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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믿음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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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나 2장 7-10절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 구원의 하나님을 생각하라 >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있을 때 구원의 하나님을 생각하자 자기 기도가 응답받게 되었다고 고백했다(7절). 그 고백은 생각의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 생각에 따라 환경도 얼마든지 달라진다. 감옥이 범죄와 상처의 온상도 될 수 있지만 회개와 재기의 터전도 될 수 있다. 폭풍이 배를 침몰시키기도 하지만 더 빨리 나가게도 한다. 같은 물로 뱀은 독을 만들지만 벌은 꿀을 만든다. 하나님을 앞세워 생각하면 실패의 현장을 재기의 터전으로 만들 수 있다.  어려움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어려움을 통해 교훈을 얻는 것이다. 어려움을 통해 얻은 교훈은 무엇보다 가치 있는 교훈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때는 극심한 시련과 상처 중에도 변함없이 주일예배에 참석할 때다. 믿음 안에서는 가장 고통스러울 때가 조만간 가장 아름다운 때로 변한다. 나중에 보면 어려웠던 때가 가장 아름답고 복된 때였다고 고백할 것이다. 천국에서 요나를 만나면 요나는 고래 뱃속에서의 3일간이 가장 아름다운 때였다고 고백할 것이다.  생각을 감사로 채우라. 요나는 자기 생각을 감사로 채워 결국 회복의 은혜를 입었다. 요나는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배하는 이단이나 우상숭배자의 가장 큰 특징이 은혜를 배반하는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자신은 감사하는 목소리로 제사를 드리고 자기 서원을 이행하겠다고 고백했다(8-9절). 그 고백을 듣고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는가? 결국 하나님이 그 물고기에게 요나를 토하라고 말씀하심으로 그

죽기를 각오하고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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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나 1장 14-17절 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 희망을 가지고 살라 >  무리들이 풍랑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요나를 바다로 내던지자 바다가 평온해졌다. 그때 무리들은 폭풍의 제일 원인이 하나님의 종의 불순종에 있다는 사실과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자 무리들은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했다(16절). “서원을 했다.”란 표현을 보면 단순히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제사를 드렸다는 말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기로 결단했다는 암시다. 요나를 배 밖으로 던지면서 엄청난 반전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다 요나가 죽은 줄 알았지만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미리 준비해서 요나를 삼키고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게 하셨다(17절). 그 3일은 요나의 삶에서 가장 위대한 3일이었다. 그때 요나가 회개하고 기도하며 자기 사명을 새롭게 하자 마침내 물고기는 요나를 뱃속에서 토해냈고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니느웨로 가서 말씀전파의 사명을 완수했다. 멋진 반전의 역사다.  세상에서 제일 기쁜 일은 옛날에 나쁜 평가를 받았다가 오해도 풀리고 한 차원 더 성숙해지면서 다시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이다. 아직 살아있기에 그런 재평가의 기회는 늘 있다. 희망을 가지라. 과거에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도 얼마든지 칭송받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대중의 여론은 나의 희생적인 태도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런

니느웨에 빛을 비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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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나 1장 1-6절 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 기도는 자판기가 아니다 >  어느 날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 요나는 그 사명을 회피하고 니느웨와는 180도 반대쪽에 있는 다시스로 가려고 뱃삯을 주고 배에 올랐다. 요나의 사명 회피는 잠깐 성공한 것 같았지만 곧 하나님이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심으로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되었다(4절). 그때 사공들은 두려워해서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면서 난리를 피웠다. 그런 난리 통에서도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들었다(5절).  당시 큰 풍랑 앞에서 사공들이 두려워서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그처럼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큰소리로 기도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조용히 잠자는 것’이 더 나은 믿음의 표식이다. 기도도 다 좋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도는 ‘불안해하며 하는 기도’가 아닌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다. 기도하는 행위 자체가 무조건 응답을

은혜를 기억하며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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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오바댜 1장 19-21절 19 그들이 네겝과 에서의 산과 평지와 블레셋을 얻을 것이요 또 그들이 에브라임의 들과 사마리아의 들을 얻을 것이며 베냐민은 길르앗을 얻을 것이며 20 사로잡혔던 이스라엘의 많은 자손은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이 땅을 사르밧까지 얻을 것이며 예루살렘에서 사로잡혔던 자들 곧 스바랏에 있는 자들은 네겝의 성읍들을 얻을 것이니라 21 구원 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 최종 승리를 확신하라 >  이스라엘의 회복될 때 다시 고토를 차지한다(19-20절). 또한 영적인 회복은 물질적인 회복을 따르게 해서 한다. 본문 21절을 보라. “구원 받은 자들이 시온 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복음을 통해 종국적으로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임을 암시하는 말씀이다. 왜 성도는 현재의 고난과 시련 중에도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가? 최종 승리가 보장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할머니가 임종 전에 목사를 모시고 장례에 대해 상의할 때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목사님! 제가 죽으면 관에 누운 제 손에 포크를 쥐어주세요.” 식사할 때 먼저 포크를 내놓으면 사람들은 곧 식사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처럼 사람들이 자기 손에 있는 포크를 보고 천국 잔치에 참석하는 영상을 그리게 해서 조객들의 마음에 위안을 주려고 한 것이었다. 그 할머니는 최종 승리를 확신했다. 그 확신이 있으면 죽음조차 기쁨의 재료로 만들 수 있다.  왜 원수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평안을 찾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성도의 최종 승리를 믿기 때문이다. 원한도 하나님께 맡기라. 내가 맡으면 나의 원한은 영원히 풀리지 않지만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다 풀어주신다. 내가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인해 받은 고통도 하나님은 기억하신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된다. 잘못된 일을 내가 기억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시지 않지만 내가 기억하지

말씀을 듣고 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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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8장 19-21절 19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20 어떤 이가 알리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 가정은 들어주는 공동체다 >  공동체에는 학술적이고 수리적인 ‘좌뇌가 발달된 사람’뿐만 아니라 예술적이고 감성적인 ‘우뇌가 발달된 사람’도 필요하다. 즉 시험을 잘 치는 사람과 성품이 좋은 사람이 다 필요하다. 중간 리더 자리는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이 차지해도 좋지만 상위 리더 자리는 성품이 좋은 사람이 차지하는 것이 좋다. 그런 원리대로 사람이 배치되면 보다 나은 공동체가 되고 시험도 잘 치고 성품도 좋은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더욱 복된 공동체가 된다.  좌뇌가 발달해 논리 실력만 있는 사람이 사회를 주도하면 사회가 많이 메말라지고 치열한 경쟁으로 정신은 치이게 되고 치우치게 된다. 또한 그런 사람만 다 머리를 차지하면 시는 누가 쓰고 목회는 누가 하고 후대를 사랑으로 키우는 일은 누가 하는가? 우뇌가 발달된 리더도 꼭 필요하다. 법학도 필요하지만 문학도 필요하다. 시험을 잘 치는 사람만 높여주지 말고 사랑과 지혜와 배려가 넘치고 믿음이 좋은 사람을 잘 발굴해서 높여줄 필요도 있다.  요즘 사회를 보면 사법시험에 붙은 사람의 큰 힘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사법시험 한번 잘 친 것으로 판검사로서 몇 십년간 너무 큰 권한을 가지는 것은 불합리하고 그들 자신에게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법을 앞세워 검사로서 정죄하고 판사로서 판단하다가 높아진 마음이 고착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극복하고 자신을 늘 성찰하며 법조인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일상에서는 겸손하게 사는 신실한 법조인들도 있다. 결국 시험을 잘 친 사람보다 여러 면에서 잘 배우고 종합적인 실력과 선한 가치를 가진 사람이 리더인 사회가 복 받은 사회다.  사법시

행한 대로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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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오바댜 1장 15-16절 15 여호와께서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웠나니 네가 행한 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네가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 형제를 향한 복된 자세 >  어떤 사람은 날씨가 춥거나 경제가 어려우면 어렵게 사는 사람을 떠올리며 살길이 막막한 사람을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을 가진다. 실제로 돕는 것 여부를 떠나 그런 마음을 가지면 혼란한 생각이 정돈되고 마음의 깊은 평화가 깃든다. 점차 하나님은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실제로 도울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허락하신다.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라. 영생 천국을 현실과 동떨어진 개념으로 보지 말라. 천국을 얻은 사람은 천국의 역사를 삶으로 번역해 나타내야 한다.  율법도 사랑이 그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율법은 율법주의로 흐르게 된다. 믿음은 허구적이고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이웃 사랑이 외면된 믿음은 바른 믿음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도움이 필요하다. 내가 약한 누군가를 도우려고 하지 않으면 강한 누군가가 나를 돕는 은혜 체험은 멀어진다. 하나님은 소리 없이 이웃을 살피는 소리 없는 영웅을 찾는다. 심은 대로 거둔다. 형제를 대하는 것은 나를 대하는 것이다. 형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야곱과 에서는 쌍둥이 형제로서 야곱 후손인 이스라엘 족속과 에서 후손인 에돔 족속은 혈통적으로는 매우 가까운 형제 족속이었다. 그러나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고 광야에서 힘들게 살 때 이스라엘의 진로를 방해하는 야박하고 포악한 행동으로 이스라엘을 학대해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부끄러움을 당하고 영원히 멸절될 것이라고 했다(10절).  오바댜의 예언 이후 에돔 족속은 근근이 명맥을 잇다가 신구약 중간기에 에돔과 유대인의 혼혈인 이두매 족속 출신 헤롯 대왕이 로마 황제의 신임 하에 왕위에 오르면서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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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7장 33-37절 33 날이 새어 가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35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기를 시작하매 36 그들도 다 안심하고 받아 먹으니 37 배에 있는 우리의 수는 전부 이백칠십육 명이더라 <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 >  바울이 포로 상태로 로마로 호송될 때 그가 탄 배가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다. 그 후 14일간 광풍에 휩쓸려 다닌 고통 상황에서도 바울은 떡을 들고 하나님께 축사했다(35절). 하나님께 축사했다는 말은 하나님께 감사했다는 뜻이다. 바울은 거의 전부를 잃고 광풍에 흔들리는 배에서 죄수의 처지로 감사했다. 그처럼 고난 중의 감사가 진짜 감사다. “무엇을 얻었느냐?” 하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라는 사실로 인해 드리는 감사 신앙이 있다면 하나님은 더욱 큰 감사거리를 주신다.  어느 날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유목민들이 양들에게 샘물을 마시게 하자 양들이 다 죽었다. 그들은 하나씩 그 마을을 떠났다. 그 소식을 듣고 행크 다니엘이란 사람이 도대체 양들이 무엇을 먹고 죽었는지 연구하다가 그 물이 원유란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그곳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남은 소수가 거부가 되어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을 창설했다.  하나님이 무엇인가를 거두어 가실 때 원망하면서 자기 자리를 이탈하지 말라. 하나님이 하나를 거두어 가시면 더 좋고 귀한 것을 준비하신다. 즉 한쪽 문을 닫으시면 다른 쪽 문을 열어 주신다. 삶을 돌아보면 내가 빈손일 때 하나님은 더욱 큰 축복을 내려주셨다. 믿음만 잃지 않으면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은 더욱 큰일을 시작하고 고난 중에도 감사하며 자기 자리를 지키면 고난 이상의 축복을 내리신다.  미국이 축복을 받은 것도 청교도들의 감사신앙 때문이

믿음의 말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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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7장 22-25절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 믿음의 말을 하라 >  바울을 호송하던 배가 그레데 미항에서 머물 때 바울은 시기가 좋지 않으니 더 이상 항해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다. 그때 미항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그레데 서남쪽에 있는 뵈닉스에서 겨울을 지내자는 의견이 많았다. 마침 남풍이 순하게 불어서 그들은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한 채로 배를 뵈닉스로 항해시켰다.  그때 유라굴로란 광풍이 몰아쳐서 배가 바람에 밀려 떠내려갔다. 그리고 뵈닉스 남서쪽 35킬로미터 지점의 가우다란 섬 아래를 지나면서 섬이 약간 바람을 막아주어서 간신히 배 뒤편의 거룻배를 보호하려고 거룻배를 끌어올렸다. 거룻배가 없으면 항구시설이 없는 곳에서 배를 정박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체를 튼튼히 밧줄로 감고 스르디스란 모래톱에 배가 걸릴 것이 두려워서 다시 바람에 배를 내맡겼다. 그 뒤로도 바람이 잔잔해지지 않자 다음날 배를 가볍게 하려고 짐을 버렸고 3일째 되는 날에는 배의 기구까지 버렸다.  그 후 며칠 동안 해와 별은 안보이고 풍랑도 그대로이고 구원의 여망도 없고 오랫동안 먹지도 못한 채 모두가 절망적인 나날을 보냈다. 그때 바울이 일어서서 말했다. “여러분! 이제 안심하십시오. 여러분의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고 배만 손상을 입을 것입니다. 어제 밤에 주의 사자가 ‘너는 황제 앞에 설 것이고 너와 함께 승선한 자도 무사하다.’고 말씀했습니다. 안심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믿

하나님 앞에서 작아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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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7장 9-11절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 경험을 너무 믿지 말라 >  1980년대 중반에 경기도 인근의 부대 사이에 전설 같은 얘기가 있었다. 당시 한국 최고 정예 부대로 알려진 현역 연대와 전투 방위 연대 사이에 연대 전술 훈련(RCT) 평가에서 전투 방위 연대가 더 높은 점수를 받아 이겼다는 얘기였다. 한국의 최정예 부대가 방위 부대에게 졌다는 코미디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훈련 때문이었다.  당시 방위에는 3종류가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예비군 관리 일을 하는 동사무소 방위, 예비군 훈련소나 신병 훈련소에서 조교 역할을 하는 훈련소 방위, 그리고 복무 기간은 짧지만 현역처럼 똑같이 훈련해서 단기 사병이라 부르는 전투 방위였다. 흔히 몸이 약해서만 방위로 가는 줄 알지만 중졸 이하의 학력이나 몸에 문신이 있는 조폭 등도 방위로 갔다.  1980년대 초 전투 방위 부대는 신설 부대로서 군기와 훈련이 셌다. 그때 오합지졸처럼 보이는 방위들을 모아 전투 방위 부대를 만든 훈련을 세게 시켰기에 한국 최정예 부대를 RCT에서 이기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사람에게 훈련이 그만큼 중요하다. 사람은 자기 지식과 경험으로 선입견을 가질 때가 많지만 그 지식과 경험을 너무 신뢰하지 말라. 자기 극복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선입견을 깨고 새로운 상황과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는 배가 그레데 남쪽의 미항에 도착했을 때 바울은 금식하는 절기가 지나 점차 겨울이 되어 항해가 어려워서 하물과 배는 물론 생명도 위태하게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바울은 선교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세 번이나 파선을 다하는 극한 체험을 했기에 그렇게 충고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부장

반석 위에 놓인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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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6장 46-49절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 복된 팔로워가 되는 길 >  좋은 공동체가 되려면 좋은 리더도 필요하지만 좋은 팔로워도 필요하다. 팔로워는 리더의 수준을 넘지 못할 때도 있지만 넘을 때도 있다. 팔로워가 리더의 수준과 축복을 뛰어넘으려면 기본적으로 리더에 대해 잘 대해야 한다. 복된 리더가 되려면 먼저 복된 팔로워가 되어야 한다. 복된 팔로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진실한 성도가 되라  복되게 살려면 남의 작은 허물을 지적하기보다 나의 큰 허물을 성찰하는 진실한 성도가 되라(41-42절). 가정과 교회가 변하고 상대가 변하기를 원하면 남을 쉽게 비판하지 말고 나의 허물부터 돌아보고 나부터 변화되려고 하라. 자랑과 과시는 대개 외식과 위선으로 발전하기에 금물이다. 영성 자랑과 능력 과시는 더욱 주의하라. 영성 자랑과 능력 과시가 사람들에게 안 통하면 우울증에 걸리고 사람들에게 통하면 교주가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어서 말한다. “집사님! 집사님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 문제는 그 말을 사람의 귀에 한 번 들리게 하면 기도 응답이 한 단계 낮아지고 두 번 들리게 하면 기도 응답이 두 단계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 기도하고 있어요.”라는 말을 하고 싶고 또 그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이 위로를 받는 것 같으니까 말하고 싶지만 어떤 사람은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위로보다는 응답이기에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

목표를 분명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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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6장 14-18절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1)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  본문은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 한 다섯째 변증에서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상황을 묘사한 부분이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이 말씀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14절).” 가시채를 뒷발질한다는 표현은 당시 널리 알려진 속담인데 가시밭에서 발길질을 하면 더 가시에 찔린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면 더 힘들어진다는 말씀이다.  주님 말씀을 듣고 바울이 말했다. “주여! 뉘십니까?” 그때 주님이 말씀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네 발로 서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너를 보내리라. 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고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라(15-19절).” 그 주님의 말씀대로 회개한 후 그리스도가 고난 받고 다시 살아나셨음을 전하게 되었다고 바울은 아그립바 앞에서 변증했다.  바울이 자신의 변증과 삶을 통해 강조한 교훈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시킬 때 보통 그 일을 할 사람에게 먼저 하나님의 뜻을 말씀한다.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기 전에 노아에게 말씀했고 소돔과 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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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5장 9-12절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10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11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12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  왜 하나님은 바울이 로마로 갈 때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서 모진 고난을 통과한 후 죄수 신분으로 가게 하셨는가?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고 그냥 로마로 가서 전도 활동을 했다면 얼마나 편했겠는가? 그러나 시간이 단축되는 편한 길이 좋은 길만은 아니다. 만약 바울이 바로 로마로 가서 전도했다면 로마 황제 주변인을 전도할 기회가 없었다. 그가 먼저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의 공분을 사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유명한 ‘종교 사상범’으로서 로마 황제의 재판을 청원했기에 황제 주변인을 전도할 접촉점이 마련될 수 있었다.  결국 바울의 고난을 통해 나중에 로마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더 나아가 국교로 인정함으로 당시 서방세계의 가장 강력한 제국인 로마가 복음으로 정복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방법은 사람의 방법과 다르고 하나님의 때는 사람의 때와 다르다. 하나님의 축복의 때를 넉넉한 믿음으로 기다리라. 너무 서둘러서 나를 나타내거나 높이지 말라. 나를 감추었다가 나의 멋진 진면목을 드러낼 때 오히려 큰 감동 가운데 사람 마음을 끌 수 있다.  한국 초대 교회 때 유명한 깡패 두목 출신 김익두 목사가 여름 부흥회 기간 중 교회 뒷산에 올라가 쉬고 있었다. 그때 술 취한 사람이 올라와

하나님의 세심한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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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4장 24-27절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지금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  천부장에 의해 벨릭스 총독에게로 보내진 바울은 헤롯 궁전에서 가벼운 연금 상태로 지냈다. 그런데 벨릭스도 천부장처럼 바울에게 호의적이었다. 벨릭스가 바울에게 변호하도록 할 때 머리로 표시해서 말하게 한 것도 사전에 어느 정도 교감이 있었다는 암시다. 그때 벨릭스는 바울이 무죄라고 생각했고 오히려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더 나아가 재판 며칠 후에는 그의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었다(24절).  그때 벨릭스는 바울을 틈만 나면 불러서 얘기를 나눴다. 왜 그랬는가? 한편으로 뇌물을 바라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26절). 그리고 바울에게 죄가 없다고 여겼다면 마땅히 풀어주어야 했지만 벨릭스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해서 2년간 바울을 구금 상태로 두었다(27절).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바울의 구금 상태는 오히려 복음의 진보를 위해 좋은 일이 되었다. 거기서 총독과 관련된 주변인들에게 기회가 생길 때마다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로마 핵심 권력층을 복음으로 정복하는 작업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사도행전을 보면 고난과 핍박 중에도 복음은 약화되지 않았다. 고난 중에도 믿음이 약화되지 말라. 고난도 필요하다. 만약에 예루살렘 교회에 고난이 없었다면 복음의 급속한 확산도 없었을 것이다. 기독교가 안디옥을 거쳐 로마까지 급속히 전파된 이유는 고난 때문이었다. 성도의 고

사명을 포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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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3장 11절 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 꿈을 포기하지 말라 >  바울이 공회 앞에서 변증 설교를 할 때 부활 얘기를 하자 부활을 인정하는 바리새인과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두개인 사이에 극렬한 논쟁이 생겼다. 그때 바울이 그들 사이에서 찢겨져 죽을 것을 염려한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게 했다. 그날 밤 주님이 바울 곁에 서서 위로와 소망의 말씀을 주셨다.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11절).” 그 말씀은 “더 큰 비전을 위해 로마에 가도록 너를 훈련시키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가끔 어려운 일이 생겨도 낙심하지 말라. 성도의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의인은 승리하게 되어 있고 넘어져도 일어나게 되어 있다. 어려울 때도 “로마를 보리라.”라는 소망을 품고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가라. 과거의 상처에 매이거나 지금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라. 이미 벌어진 일을 놓고 너무 싸우지 말라. 세상은 남의 과거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지만 성경은 나의 미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고 한다.  나의 문제가 가장 큰 문제다. 봉사하고 섬기려면 남을 찾아야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나를 찾아야 한다. 문제를 남에게서만 찾지 말라. 남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너무 관심을 두지 말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다. 내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바로 서면 어디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 남의 말을 들을 때도 조롱과 증오와 불신의 말보다 감동과 도전을 주는 믿음의 말을 많이 들으라. 믿음의 눈으로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많다. 사랑과 평화를 앞세워 로마에서 증거자가 되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면 절망적인 상황도 넉넉히 극복할 수 있다. 걱정과 불안으로 두려움에 빠지는 것은 사탄이 역사하는 증거

복을 부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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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레위기 20장 1-9절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3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4 그가 그의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 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5 내가 그 사람과 그의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하게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들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6 접신한 자와 박수무당을 음란하게 따르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의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7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8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이니라 9 만일 누구든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 그가 자기의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였은즉 그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1. 자발적으로 헌신하라  하나님은 자기 자식을 몰렉에게 주면 반드시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다(1-2절). 당시 가나안 땅에 몰렉 숭배가 퍼진 이유는 헌신의 의미를 오해했기 때문이다. 즉 짐승을 번제로 바쳐도 대속의 은혜를 입는데 사랑하는 자식을 번제로 바치면 더욱 큰 대속의 은혜를 입는다는 몰렉 숭배자의 미혹 때문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위선과 겉멋에 사로잡힌 이단 교주의 헌신 선동에 미혹되었기 때문이다. 이단의 헌신은 보통 교회의 헌신보다 겉으로는 더 대단하게 보이지만 아무리 대단하게 보이는 헌신도 비윤리적이고 강요되면 이단적인 것이다.  자발적 헌신과 강요된 헌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성 추행이 몇 년씩 감옥에 갈 정도의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성 인지 감수성이 중시되면서 성 추행이 큰 문제란 인식이

새벽시간은 마법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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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1장 27-30절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 곳을 비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29 이는 그들이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시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이러라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 군중심리에 휩쓸리지 말라 >  바울이 야고보의 권면을 따라 예루살렘에서 7일간의 결례 의식을 행했다. 그 의식을 마칠 무렵에 아시아에서 유월절을 지키려고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알아보고 무리를 선동해 바울을 붙들었다(27절). 당시에 이방인이 성전의 안뜰로 들어가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였는데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바울을 백성과 율법과 성전을 더럽혔다고 선동했다. 그때 선동된 군중들은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함께 시내에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그를 데리고 성전에 들어간 줄로 여기고 바울을 즉시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갔다(29-30절).  사람이 군중심리에 휩쓸리면 3가지를 보지 못한다. 첫째,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바울은 율법을 부정하고 복음을 주장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예수님처럼 율법의 참된 의미를 왜곡하는 율법주의를 비판한 것이지 율법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신약성경은 구약성경을 부정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신약성경만큼 구약성경도 중시한다.  둘째,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 당시에 바울은 유대인 서원자들을 성전에 데리고 간 것이지 헬라인 드로비모를 성전에 데리고 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군중들은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 안뜰(유대인의 뜰)로 데리고 들어왔다고 추측했다. 그 추측을 사실로 단정하고 정말 그런 것인가에 대해 알아

남을 행복하게 해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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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Pixabay.com ] 본문말씀 : 사도행전 21장 17-24절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 관용 정신을 발휘하라 >  가이사랴에서 제자들의 가지 말라는 권고를 물리치고 바울은 며칠 후 여장을 꾸려 고난이 예상되는 예루살렘으로 갔다.  이튿날 바울 일행은 제일 먼저 당시 예루살렘 감독인 야고보에게 갔다. 본문 20절을 보면 당시 예루살렘에는 기독교인 숫자가 수만 명이었기에 야고보의 권위는 대단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 일행이 야고보를 처음 문안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했다(19절).  야고보와 장로들은 그 말을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로서 그들이 바울이 이방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고 한다는 말이 떠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런 소식은 거짓 정보였다. 바울은 율법을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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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사도행전 21장 7-14절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 사명을 포기하지 말라 >  바울이 3차 선교여행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때 두로를 떠나 항해를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지냈다. 이튿날 가이사랴에 이르러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 머물렀다. 빌립은 스데반의 순교 후 사마리아에서 큰 부흥을 이끌었다가 가사와 아소도를 거쳐 가이사랴에 정착해 약 20년간 가이사랴 교회를 섬기며 복음을 전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행 8:40).  바울이 그곳에 며칠 머물러 있을 때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될 것에 대해 예언했다(11절). 그 예언을 듣고 가이사랴 성도들과 바울의 수행자들이 모두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지 말라고 권했다. 그때 바울은 말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13절

복을 예비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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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출처: 국민일보 "[겨자씨] 중보기도의 힘" ] 본문말씀 : 사도행전 21장 1-6절 1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1. 희생하고 헌신하는 삶  바울 일행은 유월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3년간 섬겼던 에베소 교회를 들리지 않고 항구도시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초청해 잠깐 만났다(행 20:17-18). 그리고 그들에게 권면의 말씀을 전하고 함께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한 후 크게 울면서 헤어졌다. 그때 장로들은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춘 후 배까지 전송했다(행 20:37-38). 그 헤어지는 모습은 바울의 헌신적인 사랑이 얼마나 그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는지를 잘 암시한다.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남기려면 희생하고 헌신하라. 희생과 헌신을 거창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크게 헌신해야 감동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헌신도 큰 감동을 줄 수 있다. 목회하다 보면 성도의 작은 헌신이 때로는 큰 의미를 준다. 그 헌신 때문에 수많은 고난과 상처를 이기고 목회할 수 있다.  필자는 1996년도 초부터 약 2년간 MBC 신우회 지도목사를 했었다. 당시에 매주 수요일 점심시간에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어느 주간에 기도원에서 금식하다가 수요일에 잠시 기도원에서 내려와 예배를 인도했다. 그때 필자가 6일째 금식하는 것을 알고 신우회장이 설교 단상에 의자를 준비해 놓았다. 그 작은 정성을 보고

복된 자녀를 만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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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18장 15-17절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오래 전 교회를 이전할 때 특별헌금 봉투에 두 딸 이름이 있었다. 알고 보니까 엄마가 “얘들아! 교회가 이사하는데 너희도 헌금할래?”라고 하자 두말없이 세뱃돈을 포함해 2년간 모은 돈을 다 헌금한 것이었다. 그때 아이들은 기회만 생기면 “천 원 주세요.”라고 조르면서 받은 돈을 거의 쓰지 않고 작은 장난감 지갑에 저축해 두었다. 그리고 가끔 고사리 손으로 지갑을 열어보며 흡족한 얼굴을 했기에 철없는 욕심꾸러기로 알았는데 그것은 오해였다.  어떤 아이들은 순수하면서도 의외로 어른들보다 더 의리가 있다. 교육받을 준비도 되어 있다. 만약 진실하게 가르치면 가르침도 잘 받아들인다. 어른에 비해 아이가 현재는 철이 없게 보여도 잘 가르침 받으면 얼마든지 잘 변화될 수 있다. 그것이 자녀 교육을 위해 더 관심을 기울이고 기도해야 할 이유다. 예수님은 하늘나라가 어린아이의 것이라고 하셨다. 어린아이를 우습게 여기지 말라. 자녀를 경시하는 것은 자녀라는 선물과 기업과 상급을 주신 하나님을 경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녀를 복된 자녀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좋은 말을 해 주라  좋은 말로 자녀의 인격을 존중하며 양육하라. 어린아이의 언어 발달 능력은 대단하다. 미국에 이민 가면 부모는 10년이 지나도 영어를 잘 못하지만 어린아이는 2년 쯤 되면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그처럼 언어 발달 능력이 뛰어난 아이에게 나쁜 언어를 쓰는 것은 아이의 영혼에 독약을 먹이는 것과 같다. 예전에 한국 부모들은 말이 너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