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벽 バカの壁 Baka No Kabe

 



#책


#바보의벽 #バカの壁 #BakaNoKabe


#요로다케시 #養老孟司 #YoroTakeshi

#옮긴이_양억관



저자는 누군가 "안다"고 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타인들의 태도를 말합니다.

혹자는 그렇구나,

혹자는 그런가!,

혹자는 진짜?

혹자는 아닐껄.

혹자는 저 사람은 모르는군, 나와 달라. 우리가 아냐!


저자는 화자와 청자, 아니 사람에게는 받아들임, 인정 등등에는 허들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허들은 그 견고함이 대단한데 저자는 그것을 '바보의 壁벽'이라 합니다.


바보는 아마도 자신이 바보인 줄 모를겁니다.


저자는 이 벽이 존재하는 이유, 이 벽이 작용하는 방식 등을 뇌과학을 중심으로 풀어내고 설명해 줍니다.


20 년이 넘은 책이지라 그런지 문제가 뻑뻑합니다만, 참 대단한 혜안이요, 통찰이라 느꼈습니다.

현대에 맞게 재발간되길 바랍니다.



<욕심 난 문장들>


'말하면 안다'는 말짱 거짓말


그렇다면 어디서 이런 차이가(남녀 학생의 대답) 생긴 것일까요? 그 대답은 주어진 정보를 대하는 자세 입니다.


즉, 자신이 알고싶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차단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여기에 벽이 있습니다. 이것도 일종의 '바보의 벽'입니다.


'알고 있다'의 오류


'상식(common sense)'이란 뭔가에 대한 지식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당연한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의 전제가 되는 상식, 당연한 것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 자체가 큰 착각입니다. 특히 그것은 남녀의 차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지식과 상식의 차이


설명한다고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ex. 출산의 고통)


현실이란 무엇인가


현실의 세부를 '안다'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기에 인간은 늘 확실한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것입니다.


방대한 '잡학'의 지식을 마구 나열한다고해서 '상식'이라는 큰 세계가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수상쩍은 과학


'과학적 사실'과 '과학적 추론'은 다릅니다. 기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고, 그것이 탄산가스 때문이라는 것은 과학적 추론 입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실' 조차도 하나의 해석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과학에는 반증이 필요하다.


너무도 '과학적'으로 타당한 것 같은 이론이 있다고 해도, 거기에 합치되는 데이터를 가득 모아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진정한 과학적 태도란, ~ 반증될 수 있는 모호한 부분이 남아 있음을 인정하는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확실성이란 무엇인가


입력은 오감이고, 출력은 최종적으로는 의식적으로 행해집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운동 입니다.


y = ax (y; 출력, x; 입력, a; 계수, 현실의 무게), 벌레와 동전 : a = 0, 계수 무한대의 원리주의


'개성을 기르라'는 기만


'공통 이해'를 추구하는 것이 문명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한다면, (개성을 기르라) 이건 참으로 모순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개성이 풍부한 정신병 환자


메뉴얼 인간


'조직이 원하는 개성'을 발휘하라는 모순된 요구


인간의 의식이란 철저히 공통성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공통성을 철저하게 확보하기 위해서 언어의 논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이라는 것이 존재 합니다.


뇌가 그렇게 공통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개성'이란 어디에 존재할까요? 개성은 애당초 나나 여러분이나 모두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이란 서로 통하지 않는 뭔가를 가지고 있는 법 입니다.


인간이란 애당초 주어진 것 밖에는 가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운동능력?)


'나는 나'가 아니다.


'자기 동일성'을 추구하는 작업이 우리들 각자의 뇌 속에서 매일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는 나'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항상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정보' 입니다.


영원히 남는 말을 정보라고 합니다.


자기의 정보화


만물은 유전하지만, '만물은 유전한다'는 말은 유전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정보는 유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불변한다는 것은 정보일 따름이고, 인간은 유전한다는 사실을 의식해야할 것입니다.


현대사회, '정보 사회', '의식 중심 사회', '뇌화 사회'


의식 중심이란 무엇일까요? 하루하루 변화하는 생명체인 나 자신이 '정보'로 변해버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군자표변'은 욕인가.


'알면' 죽는다.


안다는 것은 자신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을 뜻 합니다. 따라서 세계가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설령 그것이 어제와 똑같은 세계라 하더라도.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논어, 이인편)


도를 듣는다는 것은 학문을 하여 뭔가를 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앎 ~ 과거의 나는 끊임없이 소멸하고 늘 새로운 내가 태어나고 있으니 ~


사무라이는 두 말을 하지 않는다.


공통의식의 시간적 어긋남


개성보다 소중한 것


오히려 가만 내버려두는 것이 개성적일 수 있다는 생각이 중요합니다.


타인을 모르고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사회라는 것은 공통성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나만 타인과 다른 행동을 해서는 사회에서 통할 수 없습니다.


의식과 언어


우리가 외부 세계에 있는 뭔가를 감각적으로 관찰하고 음미하는 한, 모든 것은 다 다릅니다. 모든 사과는 제각기 다릅니다. 모든 인간이 각기 다른 인간이듯이.


그렇다면 '인간'이란 말로 그 모든 다른 인간을 똑같이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엄밀하게 보면 전부가 제각기 다르니까 말입니다.


뇌 속의 '사과 활동'


그런데 왜 의식은 그런 현실을 무시하고 '같은' 사과라고 인식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사과라는 말에는 외부 세계에 있는 사과와 뇌 속의 사과 활동이 동시에 들어 있습니다. 사과라는 하나의 말이 그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가진다는 것입니다.


정관사는 서양 언어에만 있는가.


神을 생각할 때 뇌는 어떻게 움직일까요?


뇌 속의 자급자족


뇌가 반응하기에 적합한 외부의 자극이 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뇌는 자극을 자급자족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우상의 탄생


(생각, 신에 대한 개념) 그것만으로는 인간은 불안을 느낍니다. 어떤 식으로든 구체적인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상이니 불상이니 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인간이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것은 아주 많습니다. 이것을 옛날에는 '개념'이라고 하였습니다.


아주 간단히 말하면, 신이란 인간의 진화, 뇌의 진화 그 자체입니다.


초인(超人)의 탄생, 플러스 알파의 뇌를 가진 초인, 현대인 플러스 알파 神


'몸'을 잊어버린 우리


'의식과 무의식'은 뇌 속의 문제, '몸과 뇌'는 개체의 문제, 그리고 '공동체'는 사회의 문제 입니다.


문무 겸비, 출력을 동반해야 학습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흔히 입력만을 의식하고 출력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몸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은 이걸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전문화된다는 것은 입출력이 한정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건강한 상태란 프로그램을 바꾸어서 늘 다양한 입출력을 반복함을 말합니다.


제한된 상태는 바깥에서 바라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무의식이란 것입니다.


'자기실현'이란 말을 하는 데, 자신이 뭔가를 실현하는 장은 외부에 존재합니다.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인생의 의미는 자신만의 완결이 아니라 늘 주변사람,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이란 자신을 길러준 공동체에 올바른 인간을 공급하는 행위 입니다.


(인생) 의미를 생각하는 행위와 과정 자체가 소중한 것입니다. 프랭클의 말을 빌리자면, 인생이 늘 우리에게 그것을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을 의식하라는 말은 모순이긴 하지만, 무의식이란 것이 있고, 그게 인간에게 소중하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4 시간 편의점) 왜 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을까요? 왜 자는 시간을 아까워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무의식을 인생에서 제외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삶의 중심이 된 증거 입니다.


오로지 깨어 있는 시간에 뭔가를 하는 것만이 인생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듯 합니다.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뇌의 크기는 현명함과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뇌의) 주름으로 보자면 돌고래가 인간보다 더 많으니, 분명 이건 머리가 좋고 나쁘고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려면 우선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을 시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로 학문의 본질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교육의 작품은 학생이라는 의식이 사라졌습니다.


학문이란 살아 있는 것, 매순간 바뀌는 것을 어떻게 늘 일정한 정보로 바꾸어내느냐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욕망은 억제되지 않으면 점점 몸에서 멀어져 갑니다.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습니다.


경제의 세계에는 실물 경제에 더하여 '허상의 경제' 같은 것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허상의 경제가 무엇이냐면 돈을 사용 할 권리만 이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보의 벽이란 어떤 종류의 일원론에서 비롯합니다. 바보에게는 벽의 내부만이 세상의 전부라서 건너편은 보이지 않습니다. 저편에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예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일원론의 배후에는 '나는 변하지 않는다'는 근거도 없는 확신이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 전제가 없으면 일원론은 성립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며 자기 자신이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적인 원리주의에 빠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이예야스형 입니다. 한 걸음 올라가면 그 만큼 멀리 볼 수 있지만, 한 걸음 오르기가 여간 힘드느게 아닙니다. 더욱이 짐까지 들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나 삶에는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로 보이지 않는 풍경이 있습니다.


절벽을 한 걸음이라도 더 올라 더 넓은 시야를 가지려는 동기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앎에 의해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이럴거야'라는 것, 이 책의 첫머리에서 말한 '상식'이 나는 궁극적인 보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이라면 이럴거야, 라는 세계는 아주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결국 그 길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내 생각 입니다.




#펴낸곳_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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