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18의 게시물 표시

다시 용기를 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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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써 내일을 준비하라 >  살다 보면 이별을 할 때가 생긴다. 때로는 사별을 하고 때로는 일터를 그만두고 때로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져야 한다. 그 이별하는 사람이 그 동안 크게 의지했던 사람인 경우도 있다. 그가 없으면 가게가 돌아가지 않을 것 같고 이런 생각도 든다. “이제 그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사나?” 그러나 이 세상에 사람이 없어서 못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과만 이별하지 않으면 된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면 된다.  이별의 순간에 자기연민에 빠지지 말라. “나는 패배자다. 내 모습이 얼마나 처량한가? 내가 이제 살아나갈 수 있을까?” 그러면 정말 영혼이 처량해진다. 이별의 순간에도 변함없이 승리자의 고백을 하라. “하나님! 이것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 있는 시련인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믿음의 고백을 듣고 ‘이별한 삶’을 ‘특별한 삶’으로 만들어주실 것이다.  본문에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죽음의 이별을 앞두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120세가 되었고, 출입하기가 힘들 정도로 노쇠해졌다. 민수기 20장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백성들이 불평한다고 분노를 가지고 바위를 지팡이로 때림으로 요단강을 건너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변화를 준비하고 새로운 리더인 여호수아를 준비시켰다(3절). 성공하는 사람은 대개 준비하는 사람이다.  미래를 준비하고 죽음의 때를 준비하고 땀을 준비하라. 왜 사람 사이에 갈등과 문제가 생기는가? 가장 큰 이유는 땀을 적게 흘리고 단기간에 많은 것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땀을 찾아야 행복도 찾아온다. 땀이 없이 노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힘든 것이다. 오래 놀아본 사람은 노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안다. 땀을 흘리지 않고 노는 것만 좋아하면 정말 오래 노는 수가 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한다. “하나님! 제게 새로운 기회를 주소서.” 그런 기도는 사실상 불필요한 기도다. 하나님은 늘 새로운 기회를

말씀을 멀리두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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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  지식은 힘이다. 지식을 쌓는 과정은 힘들어도 그 과정을 생략하면 평생이 힘들어진다. 시간이 없다고 하지 말라. 시간보다 노력이 없는 것이 문제다. 성적이 행복을 좌우하지는 않지만 지식은 행복을 크게 좌우한다.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맞지만 인생의 일부인 공부조차 게을리 하는 변명으로 그런 말을 하면 그것은 바른 태도가 아니다. “저 사람은 공부밖에 모르는 바보야.”라고 쉽게 말하지 말라. 나중에 보면 그런 바보의 명령을 들으며 일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지식도 힘이지만 진리는 더욱 큰 힘이다. 진리 중에서도 최대 진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이다. 말씀을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고 더욱 많이 알려고 하라. 어떤 사람은 말씀이 어렵다고 하지만 말씀을 지키는 것은 어려워도 말씀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단들은 말씀 지식이 없거나 신비하게 보이려는 태도 때문에 말씀을 어렵게 만들고 어렵게 가르칠 때가 많다.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깊은 진리는 혼란하기보다 잔잔하고 복잡하기보다 투명하다. 깊은 맛은 대개 담백한 맛이듯이 깊은 진리는 대개 단순한 진리다. 믿음도 깊어질수록 점차 순수해지고 나중에는 단순해지기까지 한다. 진리는 평범한 삶에서 발견되고 또한 평범한 삶을 낳을 때가 많다. 하나님은 평범한 일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실 때가 많다. 진리처럼 행복도 평범한 삶에서 얻을 때가 많다.  진리를 어렵게 여기는 것은 진리를 멀리하려는 구실일 때가 많다. 그런 구실이 없도록 하나님은 하나님의 명령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먼 것도 아니라고 했다(11절). 즉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은 너무 어려워서 인간이 깨달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력 있는 선생님은 쉽게 가르치고 실력 없는 선생님이 어렵게 가르친다. 하나님은 최고로 실력 있는 분이기에 진리를 어렵게 가르치시지 않는다.  진리는 신비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회개와 순종을 앞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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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개함으로 얻는 축복 >  왜 하나님은 가끔 징계하시는가?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서서 쓰임 받게 만들려는 목적도 있다. 쓰임 받는 사람은 대개 고난이 있었다. 고난의 땀은 승리의 전주곡이다. 군대의 극한 훈련에서 선임 병은 사고사 확률이 크게 낮다. 고난을 극복한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한 생도는 벌을 자주 주는 교관을 미워했는데 임관한 후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고통은 인생의 양약이 될 때가 많다. 특히 순종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는 데는 꼭 필요한 것이다.  한 사람이 암 4기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때부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보람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죽을병은 은혜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만들면 고난도 큰 유익이 된다. 그런 유익 때문에 때로 하나님은 징계하신다.  사람은 위로와 격려와 칭찬을 좋아하지만 입에 쓴 약이 몸에 좋듯이 쓴 소리가 영혼에 좋을 때도 많다. 하나님의 징계도 자녀 사랑의 증표일 수 있다. 하나님은 기분대로 일처리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녀를 성숙시키려고 징계하신다. 징계는 하나님의 사랑을 새롭게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자녀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있기에 자녀의 연약성과 부패성을 제거하려고 징계도 허락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징계는 순종적인 사람을 만든다. 육신의 아버지가 징계해도 순종하는데 하나님 아버지께는 더욱 순종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잘 알고 내가 어떻게 해야 바르게 될 지도 잘 아신다. 그래서 때로는 징계를 통해 회개와 성숙의 기회를 주신다. 징계 과정에 들어서면 지금은 힘들고 어렵고 아프지만 그 과정을 잘 이겨내라. 징계 과정을 단축시키고 승화시키는 가장 위대한 길은 회개로부터 출발한다.  회개가 무엇인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회개는 궁극적으로

Unlocked 잠금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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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you were alienated from God . . . . But now he has reconciled you.  Colossians 1:21–22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화목하게 하사 골로새서 1:21-22 A boy born with cerebral palsy was unable to speak or communicate. But his mother, Chantal Bryan, never gave up, and when he was ten years old she figured out how to communicate with him through his eyes and a letter board. After this breakthrough, she said, “He was unlocked and we could ask him anything.” Now Jonathan reads and writes, including poetry, by communicating through his eyes. When asked what it’s like to “talk” with his family and friends, he said, “It is wonderful to tell them I love them.” 뇌성마비  장애를 안고 태어난 소년은 말이나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그의 어머니 찬탈 브라이언은 아들이 열 살 되었을 때 드디어 두 눈과 문자판을 통해 그와 소통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이런 돌파구를 찾은 후 어머니는 말했습니다. “이제 아들은 잠김에서 풀렸고 우리는 아이에게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어요.” 조나단은 지금 자신의 눈으로 소통하며 시를 읽고 쓰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이 어떤지 묻는 질문에 그는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 너무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Jonathan’s st

떠나는 사람도 축복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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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의 경계를 넘지 말라 >  본문에는 야곱과 라반이 언약을 체결할 후 헤어지는 장면이 나온다. 라반은 그곳에 세운 돌 무더기 기둥을 증거와 경계로 삼아 서로 넘어가서 해치지 말자고 제의했다(51-52절). 언약은 서로를 인정해주려고 할 때 온전해진다. 서로의 경계를 넘지 말고 서로의 영역을 인정해주라. 서로 해치려고 하지 말라. 하나님이 증인으로서 모든 상황을 다 보신다고 믿으면 원수조차 스스로 해치려고 하지 말라. 인간적으로 서로 해치려고 하면 다 망한다. 원수 갚는 일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손길에 맡기라.  좋은 관계에서도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 서로 상처를 주게 되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 서로를 성숙시키게 된다. 과거에 우리나라 문화에서 제일 부족했던 것이 서로 존중해주고 세워주는 삶이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그런 문화가 잘 반영된 속담이다. 성도는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확산시키는 일원으로서 자신과 유사한 반열이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잘 되는 모습을 보아도 배 아파하지 말고 그때 오히려 소화가 잘되는 훈련을 하라.  남이 많이 벌어 많이 헌신할 때 "하나님! 그를 축복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되게 하소서!“라고 축복 기도를 해주면 얼마나 복된 모습인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정당하게 성공할 때 격려와 도전이 받는 품성을 기르라. 그런 품성과 인간관계를 누가 제일 시기하고 방해하는가? 사탄이다. 그런 사탄의 영적인 공격을 막아내고 자기 영혼과 삶을 지키려면 남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도록 하라.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깨질 때도 있다. 어떤 때는 마땅하고 뚜렷한 이유가 없이 관계가 깨지기도 한다. 그러면 그것도 대개 사탄의 역사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내가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고 한 말이 상대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도록 누가 만드는가? 바로 사탄이다. 사탄은 에덴동산 때부터 지금까지 가정과 교회와 거룩한 공동체와 인간관계를 그렇게 파괴해왔다. 인간

성도의 매력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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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겨주는 삶의 축복 >  분당에서 교회를 개척할 때 처음 몇 년 동안은 매일 새벽 4시쯤 아무도 모르게 교회 청소를 하며 새벽기도회를 준비했다. 저의 사무실과 책상은 잘 정리하지 못했어도 매일 새벽에 기도하려고 찾아오는 성도들에게는 쾌적한 기도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너무 행복했고 하나님의 축복이 쑥쑥 임하는 느낌이었다. 교회 청소도 기도만큼 중요하다. 교회 청소를 하면서 기도하면 그 기도가 얼마나 복된 기도가 되겠는가?  당시에 목회자의 청소 장면을 보면 성도들이 미안하게 여길 수 있고 겸손의 과시로도 여길 수 있기에 성도들이 볼 때는 억지로 안 했다. 대신 성도들 안 볼 때 열심히 청소해서 축복을 내 것으로 만들어갔다. 그리고 누군가가 이 축복을 같이 나누어 가졌으면 해서 어느 날부터 청소를 한동안 쉬어 봤다. 그때 한 나이 든 집사님이 제가 청소하는 것을 눈치 채고 저 대신 대걸레를 들었다. 그때 마음속에 깊은 감동이 있었다.  복 받는 길은 어렵지 않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생각보다 하나님께 감동을 드릴 생각을 앞세우면 된다. 교회생활을 잘하는 길도 어렵지 않다. 교회로부터 무엇을 얻을 생각보다 교회를 감동시킬 생각을 하면 된다. 요새 많은 교인들이 큰 교회만 찾아 등록한다고 하지만 작은 교회에 등록하는 사람도 여전히 있다. 왜 그런가? 순수해서 그렇거나 아니면 교회로부터 인맥, 위신, 혜택, 존재감 등을 얻을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영안이란 은밀한 장면이나 환상을 볼 수 있는 눈만이 아니다. 교회의 필요를 볼 수 있는 눈도 영안이다. 교회 구석구석의 쓰레기나 거미줄이나 결손 부분은 목회자가 제일 잘 보는 편이다. 제일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들이 보여 조용히 봉사의 손길을 펼쳐서 교회를 깨끗하게 한다면 그 장면을 사람은 보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 보신다. 환상을 보는 영안보다 교회의 청소할 부분이 보이는 영안이 더 복된 영안이다. 잘 믿는 것을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으로 나타내는 삶처럼 건강하고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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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선을 다해 땀을 흘리라 >  예전에 교회에서 비몽사몽간에 꿈을 꿨다. 설교를 준비하는데 갑자기 주일 아침에 누가 제 사무실을 차로 들이받았다. 주일 예배 직전에 말씀을 깊이 묵상해야 할 때 그런 일이 벌어지니까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다급해지니까 말씀이 더 떠오르지 않으면서 심적인 고통이 더 심해졌다. 그렇게 고통 중에 신음하다가 다행히 잠에서 깨었다. 그때 깨자마자 제일 먼저 입에서 나온 말이 이런 말이 나왔다. “꿈보다 현실이 낫구나!”  꿈꿀 때마다 꿈보다 현실이 낫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꿈속에서는 한번 길이 막히면 온통 회색빛이고 꿈에서 깰 때까지 길이 안 보인다. 반면에 현실 속에서는 아무리 길이 막혀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절망 중에도 늘 희망이 보이니까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는다. 예수님이 주시려는 가장 중요한 축복 중의 하나가 평안이다. 평안은 행복의 원천이다. 평안이 없으면 행복도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유언 설교에서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셨다(27절).  평안을 노래하며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 인생은 최선을 다할 때 아름답게 된다. 왜 예수님의 삶이 아름다운가? 최선을 다해 불꽃처럼 사셨기 때문이다. 왜 길이 열리지 않느냐고 불평하지 말라.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린다. 하나님은 축복을 주실 때 완성품으로 그냥 안겨주지 않는다. 참된 축복은 일하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땀과 함께 주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원을 품고 땀을 흘리게 하신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쓰임 받는다. 경제가 어려워져도 땀을 흘리고 최선을 다하면 살 길은 늘 있다. 자리를 잃을 것보다 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라. 부족한 존재로서 좋은 자리는 늘 자신에게 과분한 줄 알라. 겸손한 마음으로 자리를 잃는 것에 대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맡은 자리를 잘 감당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면서 열매를 얻는 일보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에 더 관심을 두라. 땀이 없으면 남을 찔러대는 가시나무처럼 되

Telling Time 시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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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because the days are evil.  Ephesians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서 5:16 “Westerners have watches. Africans have time.” So said Os Guinness, quoting an African proverb in his book  Impossible People.  That caused me to ponder the times I have responded to a request with, “I don’t have time.” I thought about the tyranny of the urgent and how schedules and deadlines dominate my life. 오스 기니스는  ‘불가능한 사람들’이란 그의 책에서 아프리카 속담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서양인에게는 시계가 있고, 아프리카 사람에게는 시간이 있다.” 그의 글은 다른 사람들의 부탁에도 “시간이 없다”고 거절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나는 급한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시간표와 마감 시간에 쫒기 듯 사는 내 삶에 대해 생각 해 보았습니다. Moses prayed in Psalm 90, “Teach us to number our days, that we may gain a heart of wisdom”(v. 12). And Paul wrote, “Be very careful, then, how you live . . .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because the days are evil”(Ephesians 5:15–16). 모세는 시편 90편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12절)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세월을 아끼라 때

지나친 호기심을 주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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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혜를 기억하며 살라 >  시인 바이런은 <여자에게(To Woman)>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여자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거짓말쟁이  풋내기들은 그녀를 얼마나 쉽게 믿는가  처음 볼 때 얼마나 맥박이 고동치는가  빛나도록 푸르르게 구르는 눈을 볼 때는  총총한 검은 눈동자, 부드러운 눈꺼풀,  녹갈색 눈썹 아래에서 빛나는 눈빛 때문에  모든 맹세를 얼마나 쉽게 믿어버리고  기꺼운 혼인 서약을 얼마나 쉽게 듣는가  그 서약이 오래 지속되길 희망하지만  자 보라 그녀는 하루 만에 변하고 만다  다음의 기록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리라  여자의 맹세는 모래에 쓰인 것이란 기록은  격정의 시인 바이런은 여자가 잘 변한다고 노래했지만 사실상 사람은 모두가 잘 변한다. 시인 버딜론은 노래했다. “마음은 천 개의 눈을 가졌지만 심장은 하나뿐이다.” 사람은 천 개의 마음의 눈을 가졌기에 다 변덕스럽지만 하나뿐인 심장의 주인을 만날 때 그 주인에게 부분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전폭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성도는 하나뿐인 심장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전폭적으로 반응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선택된 백성이 은혜를 배반하고 다른 신에 눈을 돌리면 하나님의 진노로 무서운 징계의 대상이 된다. 자녀가 클수록 혼자서 큰 줄 알고 부모님의 은혜를 잊고 부모의 품을 떠나려고 하듯이 사람도 지식과 소유가 많아지고 삶이 편안해지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할 때가 있다. 그런 교만이 없게 하라. 은혜를 기억해야 은혜가 지속된다. < 지나친 호기심을 주의하라 >  왜 하나님은 사람의 지식에 한계를 두셨는가? 율법을 그대로 지키도록 하기 위해서다(29절).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잘 알 수 없다. 사람들은 가끔 고통 중에 묻는다. “하나님! 왜 제가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합니까?” 그 정확한 이유를 하나님은 알려주시지 않을 때가 많다. 믿고 순종하는 삶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다.

언약적인 사랑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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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 >  사람이 차별을 통해 자기를 부각시키려는 심리는 태초부터 있었다. 그런 심리를 나쁜 리더가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많은 사회 갈등이 표출되고 증폭된다. 그런 문제의식을 느끼면 불의한 차별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자기 마음과 정신을 잘 붙잡으라.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대적들은 예수님도 차별 감정을 이용해 매도했다. 차별로 자기를 부각시키려는 시도는 보편적인 성향이다.  예수님은 베들레헴에서 출생했지만 실질적인 고향은 갈릴리 나사렛이었다. 갈릴리 나사렛은 갈릴리 호수 남서쪽, 해발 433미터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예수님은 종교, 행정, 문화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갈릴리 나사렛에서 성장하셨다. 갈릴리는 ‘이방의 갈릴리’로 불릴 정도로 소외되고 천대받는 땅이었다. 예수님은 소외된 어둠의 땅 갈릴리를 초기 사역지로 선택하고 갈릴리의 중심도시인 가버나움을 전도의 본거지로 삼았다. 예루살렘이 아닌 소외된 갈릴리에서 큰 빛이 비친 것이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말했다. “내가 메시야를 만났어. 나사렛 예수란 분이야.” 나다나엘이 대답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어?” 오늘날 말로 이런 말이다. “아무렴 아오지 탄광에서 인물이 날까?” 그러자 빌립이 말했다. “와 보라!” 그래서 예수님께 갔다가 나다나엘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왕입니다.”라고 고백했다. 편견으로 메시야를 놓칠 뻔한 것이다.  차별의식으로 진리와 좋은 인물을 놓치고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자초할 때도 얼마나 많은가? 불의한 차별의식을 버리라. 구세주 예수님이 소외된 땅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란 사실이 주는 도전은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통전적 믿음을 가진 통전적 인간상을 갖추고 사람의 차이는 인정하되 사람을 불의하게 차별하지는 말라. 불의한 차별이 없어야 공동체가 힘 있는 복된 공동체가 된다.  이스라엘에서 인구조사 때는 전쟁터에서 싸울 20세 이상의 남자만 계수했지만 모압

Every Moment Matters 매순간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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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Philippians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 1:21 When I met Ada, she had outlived her entire group of friends and family and was living in a nursing home. “It’s the hardest part of getting old,” she told me “watching everyone else move on and leave you behind.” One day I asked Ada what kept her interest and how she spent her time. She answered me with a Scripture passage from the apostle Paul(Philippians 1:21): “For to me, to live is Christ and to die is gain.” Then she said, “While I’m still around, I have work to do. On my good days, I get to talk to the people here about Jesus; on the hard days, I can still pray.” 내가 만난 에이다 는 친구나 가족들과 모두 사별하고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늙으면 가장 힘든 것은 사람들이 나를 놔두고 먼저 가는 것을 봐야하는 것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에이다에게 어떤 일에 관심이 있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립보서 1:21)라고 했던 바울 사도의 성경말씀으로 대답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이 있지요. 몸이 괜찮은 날에는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하고요, 힘든 날에는 기도를

신세대에게 필요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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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혜를 기억하라  모세는 광야생활 40년 후 이스라엘의 신세대와 모압에서 새롭게 언약을 갱신하면서 먼저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1-3절). 은혜를 기억하라는 뜻이다. 가끔 “과거를 잊으라.”고 말하지만 과거의 기억을 잘 승화시키면 더 좋은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과거의 상처나 나쁜 기억도 때로는 필요하다. 성령충만한 믿음을 가지면 그것들을 더 좋은 미래를 위한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과거의 나쁜 기억을 들추어 부정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나쁜 것이지 그것을 반면교사로 삼아 긍정적인 행동에 나서면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과거의 은혜 받았던 좋은 기억들은 더욱 필요하다.  가끔 과거의 나빴던 일과 좋았던 일을 떠올리면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다.”는 ‘에벤에셀의 감사’가 마음속에 있게 하라. 지금 말씀 앞에 겸허하게 선 것은 하나님께서 여러 풍파 중에도 나를 아름답게 이끄셨다는 증거다. 현재 믿음 안에 있다면 내 약점이나 과거의 안 좋은 상처에 빠져들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은혜로 함께 하셨고 현재도 그렇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주 기억해내어 그 은혜에 젖어드는 습관을 들이라. 2. 깨닫고 감사하라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가 중요하다(4절).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을 가지도록 과거의 은혜를 상기시키는 말씀을 전했다(5-6절). 심은 대로 거둘 수만 있어도 은혜다. 심은 대로 거둬지지 않을 때도 많다. 평범하고 당연한 일에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 특별하고 신기한 기적과 치유와 응답의 은혜만이 은혜가 아니다. 삶의 매 순간이 은혜다. 평범한 일상에서 넘치는 은혜가 있음을 깨달을 때 마음이 풍성해지고 삶도 풍성해진다. 새로운 은혜만 바라지 말고 이미 있는 은혜를 깨달으라.  너무 기적을 추구하지 말라. 바다 위를 걷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라 매일 땅 위를 걸을 수 있는 것도 기적이다. 병이 신기하게 나아야 기적인 줄 알지만 사실상 병이 생기지 않는 것이 더 큰 기적이다. 문제가 기

Impaired Judgment 잘못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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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not judge, or you too will be judged.  Matthew 7: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태복음 7:1 I’ve been quick to judge anyone I saw walking in the street while staring at a phone.  How could they be so oblivious to the cars about to hit them?  I’ve told myself.  Don’t they care about their own safety?  But one day, while crossing the entrance to an alleyway, I was so engrossed in a text message, that I missed seeing a car at my left. Thankfully, the driver saw me and came to an abrupt stop. But I felt ashamed. All of my self-righteous finger-pointing came back to haunt me. I had judged others, only to do the same thing myself. 나는 평소에  휴대폰을 보며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면 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쉽게 판단했습니다. ‘저러다가 차에 치인다는 걸 왜 모를까? 자기 안전에 관심도 없나?’ 그런데 내가 어느 날 한 골목길의 입구에서 길을 건너면서 문자 메시지를 보느라 내 왼편의 차를 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운전자는 나를 보고 차를 급하게 멈췄습니다.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독선으로 남을 손가락질했던 것이 모두 나에게로 돌아왔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했던 내가 똑같은 행동을 한 것이었습니다. My hypocrisy is the kind of thinking that Jesus addressed in the Sermon on the Mount: “First tak

슬픔을 기쁨으로 만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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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려워하지 말라  야곱이 우여곡절 끝에 벧엘로 이주한 후 그때부터는 편안해지는가 싶었는데 얼마 후 지극히 사랑했던 아내 라헬을 잃는 상황이 펼쳐진다. 라헬이 베냐민을 낳을 때 산고가 심하자 산파가 라헬에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말라 지금 네가 또 득남하느니라(17절).” 그때 야곱은 12번째 막내아들을 얻음으로 그 아들들을 통해 ‘완성된 축복’을 상징하는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형성된다. 그처럼 최대의 축복 전에 산고의 진통이 있을 때가 많다. 고난은 영광으로 가는 통로나 다리가 될 때가 많다.  요한복음 12장 23절에서 예수님이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라고 말씀했을 때 제자들은 “이제 주님이 뜨시겠구나! 나도 한 자리 얻겠지.” 하고 오해했겠지만 예수님이 얻을 영광은 십자가를 지는 것이었다. 영광과 축복을 오해하지 말라. 십자가를 피하면 영광과 축복을 얻지 못한다. 죽어야 살고 헌신해야 복 받는다.  어떤 사람은 의문을 품는다. “내가 이렇게 죽었는데 왜 문제는 풀리지 않고 더 어려워질까?” 상황과 인간관계가 어려워지면 반전의 역사를 기대하며 결심한다. “내가 죽자.” 그렇게 결심하고 죽었는데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어느새 자기가 살아나 하나님께 따진다. “하나님! 제가 이렇게 죽었는데 왜 아직도 문제가 풀리지 않나요?” 사람에게도 따진다.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그럴 수가 있느냐?” 죽은 줄 알았더니 벌써 살아나 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체 한 것이다. 죽으면 많은 열매가 맺히지만 죽은 체 하면 아무런 열매도 없다.  선거 때 입후보자들은 겸손히 허리를 굽히고 죽은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선거만 끝나면 어느새 허리가 펴지고 머리가 뻣뻣해진다. 실제적인 헌신도 없이 죽은 체 하는 정치꾼과 같은 영성꾼이 되지 말라. 학생이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거나 선수가 연습하지 않고 승리를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듯이 성도가 십자가를 지지 않고 축복을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교회의 어떤 필요가 생각나면 “하나님! 이 필요를 생각나게 해

마음의 변화를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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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구하는 마음을 버리라 >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요구하면서 살면 있는 행복도 사라지고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베풀며 살면 없는 행복도 되찾을 수 있다(9-10절). 행복을 막는 제일 요소는 ‘요구하는 심령’이다.  요구하는 심령은 축복을 받는 것만 좋아하고 축복을 나누고 사명을 행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또한 하나님을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하는 채무자처럼 생각하고 자신에게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나지 말아야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신앙은 언제 무너질까 아슬아슬하다.  어떤 집회에서 이렇게 선동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좋은 차와 좋은 집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든 병이 다 낫고 돈도 많이 법니다.”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이 “아멘!”을 외친다. 그런 모습은 하나님을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는 천상의 심부름꾼처럼 여기는 모습이다.  미국의 한 TV 복음전도자는 청중들에게 집의 냉장고에 원하는 것의 그림을 붙이고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라고 했다. 계속 바라보고 고백하면 정말 생긴다고 하면서 냉장고에 캐딜락, 집,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붙이게 했고 심지어는 청년과 처녀는 잘 생긴 남자와 아름다운 여자를 붙이게 했다. 하나님이 그 모습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기복주의는 참된 믿음의 대표적인 적이다.  어떤 사람은 기도할 때 공중으로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친다. “하나님! 이것을 반드시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요구조건을 상세하게 말하고 하나님께서 이뤄줘야 할 범위까지 지정한다. 그처럼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는 하나님께 요구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행복의 파랑새는 요구하는 심령이 아닌 순종하는 심령에 찾아온다.  기복주의로부터 자신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채무자로 몰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원하는 방법대로 해달라는 요구를 버리라. 요구하는 심령은 나중에 반드시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한다. “네 믿음대로 되라. 바라보면 이뤄진

예수님 안에 있는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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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매를 많이 맺는다  믿음의 축복에는 천국의 축복뿐만 아니라 치유와 성공과 가정의 축복도 있다. 그 축복 중에서도 최고의 축복은 자기를 변화시키는 축복이다. 자기를 변화시킨 사람이 세상도 변화시킬 수 있다. 예수님을 멀리 하면 일이 되는 것 같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성패는 “예수님을 모시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성도가 열매를 많이 맺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신다. 그런 열매 맺는 인생을 만들려고 나를 부르셨다.  약점과 허물이 많고 억지로 순종할 때가 많아도 기본적으로 예수님 안에만 있으면 축복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약점이 많아도 한두 개 있는 장점을 보고 축복해주신다. 약점이 많아도 주님 안에 있고 말씀 안에 있으면 약점은 장점으로 변하고 위기는 기회로 변한다. 자신감을 잃지 말고 큰 축복을 기대하며 살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라. 예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은 나를 통해 큰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이다. 예수님 안에 있으면 작은 능력으로도 큰 열매를 얻지만 예수님을 버리면 큰 능력이 있어도 실패로 끝난다.  어느 날 한 기독병원에 입원한 임산부가 병원 복도와 각 병실에 걸린 예수님의 액자에 반감을 가지고 간호사에게 액자를 떼어달라고 했다. 간호사가 거절하자 담당의사에게 부탁했다. 담당의사도 거절하자 분노하며 중얼거렸다. “나는 내 아이가 절대로 저 그림을 못 보게 할 거야.” 얼마 후 출산한 그녀가 통곡했다. 아이가 시각장애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자기 말대로 그 아이는 예수님을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예수님을 삶에서 떼어내는 것은 불행의 전조다. 그러나 아무리 부족해도 예수님을 붙잡으면 그때부터 복된 삶이 펼쳐진다. 2. 쓸모 있는 인생이 된다  예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면 쓸모없게 되고 예수님 안에 거하면 쓸모 있게 된다(6절). 믿음의 축복은 나 혼자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축복이 되어야 한다. 내가 받은 복이 남에게도 복이 되게 하라. 남에게 유익을 주지 않는 내 복은 진짜 복이 아니

예수님 안에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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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이 있으면 일어난다 >  한 소녀가 어렸을 때 마마에 걸렸다. 낫긴 했지만 얼굴에 마마 자국이 났다. 거울을 보면 눈물이 나오고 심한 열등감에 삶의 의욕이 없었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엄마가 어느 날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얘야! 얼굴 때문에 너무 실망 마라. 네가 어렸을 때 3명이 동시에 마마에 걸렸는데 네 친구 2명은 죽었지만 하나님이 너만 살려주셨어. 네 마마자국은 부끄러운 자국이 아니라 은혜 받은 자국이야.”  그때부터 그녀는 자기 얼굴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했다. 그러자 더욱 큰 은혜의 길이 열려서 미국 유학도 가게 되었다. 또한 유학 중에 좋은 남자를 만나 먼저 프러포즈를 해서 결혼하고 남편을 잘 도와서 영향력 있는 목회자로 만들었다. 어려운 자리도 믿음 안에서는 오히려 은혜의 자리로 변한다. 중요한 것은 나의 현재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나의 믿음이다. 그런 믿음을 얻기 위해 가끔 어려움도 겪을 필요가 있다. 자기가 최고인 줄 알면 믿는다는 것이 힘들어지고 자기가 부족한 줄 알아야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다.  어떤 불신자는 큰소리친다. “너희 믿는 사람들! 나처럼 한번 살아봐라. 내가 너희보다 낫다.” 그 큰소리가 자신의 자녀가 고열에 며칠만 신음해도 곧 사라진다. 사람은 고통을 겪는 만큼 더 진보하고 지혜로워지고 성숙해지고 참된 믿음도 생긴다. 믿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믿음이 없으면 가능성이 많아도 작은 일로 좌절해서 결국 실패하지만 믿음이 있으면 시련 중에 작은 가능성만 보여도 곧 일어나 성공적인 삶을 이뤄낸다.  어떤 세일즈 왕은 판매가 거절당할 때마다 오히려 웃는다. 누군가 궁금해서 물었다. “그렇게 거절당해도 웃음이 나와요?” 그가 대답했다. “제 경험에 의하면 평균 11번 거절당해야 물건이 팔렸습니다. 그런데 한번이라도 더 거절당하면 물건 팔 때가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아서 그래요.” 얼마나 자신감 넘치는 삶인가? 그처럼 인생의 시련을 통해 하나님과도 더 가까

성공적인 삶을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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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서 8장은 율법의 옛 언약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언약을 비교하고 새 언약이 얼마나 소중한 언약인지를 논증한 장이다. 그 중에서 본문은 새 언약을 받은 신약 성도가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준다. 신약 성도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생각과 마음을 키우라  하나님은 신약 성도의 생각과 마음에 하나님의 새로운 법을 기록했는데 그 법의 핵심 내용은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고 너희는 내 백성이다.”라는 것이다(10절). 성도는 생각과 마음에 “나는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다.”라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각과 마음을 키워야 성공과 행복 가능성도 커진다.  ‘이해력’보다 ‘인정력’이 중요하다. 내 이해력을 너무 믿지 말라. 내 이해력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사람의 다름도 인정하라. 이해되지 않아도 인정할 것을 인정할 때 성공적인 삶의 가능성이 커진다. 다 이해해야 인정하겠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사람마다, 지역마다, 나라마다, 문화마다 차이가 크다. 미국은 한 나라지만 각 주마다 법이 다르다. 그 중에는 이해가 안 되는 법도 많다.  알라스카 주에서는 곰을 총으로 쏴도 되지만 사진 찍으려고 잠자는 곰을 깨우면 불법이다. 애리조나 주에서는 선인장을 자르면 징역 25년형에 처해질 수도 있다. 아칸소 주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한 달에 한번 이상 때리면 불법이다. 미시간 주에서는 아내가 남편의 허락 없이 머리카락을 자르면 불법이다. 몬태나 주에서는 처녀가 혼자 낚시하면 불법이고 뉴저지 주에서는 경찰에게 인상을 쓰면 불법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는 틀린 음정으로 노래하면 불법이고 오하이오 주에서는 여자가 한집에 다섯 명 이상 살면 불법이다. 오클라호마 주에서는 남의 햄버거를 베어 먹으면 불법이고 워싱턴 주에서는 부모가 부자인 것처럼 허풍을 떨면 불법이다.  사람마다, 문화마다 차이가 많다. 그것을 가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