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18의 게시물 표시

희망을 가져야 할 3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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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주님이 항상 함께 계시기 때문  본문 1-2절에서 특별히 주목해야 할 단어는 ‘계신다’란 단어와 ‘계셨다’란 단어다. 예수님은 창조된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신 분이다. 그 사실은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에게 얼마나 안정감을 주는가? 바실은 이렇게 말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각각 두 번 나오는 ‘태초에’란 단어와 ‘계셨다’란 단어는 삶에 어떤 폭풍이 불어와도 영혼의 배를 안전하게 정박시킬 수 있는 위대한 두 개의 닻이다.”  본문 1절을 보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구절에서 ‘말씀’은 예수님을 뜻한다. ‘태초에’란 말은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가? 주님이 계시지 않은 때가 없다는 의미다. ‘계신다’란 말은 무슨 의미를 내포하는가? 주님이 계시지 않는 장소가 없다는 의미다. 결국 “태초에 말씀에 계셨다”는 말씀은 “예수님이 없었던 때와 장소가 없었다.”는 뜻을 내포한다. 그 뜻은 지금도 예수님이 함께 하시고 극심한 고통 중에도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떤 환경에서도 절망하지 말라.  가끔 철이 지나 피는 꽃들을 보면 기필코 꽃을 피우겠다는 의지가 읽혀지고 생명의 신비가 느껴진다. 꽃을 피우기까지 얼마나 오래 기다렸겠는가?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렸다가 기필코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보면 너무 사랑스럽다. 그런 사랑스런 존재들이 되라. 믿음은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주님 안에서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 그 희망대로 된다. 어떤 일을 당해도 주님 품을 떠나지 말라. 하나님을 떠나면 오직 불행뿐이다. 2. 주님의 계획은 선함을 믿기 때문  본문 3절을 보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주님이 만물을 지으셨다는 말씀이고 더 나아가 나도 지으셨다는 말씀이다. 결국 그 말은 “주님은 나를 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뜻도 된다. 또한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는 말씀은 내게 주어진 모든 상황과 환경이 주님의 관리와 허락 하에 주어진

여호와의 은총을 받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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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툼을 그치게 하는 자  본문 17절을 보라.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송사에서 먼저 온 사람은 원고를 뜻하고 그의 상대자는 피고를 뜻한다. 원고가 하는 말이 바른 말 같아도 피고의 말까지 들으라는 뜻이다. 두 사람 말을 다 들어야 할 진실 공방에서 한 사람 말만 듣고 같이 욕부터 하면 사탄에게 미혹되기 쉽다. 다 듣고 법과 양심에 따라 의롭게 판결하거나 판단해야 다툼과 미혹됨을 줄일 수 있다.  판결하기 힘들면 어떻게 하는가? 본문 18절을 보라. “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구약시대에는 제비뽑기가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행위로 인정되었다, 특히 강자를 위한 불의한 판결이 없도록 허락되었지만 신약시대에는 제비뽑기보다 말씀을 바탕으로 성령충만한 리더가 정당하게 판결하고 선택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그렇게 잘 판결해도 다툼을 없앨 수는 없다. 특히 형제간의 소송은 더 해결이 힘들다(19절). 그런 소통과 다툼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성령충만이다.  성령충만의 핵심 증거는 온유와 겸손이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말씀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성령충만이란 예수님 마음이 충만한 것이기에 죽었다가 살아난 기적을 체험하고 성령의 9가지 은사가 있고 신비한 언어로 방언도 하고 신비한 몸짓으로 방무를 해도 예수님의 2대 성품인 온유와 겸손이 없으면 헛된 성령충만이다.  영성을 자랑하는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성령 체험을 했습니까?” 그렇게 묻는 사람은 넘어지든지, 깔깔대든지, 괴성을 내든지 하는 자기가 생각하는 어떤 개념의 은사가 있어야 성령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편협한 생각이다. 또한 과거에 성령 체험 한번 하면 평생 최고의 신앙과 영성을 계속 가지는 줄 안다. 엄청난 오해다. 사실 그렇게 오만하게 질문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성령이 사라진 증거다. 성령 체험은 한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

후대의 복을 위한 3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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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 중심적인 삶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도 불행하게 산다. 왜 성공하고도 불행한가? 참된 축복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축복이 진짜 축복이 되려면 2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축복이 옆으로 흘러나가야 한다. 즉 축복을 잘 나눠서 내 축복이 남에게도 축복이 되어야 한다. 둘째, 축복이 후대로 계승되어야 힌다. 즉 축복이 자녀나 제자 등의 후대로 잘 계승되어야 진짜 축복이다. 후대의 축복을 예비하려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말씀 중심적인 삶이다.  본문은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준 모세의 노래 중의 일부분이다. 이 노래에서 모세는 먼저 하늘과 땅을 향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고 했다(1절). 그만큼 자신의 노래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자신의 교훈이 풍성한 생명을 주는 이슬과 단비와 같다고 했다(2절). 말씀은 메마른 영혼을 소생시키고 생명력을 주는 원천이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끊임없이 말씀 중심적인 삶을 도전하라.  특히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알게 하라.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반석이시고 그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분이다(4절). 그처럼 자녀들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을 전해 그들이 말씀을 붙잡고 앞날을 멋지게 개척해나가도록 힘과 격려를 주라. 2. 의리를 지키는 삶  하나님은 늘 진실했지만 그의 백성들은 악하고 삐뚤어지게 행동했다(5절). 그처럼 하나님 아버지를 배반하지 말고 힘써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려는 의리가 있어야 한다(6절). 왜 하나님이 의로운 소수를 좋아하시는가? 은혜를 감사하며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은 대개 소수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일 의리 없는 사람은 ‘다수의 대중’이다. 대중은 유행과 유익을 따라 이리 저리 움직인다. 그런 대중은 희망의 원천이 되기 힘들다.  의리는 대개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나타나고 훈련된다. 다수의 상황에서는 의리를 체감할 기회가 적다. 작은 교회에서 명절이 되면 어떤 성도는 생각한다

Lavish Expressions of Love 아낌없는 사랑의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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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will be enriched in every way so that you can be generous on every occasion.  2 Corinthians 9:11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고린도후서 9:11 On our wedding anniversary, my husband, Alan, gives me a large bouquet of fresh flowers. When he lost his job during a corporate restructure, I didn’t expect this extravagant display of devotion to continue. But on our nineteenth anniversary, the color-splashed blossoms greeted me from their spot on our dining room table. Because he valued continuing this annual tradition, Alan saved some money each month to ensure he’d have enough for this personal show of affection. 남편 앨런은  우리 결혼기념일에 생화로 커다란 꽃다발을 나에게 선물합니다. 나는 그가 회사의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었을 때에 이런 과분한 사랑의 표현이 계속될 것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열아홉 번째 기념일에도 남편은 화사한 꽃들로 식탁을 장식해주었습니다. 매년 이렇게 선물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앨런은 자기의 사랑을 표현하려고 여기에 필요한 돈을 매달 조금씩 모았던 것입니다. My husband’s careful planning exhibited exuberant generosity, similar to what Paul encouraged when he addressed the Corinthian believers. The apostle compli

위대한 리더가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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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끌라  하나님의 명령대로 모세는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해서 그 율법책을 언약궤 곁에 두라고 했다(24-26절). 그 조치는 모세의 말씀 중심적인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기독교 리더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잘 이끌도록 말씀을 소중히 여기고 많이 알아야 한다. 다른 세상 소리를 듣고 따르지 말고 말씀이 지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라. 사람을 바라보지 말라. 서로를 마주 바라보면 실망할 일과 부딪칠 일이 많이 생긴다. 말씀을 바라보고 나아갈 때 참된 리더십이 나온다.  바른 원칙대로 리더십을 행사해야 한다. 특히 말씀대로 리더십을 행사하면 위대한 리더의 길이 펼쳐진다. 요즘 리더의 카리스마가 강조되지만 참된 카리스마는 말씀을 통해 나온다. 힘이 있거나 어깨에 힘을 준다고 카리스마가 생기지 않는다. 카리스마를 오해하면 독재자가 영웅으로 미화될 수도 있다. 기독교 리더는 나를 위해 남을 억압하고 군림하기보다 남을 섬기려고 나를 희생하는 존재다. 군림하는 리더보다 섬기는 리더가 존경받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말씀대로 이끄는 리더가 많이 나와야 한다. 2. 기록을 남기고 보관하라  모세가 율법책을 언약궤 곁에 두어 백성에게 증거가 되게 한 것은 후대들이 말씀 중심적인 리더십에 이끌리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기적적으로 출애굽시키고 광야에서 수많은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을 이끈 일도 위대한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받게 된 역사와 그 율법을 기록으로 후대를 위해 남긴 것도 그에 못지않게 위대한 일이다. 고대에 모세오경처럼 놀라운 권위가 담긴 기록을 쓸 수 있었던 것 자체도 위대한 일이고 그것을 기록으로 오래 보존하도록 명령을 남겨 오래 보존시킨 일도 위대한 일이었다.  기록의 힘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위대한 영향력이 위대한 기록을 통해 나온다는 것은 모세가 기록한 성경 외의 수많은 구약 성경과 바울이 기록한 성경 외의 수많은 신약 성경이 잘 말해준다. 그런 놀라운 기록을

Unselfish Service 순전한 마음으로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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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spend yourselves in behalf of the hungry and satisfy the needs of the oppressed, then your light will rise in the darkness.  Isaiah 58: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이사야 58:10 A small collection of people stood together, dwarfed by the size of the huge tree lying on the lawn. An elderly woman leaned on her cane and described watching the previous night’s windstorm as it blew down “our majestic old elm tree. Worst of all,” she continued, voice cracking with emotion, “it destroyed our lovely stone wall too. My husband built that wall when we were first married. He loved that wall. I loved that wall! Now it’s gone; just like him.” 작은 무리의  사람들이 잔디밭에 넘어져 있는 거대한 나무 옆에 서 있는데 나무가 워낙 커서 사람들이 아주 작게 보였습니다. 한 나이든 부인이 지팡이를 짚고서 전날 밤 폭풍으로 “동네의 명물 느릅나무”가 넘어지던 광경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감정에 북받쳐 계속 말했습니다. “더 큰 일은 폭풍 때문에 우리가 만든 저 귀한 돌담도 무너진 거예요. 우리가 막 결혼했을 때 남편이 만든 담이었어요. 남편도 저도 그 담을 참 좋아했는데! 이제 남편처럼 그 담도 사라져버렸어요.” Next morning, as she peeked out at

강하고 담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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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를 써서 부르게 하라 >  본문에는 죽기 직전에 모세에게 내린 하나님의 마지막 명령이 나온다. 그 명령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 다른 신을 따르는 악행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외면하신다고 했다(18절). 그런 인생 최대의 비극을 막으려고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이 담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쳐 부르게 했다(19절). 이 노래는 이스라엘의 타락과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한 ‘모세의 노래(32:1-43)’를 뜻한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명과 교훈이 담긴 노래를 써서 부르게 하셨는가? 첫째, 노래가 잘 선용되면 이스라엘의 배역을 방지하는 안전판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 실제로 배역하면 배역한 이스라엘을 깨닫고 회개시키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환난과 재앙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잘못임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21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미래의 실족에 대비해 그들을 깨닫게 하고 회복시킬 구체적인 대안도 예비하셨다.  모세는 명령받은 그 날 당일 ‘모세의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다(22절). 그처럼 신속히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모습을 보면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기민한 조치는 그가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날을 염려하며 준비했는지를 알려준다. 노래는 시대상의 압축 표현일 때도 많다. 특히 히브리인에게 노래는 예술보다는 고백이나 교훈인 경우가 많았다. 모세의 노래도 하나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도전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 및 계명과 관련된 노래를 지어 부르게 하신 궁극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 젖어 살라는 암시다. 찬송은 영혼을 살리는 산소와 같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우상화에 잘 빠진다. 그 본능을 막아주는 것이 말씀과 말씀의 교훈이 담긴 노래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계명이 깃든 노래는 절망 중에 희망을 낳는 최고 도구다. 또한 그 노래로 영혼의 방벽을 쌓을 때 힘을 최고로 여기는 세상

Perfect Imperfection 완전하게 불완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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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ray that out of his glorious riches he may strengthen you with power through his Spirit in your inner being.  Ephesians 3:16 그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에베소서 3:16 A college professor of mine, picking up on my perfectionism-induced procrastination, gave me some wise advice. “Don’t let perfect be the enemy of good,”he said, explaining that striving for perfect performance can prevent the risks necessary for growth. Accepting that my work would always be imperfect would give me the freedom to keep growing. 내가 다니던  대학의 한 교수님은 나의 완벽주의 때문에 일이 지연되는 점을 지적하며 현명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그는 “완벽함 때문에 좋은 것을 놓치지 말라.”고 하면서 언제나 완벽만 추구하면 위험을 무릅쓸 일이 없어 성장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언제나 완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계속 성장하는 자유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The apostle Paul explained an even more profound reason to let go of our own efforts to perfect ourselves: it can blind us to our need for Christ. 바울 사도는 우리가 자신을 완벽하게 해보려 애쓰는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더 깊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완벽주의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볼 수 없게 만든다는 것입

말씀을 대하는 5대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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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말씀을 기록하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그냥 흘려듣지 않도록 썼다(9절). 공동체가 망해도 나중에 회복되려면 공동체의 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 그 정체성 확립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기록’이다. 공동체의 역사 기록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기록은 더 중요하다. 작은 공동체도 좋은 기록을 남기면 그 영향력이 오래 지속된다. 그 기록이 가치가 있으면 더욱 그렇다. 자기를 남기려면 기록을 남기라. 위대한 발견이나 발명품을 남기면 죽어도 실제로 자기 영향력은 죽지 않고 오래 지속된다. 그처럼 죽어도 지속적으로 사는 복을 추구하라. 기억도 중요하지만 기록은 더 중요하다. 기록이 기억을 앞선다. 은혜를 기억하라. 더 나아가 기록까지 하라. 거기서 뚜렷한 정체성과 놀라운 영향력이 나타난다. 2. 말씀을 들으라  모세는 그 기록한 율법을 매 칠 년 끝 해인 면제년의 초막절에 온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 그가 택하신 곳에 모일 때 낭독해 다 듣게 하라고 했다(10-11절). 면제년은 안식년을 뜻한다. 성도의 기본은 말씀을 듣는 것이다. 힘들고 피곤하면 판단력과 지혜가 떨어질 수 있기에 늘 말씀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습성을 키워야 한다. 힘들어도 정체성은 흔들리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말씀은 자기 존재와 현실을 일깨워주면서 현실 극복 방법도 알려준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래되었지만 현재의 길잡이가 되기에 충분하다.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새겨들을 때 바른 목표도 생기고 바른 길에 대한 시야도 열린다. 3. 말씀을 배우라  모세는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거하는 누구도 예외 없이 어린이와 성읍 안에 거하는 타국인도 말씀을 듣고 배우게 했다(12절). 배움의 다른 말은 과정이다. 과정이 생략된 채 얻은 결과는 지속력이 없다. 배움에는 참음과 기다림의 기간이 요구된다. 참음과 기다림이 수반된 배움을 통해 머리의 지식이 가슴의 열정으로 변하고 그 가슴의 열정이 손발의 행위로 나타나면서 부족한 것들이 채워진다. 배움을 통해 배고픔이 해결된다. 말씀을

Jesus Knows Why 예수님은 그 이유를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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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Jesus had finished saying these things, the crowds were amazed at his teaching.  Matthew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마태복음 7:28 I have friends who’ve received partial healing but still struggle with painful aspects of their diseases. Other friends have been healed of an addiction but still struggle with feelings of inadequacy and self-loathing. And I wonder,  Why doesn’t God heal them completely — once and for all? 나의 친구들  중에는 어느 정도 치유는 되었지만 그 병으로 인해 통증을 앓는 사람들이 있고, 또 중독은 치유되었으나 여전히 자신감이 없고 자기혐오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런 일을 보면서 ‘왜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한 번에 완전히 회복시켜 주시지 않는가?’ 하는 의문을 갖습니다. In Mark 8:22–26, we read the story of Jesus healing a man born blind. Jesus first took the man away from the village. Then He spit on the man’s eyes and “put his hands on him.”The man said he now saw people who looked “like trees walking around.” Then Jesus touched the man’s eyes again, and this time he saw “everything clearly.” 예수님이 태어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쳐주시는 이야기가 마가복음 8:22–26에 있습니다. 예

회복의 은혜를 입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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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려하는 언행을 훈련하라 >  성숙이란 말이 너무 앞서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터넷에서 익명으로 비판적인 댓글을 쉽게 단다. 그 비판이 타당해도 “이러다가 비판이 몸에 배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며 비판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교만이 방지되고 조금 더 사람답게 되고 조금 더 성도답게 된다. 어떤 글을 보면 키보드를 마구 치며 댓글을 달고 싶지만 그때 한번이라도 자제하면 그 한 번의 자제도 하나님은 한 번의 선행에 못지않게 기억해주시고 신비하게 보상해주실 것이다.  남을 위해주는 말도 의와 순리를 따라 하라. 불의와 역리가 섞이면 남을 생각해주는 말이 오히려 남의 체면을 깎을 수 있고 잘못된 비인격적인 사람이 위해주는 말은 오히려 위해(危害)를 줄 때도 많다. 부모는 자녀에게 “얘야, 물질이나 외모와 상관없이 좋은 친구가 되고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고 당부한다. 하나님도 그런 당부를 하신다. 나를 위해준다고 무조건 좋아하지 말고 나를 위해주는 사람의 사람됨을 보고 좋아하라.  때로는 남을 위해준다면서 불명확한 말로 논란과 싸움을 일으킬 수 있기에 남에 대한 말은 가급적이면 힘써 절제하라. 거짓으로 위해주는 말을 해도 안 된다. 사람은 수시로 거짓말을 한다. 시간 약속을 어기면 그것도 거짓말을 한 셈이 된다. 그런 인간의 연약성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십계명의 9계명을 주실 때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지 않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단순한 거짓말보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거짓말인 거짓 증거를 훨씬 큰 죄로 여기셨다. 남에게 이익을 주는 거짓 증거도 결국은 해가 되는 죄다.  만약 누가 “우린 친구잖아. 친구가 이럴 때 도와야지.”라고 하면서 의와 도리와 정상이 아닌 길을 은근히 요구하면 그는 진짜 친구가 아니다. 진실한 친구는 “우린 친구잖아.”는 말을 하지도 않고 할 필요도 없다. 친구는 바른 길을 가도록 잠잠히 곁에 서서 성원해주고 기도해주는 대상이지 청탁이나 이용이나 파당 대상이 아니다. 진짜 친구는 인생의 천

실패를 극복하는 4대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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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과 만나라  제자들을 실패에서 일으킨 첫째 요인은 ‘예수님과의 만남’이었다(1절). 그 만남은 요한복음 21장의 주제이고 성도의 삶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 행복과 성공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려있다. 배우자 잘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과거에는 권력자 한 사람을 잘 만나면 출세 길이 활짝 열렸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만남이 쉽지 않지만 예수님은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다. 인맥이 없어도 예수님과 진정으로 만나면 삶은 크게 변한다.  어느 날, 한 청년이 절망으로 자살하려고 했다. 칼로 동맥을 자르기 전에 그는 거울 앞에서 자기 얼굴을 보았다. 무슨 영문인지 자꾸 눈물이 쏟아졌다. 그때 거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났다. 그가 토레이(R. A. Torrey) 박사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만나면 그때부터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 지금 연약하고 비참한 모습이라도 상관없다. 그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면 실패는 성공을 만들어내는 축복의 씨앗과 디딤돌이 된다. 2. 꿈을 새롭게 하라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난 곳은 갈릴리 디베랴 호수였다. 왜 주님은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에서 만나주셨는가? 갈릴리는 그들의 ‘꿈의 고향’이었다. 거기서 그들은 처음 주님을 만나 꿈을 품었다. 그 꿈을 회복시켜 사명을 새롭게 하려고 주님은 갈릴리에서 만나주셨다. 실패를 극복하려면 먼저 꿈을 회복하라. 아무리 어려워도 꿈을 잃지 말라. 상황은 비관적으로 생각할 때에만 비관적으로 된다.  꿈은 행복의 청사진이다. 깊은 수렁을 만나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어둠에 지배되지 않는다. 어려울수록 찬란한 꿈을 꾸라. 링컨처럼 하원의원 선거에 떨어졌으면 상원의원을 꿈꾸고 상원의원 선거에 떨어졌으면 부통령을 꿈꾸고 부통령 선거에 떨어졌으면 대통령을 꿈꾸라.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속담은 좋은 속담이 아니다. 오르지 못해도 계속 쳐다보면 꿈이 생기고 꿈이 생기면 길이 보이고 길이 보이면 도전하고 싶고 도전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