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온전히 '여기'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족자는 지금의 계절을 표현한다. 그런데 계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생에도 계절이 있었다.
선생님은 그 날 내 인생의 '제일 중요한 장면'이라는 계절에 맞추어 족자를 걸어 두었던 것이다.
실연. 상실감이 너무 컸다. 콘크리트 블록으로 피부를 문대는 것처럼 아프고 쓰라린 나날이었다.
不苦者有知, 고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에게 지혜가 있다.
하지만 봄은 그렇게 곧장 와 주지는 않는다. 그렇게 한 걸음 나아갔다. 한 걸음 물러서는 일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반복한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인생의 어느 계절을 넘어서려고한 것이겠지.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카락이 뒤에서 깡충 튀어 올랐다.
좋아하는 것이야말로 잘할 수 있는 비결이다.
히토미의 데마에에 넋을 잃고 있었다. '계속 이렇게 지켜보고 싶다.....' '이게 소질이라는 거구나!'
노래방에서 노래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깨닫든 깨닫지 못했든 재능의 중심에 서서 그것을 발휘하는 사람은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자신이 없다는 사실을 속여야만 했다.
돌발 상황에 대한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아아, 옛날에 그런 걸 배웠었지."하고 과거형으로 말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결심했을 때 일말의 쓸쓸함을 느꼈지만, 그 쓸쓸함은 시원함과 무척 닮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만 둘 결심을 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진지하게 다도를 공부하고 있었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기분좋다.' 하늘을 향해 심호흡하면서 나를 해방시켰다.
그저 그만 둘 때까지 그만두지 않는 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나만의 다도를
인간은 어느 날을 경계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행복할 땐 그 행복을 끌어안고 있는 힘껏 음미하자.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그러니 소중한 사람을 만나면 함께 먹고 함께 살아가며 단란함을 만끽하자. 일기일회란 그런 것이다.
내면에 귀를 기울이다.
제 자신으로 돌아가서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해서요.
(다실의 문과 같이) 사람의 마음도 계절에 따라 변화한다. 열리고 닫히고, 다시 열린다. 그 주기가 호흡하듯 되풀이 된다.
세상을 밝고 긍정적인 것만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애초에 반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밝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이 모두 존재할 때 비로소 '깊이'가 태어난다.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든 저마다 좋은 것이다. 인간에게는 그 양쪽이 모두 필요한 법이다.
솔바람이 멈출 때
마흔이 불혹의 나이라는 건 거짓말이었다.
20년 동안 다도를 해 왔지만 나는 아직도 '무 無'가 되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와는 점점 더 멀어지는 기분
짧은 죽음과도 같은 안식이었다.
그토록 기분좋은 '틈'
비오는 날은 비를 듣는다. 聽雨
습기가 달라붙어 몸이 나른 했다.
잊고 있기에 떠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자유로워지는 길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단다.
어떤 날이든 그날을 마음껏 즐긴다. 다도란 그런 '삶의 방식'인 것이다.
가르치는 것, 가르치지 않는 것
그 정적은 농밀하다.
달려나가 이 기분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는 가슴속 열기와 말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덧없음과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서로 다투어 만들어 내는 침묵.
침묵이 이렇게 뜨거운 것이었나.
어느날 갑자기 '아! 그런거였구나.'하고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대답은 자연히 찾아왔다.
깨달을 때가 오면 깨닫게 된다. 성숙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 사람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이해가 늦더라도 고민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만의 깊이가 탄생한다.
애초에 우리는 무엇과 경쟁하고 있는 걸까?
학교는 언제나 '타인'과 비교하고, 다도는 '어제까지의 자신'과 비교한다.
깨닫는 것. 일생을 다해 자신의 성장을 깨달아 가는 것. '배움'이란 그렇게 자신을 성장 시키는 일이었다.
긴 안목으로 현재를 살아가다.
#펴낸곳_R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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