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9의 게시물 표시

말씀을 앞세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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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아모스 2장 4-10절 4.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유다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의 조상들이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되었음이라 5.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6.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7.힘 없는 자의 머리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아버지와 아들이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8.모든 제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그들의 신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 9.내가 아모리 사람을 그들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였느니라 10.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가 차지하게 하였고 < 말씀을 앞세우라 >  선지자 아모스 때는 권력자와 부자의 횡포가 유난히 극심했다. 그때 아모스는 뽕나무를 재배하고 양을 치는 평범한 사람으로 있다가 부조리와 불평등으로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일어섰다. 그래서 아모스서를 보면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시정하려는 선지자의 외침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세상을 정의롭고 복된 세상으로 만들려면 어떤 삶이 필요한가?  아모스 1장부터 2장 3절까지는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의 죄를 폭로한다. 그리고 본문 4절에서는 남 유다의 죄를 폭로했다. 유다의 죄는 어떤 죄였는가? 말씀을 멸시하며 말씀대로 살지 않은 죄였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거짓에 미혹되어 고난과 심판을 자초한다. 결국 하나님이 유다에 불을 보내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겠다고 했다(5절). 이 말씀은 말씀의 중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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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아모스 1장 1-2절 1.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2.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소리를 내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마르고 갈멜 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 < 아웃사이더의 모델 아모스 >  아모스는 주전 793~750년경에 활동하며 북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했던 남 유다 출신의 선지자다. <아모스>의 주제는 ‘하나님의 공의’로서 아모스는 ‘공의의 선지자’라고 불린다. 아모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하려면 형식적인 예배나 제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공의를 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아모스가 언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는가? 아모스가 처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때는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시대의 대 지진이 있기 2년 전이었다(1절).  그때 아모스는 드고아 목자였다. 드고아는 예루살렘 남쪽 약 19km 떨어진 고지대 마을이었다. 선지자로 부름받기 전에 아모스가 목자였다고 언급한 것은 그가 전문적인 선지자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암시다. 당시 전문적인 선지자 교육을 받은 선지자들은 부패한 경우가 많았기에 아모스의 외침은 아웃사이더의 공의를 향한 외침이었다.  아웃사이더의 큰 대적인 외로움이 잘 극복되면 의로움이 강화되고 결국 위대함을 낳는다. 또한 성숙한 지혜와 시련을 이겨내는 성품을 얻게 한다. 외로움을 깊이 체감했던 사람이 외로운 사람 곁에 서 줄 수 있고 창조적인 자기 대화를 통해 상상력과 분석력이 증대되어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이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미리 선점할 수 있다. 또한 하나님과의 깊은 대화도 이뤄진다.  외로움과 소외를 겁내지 말고 그때 하나님께 더 가까워지라. 하나님을 붙잡은 아웃사이더는 위대한 인사이더가 된다. 사람들의 시선 바깥으로 던져지면 하나님의 품으로 더 들어서라. 외로움과 소외를 창조적으로 승화시키면 인생

피난처와 산성 되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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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엘 3장 14-16절 14.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15.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16.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 여호와의 날이 가깝다 >  하나님의 심판 날이 되면 진리와 거짓이 온전히 드러나고 심은 대로 거두는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면서 심판자 하나님이시다. 끝이 다가와도 하나님 안에서 맞이하는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된다. 그때부터 새로운 천국 역사가 펼쳐진다. 살다 보면 실망하고 실수하고 실패할 때가 많지만 하나님은 실망과 실수와 실패를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실 것이다.  사람은 실패해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정의로운 최종 심판을 생각하고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라. 살다 보면 이용을 당하고 사기를 당하고 왕따를 당하고 상처를 당하고 피해를 당할 때가 있다. 그때 너무 실망하지 말라. 나도 알게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주었을지 모른다. 심지어는 하나님께도 잘못된 행동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 때도 많았을 것이다.  한 교회에서 화려한 교회당을 건축한 후 하나님의 은혜를 내세우려고 <하나님이 다하셨습니다>란 현수막을 걸었다. 그것을 보고 한 사람이 <하나님이 당하셨습니다>란 패러디를 인터넷에 올렸다. 사람은 하나님을 실망시킬 때도 많다. 그래도 하나님은 실망하지 않고 심판 날까지 오래 참으신다. 하나님의 마음과 심판 날을 생각하며 행동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질적인 삶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심판할 사람이 많아지면서 여호와의 날인 심판 날은 가까워지고 있다. 본문 14절을 보라.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 심판 날에 어떤 일이

자기를 버리는 삶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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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9장 57-62절 57.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58.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59.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60.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61.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62.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 자기를 버리는 삶의 의미 >  본회퍼가 말했다. “오늘날 교회의 치명적인 결함은 참된 제자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을 받으려는 사람은 많지만 십자가를 지려는 사람은 적다. 하나님은 병 고침과 욕구 충족과 소원성취를 위해 따르는 다수의 예수 학생보다 자기를 버리고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는 소수의 예수 제자를 원하신다. 자기를 버리는 삶이란 어떤 삶을 말하는가? 1.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한 사람이 나아와 어디로 가든지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했다(57절).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에 의하면 그는 서기관이었다(마 8:19). 권력과 재력과 학력을 가진 최고 신분의 서기관이 예수님을 따라 어디든지 가겠다고 말한 것은 예수님의 외적인 능력에 감동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그가 외적인 능력을 추구하기보다 참된 믿음으로 예수님을 겸손히 따랐다면 최고 제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그가 사명보다 능력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말씀하셨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58절).” 그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능력을 얻는 화려한 길이 아니고 때로는 의식주조차 희생해야 하는 길이란 암시다.

평안을 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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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엘 3장 7-13절 7.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8.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9.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널리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10.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11.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12.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13.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 평안을 추구하라 >  외적인 평화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자신 안에서 평화를 이루어내는 내적인 평안이다. 그 평안을 언제 얻는가? 기본적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죄는 평안을 빼앗는다. 최근에 가짜 박사 문제가 불거지면서 많은 박사 목사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언제 논문 검사하자고 할까봐 장로들 앞에서 제대로 숨도 못 쉬고 있다. 큰 교회 담임목사라면 당연히 걸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편법으로 받은 외국 신학교 박사 학위가 부메랑이 되어 지금 많은 박사 목사들의 마음이 이런 마음이라고 한다. “나 떨고 있니?” 죄는 평안을 빼앗는다.  죄 사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합리화나 회피가 아니라 믿음이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심령의 자유와 평안을 찾으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생각은 사람 기준에 의한 바른 행동을 하면 하나님이 받아주시고 못된 행동을 하면 하나님이 받아주시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물론 행동도 잘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행동보다 사람의 중심을 더 살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평화를 추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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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엘 3장 7-13절 7.보라 내가 그들을 너희가 팔아 이르게 한 곳에서 일으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행한 것을 너희 머리에 돌려서 8.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은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9.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널리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병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지어다 10.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지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 할지어다 11.사면의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12.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에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13.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 전쟁준비는 심판의 전조다 >  어렸을 때 이웃 동네와 전쟁놀이를 하면 어떤 때는 새총과 나무 장총으로 살벌하게 싸웠다. 싸움 지시는 동네 중학생들이 하고 실제 싸움은 초등학생들이 했다. 필자는 뭣도 모르고 졸병 노릇을 하며 열심히 다른 동네 아이들과 새총 들고 싸우면서 마음속에서는 새총에 눈이 맞아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가 있었다. 그래도 중학생의 지시를 따라 싸웠다. 지금 생각하면 야비한 중학생들이었다. 순진한 애들을 싸움 붙여 놓고 자기네들은 전쟁놀이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이 직접 싸우지 않고 남북을 싸움 붙일 때 냉철하게 대응해서 그들의 병정놀이에 순진하게 희생되면 안 된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일은 이웃나라의 전쟁을 보는 일이다. 그처럼 남북이 붙기를 은근히 바라는 이방인들이 많다. 그들을 즐겁게 하는 병정들이 되면 안 된다. 걸어오는 전쟁을 두려워해서 등을 보이면 안 되지만 힘을 기르고 지혜를 모으고 냉철함을 유지해 최대한 전쟁은 막아야 한다.  성경에

성령충만의 5대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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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엘 2장 28-32절 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 교회가 새롭게 되는 길 >  요즘 한국 교회의 현실은 마치 겨울이 된 것 같다. 교회에 실망해서 떠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한때 성령충만을 강조하면서 뜨겁게 신앙생활을 했던 모습이 많이 약해지고 식상해진 상태다. 열정도 줄었고 성장도 줄었다. 그러나 뜨거움만이 성령충만은 아니다. 냉철한 지혜도 성령충만의 중요한 내용이다. 또한 외형적인 성장만이 성령충만의 결과가 아니다. 내적인 성숙은 성령충만의 더욱 중요한 결과다.  지금 한국 교회의 정체된 모습에 너무 실망하지 말라. 한국 교회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숫자적인 성장은 없어도 영향력의 성장을 이루라. 교회는 옛날처럼 급속히 키우지 못해도 나눔을 키우고 인물을 키우라. 새로운 차원으로 성령충만을 추구하면 진리는 더욱 힘 있게 펼쳐질 수 있고 한국 교회는 다시 칭찬 받는 교회가 될 수 있다. 그처럼 한국 교회가 새롭게 되는 일에 나도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  조용히 큰 역사를 만들어가고 큰 인물을 만들어내라. 구원받고 끝나지 말고 이 시대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자를 많이 배출하라. 집회에서 성령 받은 표시로 넘어지고 괴성을 지르고 깔깔 웃다가 집회 후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아무런 감동과 영향력도 없이 사는 성도가 되지 말고 겉으로는 조용한 것 같아도 찬란한 꿈과 비전과 이상

꿈을 향해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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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엘 2장 28-32절 28.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 꿈을 향해 나아가라 >  인생은 한 문장과 같다. 그 인생 문장에서 자신이 주어가 되면 시야가 좁아지고 목적의 가치도 떨어지고 무엇을 성취해도 공허함이 따라온다. 그러나 인생 문장에서 하나님이 주어가 되면 시야가 넓어지고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게 되고 그때 무엇을 성취하면 마음에 깊은 만족감과 보람과 행복이 주어진다. 결국 “하나님을 위해 인생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인생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를 재는 척도다.  하나님 안에 있으면서 찬란한 꿈과 비전과 이상을 가지라. 어떤 경우에도 꿈과 비전을 포기하지 말라. 절망 중에도 곳곳에 수많은 희망의 뿌리들이 있다. 인간은 희랍말로 ‘호모 에스페란스’라고 한다. ‘희망을 먹고사는 존재’란 뜻이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바라고 따라갈 한 줄기의 희망은 반드시 존재한다. 특히 성도는 넘치는 희망을 가져야 한다. 절망은 교만이다.  사소한 주변생활이나 인간관계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고 많이 나누며 살겠다는 큰 꿈과 비전과 목표를 가지고 성공하라. 꿈과 비전은 인생을 추진시키는 연료다. 그 연료가 떨어지면 인생 기관차는 나아가지 못한다. 비전이 없으면 발전도 없다. 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잘못이 아니다. 헌신과 모험과 실패가 두려워서 비전을 가지지 않는 것이 잘못이다.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유혹을 이겨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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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9장 7-18절 7.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 끝까지 진실하기를 힘쓰라 >  2년 전 이탈리아 여성 배우 겸 영화감독 아시아 아르젠토가 유명한 할리우드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게서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해 “나도 당했다.”고 하며 자기를 밝히는 미투(Me too) 운동을 촉발시켰다. 그 미투 고백으로 와인스틴은 인간쓰레기 성 범죄자로 낙인찍혔다. 피해당한 여성은 100명 이상으로 배우, 영화사 직원, 모델을 가리지 않고 성희롱과 성추행과 성폭행을 자행했지만 워낙 그가 거물이었기에 피해자들은 향후 커리어에 지장이 될까봐 그 사실을 숨겼다.  와인스틴은 유명한 남성 페미니스트 중 하나였는데 평소에 그의 페미니즘 옹호 발언을 언론 등을 통해 접하면서 여성 피해자들은 얼마나 그 위선에 치를 떨었겠는가? 그 미투로 인해 할리우드는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할리우드의 거물급 제작자였기에 클린턴 부부 및 오바마 부부와도 친분이 두터웠고 오바마의 딸이 그의 영화사에서 인턴을 해서 민주당까지 불똥이 튀었다. 또한 아르젠토로 인해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이 연예계에서 정치계까지 번졌다.  아르젠토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21살 때 와인스틴에게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고 그 후로 악몽에 시달렸다고 고백했다. 그녀가 오랫동안 그 사실을 숨긴 이유는 그가 자기 요구를 거절한 많은 배우들의 커리어를 망쳐버린 것을 알고 겁났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녀의 미투 고백은 세계적인 미투

요셉처럼 믿음으로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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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9장 19-23절 19.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 시련 중에도 낙심하지 말라 >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려다가 실패하고 오히려 요셉에게 자기를 추행하려고 했다고 누명을 씌워 요셉이 또 고난을 받고 감옥에 간다. 그런데 하필이면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갇혔다(20절). 왜 요셉이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갇혔는가? 거기서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즉 그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술맡은 관원장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러면 바로의 꿈을 해석할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애굽의 총리가 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성도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심지어 감옥에 가는 것도 성공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 대해 쉽게 짜증내고 불평하지 말라.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의 은혜로 생긴 일로 여기고 감사하라. 그때 하나님이 함께하시면서 새로운 은혜가 임한다. 감옥에서도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하시고 인자를 더하셔서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다(21절).  하나님은 축복에 젖어있을 때보다 어려움에 빠져있을 때 오히려 더욱 가까이하신다. 그래서 성도에게는 후퇴도 전진이다. 내게 능력이 있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삼손은 능력이 있었지만 그 능력 때문에 오히려 비참해졌다. 성공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믿음으로 바르게 살아도 때로 고

예배자가 가져야 할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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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로마서 12장 1절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1. 예배 시간을 잘 지키라  시간 잘 지키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초다. 상대를 중시하면 대개 약속 시간 전에 나와 맞이한다. 예배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은 예배생활의 기초다. 그것은 예배를 중시하는 태도와 관련이 깊다. 예배 전에 교회에 도착해 예배를 위해 기도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모습은 하나님을 소중히 여기고 예배를 중시하는 모습이다. 그런 모습에 은혜가 넘치게 된다.  시간을 낭비하면서 인물이 되었던 사람은 없다.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중요한 일을 할 수 없다. 시간을 잘 지키되 그 중에서도 제일 잘 지켜야 할 시간이 예배 시간이다. 주일에 예배하고 사랑의 교제를 하고 말씀을 공부하는 시간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인생에게 가장 소중한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소중한 시간을 잘 지킬 때 소중한 인생도 잘 지켜진다. 2.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  어떤 사람은 헌금할 때 꼭 새 돈으로 한다. 그런 자세 속에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예배드리러 갈 때 최고의 복장을 한다. 그 모습에서도 예배를 향한 정성이 느껴진다. 예수님은 요한계시록의 7교회 중 빌라델비아 교회를 가장 칭찬하시면서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켰다.”고 그들의 정성을 칭찬하셨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많은 능력’보다 ‘깊은 정성’이다.  의식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지만 무의식속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의식하는 겉모습과 의식하는 속마음이 다르면 이중인격이지만 의식하는 겉과 무의식의 속이 다른 것은 이중인격이 아니다. 많은 교인이 겉으로는 예배하면서도 속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예배를 거부한다.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죄 때문이다. 결국 영과 진리로 정성스럽게 예배드리려면 참된 회개를 통해 죄의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

요셉이 형통하게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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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9장 1-6절 1.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1.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  요셉이 형통해진 이유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이다(2절).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하시는 모습은 보디발의 눈에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였다(3절). 약은꾀로 감투를 얻고 성공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진짜 축복 받는 성도가 되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실패할 것 같지만 결국 성공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성공할 것 같지만 결국 실패한다. 형통해지려면 무엇을 얻으려고 하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려고 하라. 하나님의 꿈과 뜻에 합한 존재로 살면 하나님이 함께해주신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일이 선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2. 사람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  요셉은 주인의 은혜를 입었다(4절). 그 이유는 요셉의 신실한 믿음과 관련이 깊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신실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기에 사람도 가까이해서 도와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대개 사람의 은혜도 입는다. 하나님의 사랑도 받아야 하지만 성도답게 행동해서 사람들의 사랑도 받기를 힘쓰라. 예수님도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시련 중에도 길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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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7장 25-28절 25.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 시련 중에도 길은 있다 >  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시련을 당한다. 자신은 예상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은 그 시련의 처음과 끝을 다 아신다. 하나님은 선한 목적이 없이 성도에게 시련을 허락하시지 않는다. 그 시련 상황도 다 컨트롤하고 계신다.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 사람에게는 ‘후퇴시키는 것(setback)’일지라도 하나님 안에서는 ‘세우는 것(setup)’이다. 시련은 잘못해서 오기도 하지만 잘해서 오기도 한다. 내가 잘할 때 남이 나쁘게 반응해도 나는 좋게 반응하라. 그런 태도가 나중에 주어질 큰 축복의 확실한 전조다.  인생에서 좋은 꿈과 비전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도 어려운 매듭은 생긴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매듭은 없다. 풀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때가 언제인가 하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은 서두르지 않는다. 하나님이 이미 정해놓은 시간이 있기에 시련을 거친 후 때가 되면 문제는 풀리게 되어 있다. 그 사실을 알면 문제가 생겨도 그것을 이번에는 어떻게 푸실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면서 나를 지배하던 걱정과 염려가 기대감과 흥분으로 바뀐다. 시련 중에도 길은 있다. 그 길이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요셉은 시기하는 형들에 의해 죽을 뻔 했지만 큰형 르우벤이 “생명은 해치지 말고 구덩이에 넣자.”고 해서 물이 없는

감사하는 삶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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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17장 11-19절 11.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 범사에 감사하며 살라 >  어느 날 한 목회자가 사업을 시작하는 성도에게 말했다. “성도님! 사업하면 확률적으로 10명 중 2명만 성공합니다. 20%의 성공 안에 들려면 잘 준비하고 열심히 뛰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과 지혜를 앞세워 하세요.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 소중해서 그 이름을 내걸고 성공한다고 쉽게 말씀드리지는 못해요. 기도할게요. 다만 꼭 당부 드릴게요. 잘 되어 성공하면 변함없이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고 혹시 잘 안 되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알고 그때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믿음을 보고 싶어요.”  어려울 때의 감사가 진짜 감사다. 실패했을 때의 한 번의 감사는 성공했을 때의 열 번의 감사보다 낫다. 하나의 고상한 실패는 수많은 저속한 성공보다 귀하다. 사람은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 더 많은 교훈을 얻고 하나님을 깊이 만난다. 실패 중에도 하나님의 크고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고 감사하면 하나님은 “네 믿음이 크구나.” 하시면서 더 축복하실 것이다.  성령이 언제 가장 생생하게 임하는가? 감사할 때다. 시련 중에도 감사하며 희망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은 그를 통해 큰

은혜를 앞세워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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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7장 18-20절 18.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 꿈은 시련을 만난다 >  요셉도 허물이 많았다. 특히 입술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그가 복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찬란한 꿈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는 창세기 37장 5절과 7절에서 연거푸 비슷한 꿈을 꿀 정도로 뚜렷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꿈은 무의식의 확장으로 생길 때가 많다. 무의식 가운데 나타날 정도로 뚜렷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그 꿈과 비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구체적인 도안과 설계도 해보라. 복된 삶을 원하면 꿈꾸는 일에서부터 먼저 성공하라. 꿈이 있는 한 사람은 꿈이 없는 한 민족보다 강하다.  왜 한 사람의 힘이 나머지 공동체의 구성원보다 센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는가? 그가 가진 큰 꿈 때문이다. 아무리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도 뚜렷한 꿈이 없으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다. 왜 성령 충만해야 되는가? 성령님이 주시는 환상의 안경을 쓰면 꿈과 목표가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왜 기도와 예배 시간이 중요한가? 기도 시간은 꿈을 날카롭게 다듬는 시간이고 예배 시간은 절망을 팔고 꿈을 사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믿음은 현실이 어떻든 그 현실 속에서 꿈과 비전을 가지고 내일을 보는 것이다.  복된 삶을 살려면 찬란하고 뚜렷한 꿈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찬란한 꿈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꿈은 반드시 시련을 만난다. 그래서 요셉도 자신의 꿈 때문에 형들의 미움과 시기를 받고 시련을 당했다. 그런 시련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도 너무 염려하지 말라. 좌절에 빠지지도 말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도에게는 반드시 최종 승리가 주어진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꿈이라고 확신

절망을 약속으로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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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7장 1-5절 1.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 꿈꾸는 사람이 되라 >  요셉의 이야기는 그가 17세 때부터 시작된다(2절). 특별히 본문에는 요셉의 부족한 허물이 많이 그려져 있다. 사람들은 요셉의 화려한 역전 인생만 보았지 그의 그늘진 구석은 잘 보지 못하고 있다. 그에게도 인격적인 흠이 많았다. 특히 입술에 흠이 많았다. 가장 큰 흠은 고자질하는 태도였다(2절). 요셉이 형들로부터 미움을 받게 된 이면에는 고자질하는 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자기들의 허물을 자꾸 아버지에게 고자질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또한 요셉은 말할 때 배려심이 없었다. 그는 자기 꿈을 그대로 발설해 더욱 형들의 미움을 받았다. 말은 고난을 자초하는 핵심 통로다. 왜 요셉이 좋은 말버릇을 가지지 못했는가? 아버지 야곱의 잘못이 크다. 요셉의 허물은 야곱이 요셉을 너무 위해 주고 감싸 준 것과 관련이 있다(3절). 인간관계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핵심 요소는 편애와 편견이다. 편애와 편견은 열등감을 자극하고 적개심을 가지게 한다. 편애와 편견의 벽을 잘 깨뜨리면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그 벽을 깨지 못하면 자신의 행복이 깨진다.  왜 잘못된 성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야곱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는가? 그에게 잘못된 성품을 덮고도 남을만한 복된 성품과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의로운 삶과 정직

하나님 안에 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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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6장 6-8절 6.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7.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8.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 숫자에 연연하지 말라 >  에서의 자손들도 한때 대단히 번성했다. 그들은 경제적인 번성의 축복을 받았다. 야곱도 거부였지만 에서도 거부였다(7절). 그래서 두 사람이 함께 거할 수 없어서 에서가 세일 산으로 떠나 그곳에 거주했다. 또한 그들이 세일 산으로 떠나 그곳 원주민인 호리 족속을 복속시킨 것을 보면 그들에게는 상당한 군사력도 있었다. 에서가 누린 번성의 축복을 생각할 때 말라기 1장 2-3절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했다”는 말씀이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번성이 꼭 축복만은 아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좋은 사람도 부족함에 처하게 하실 때가 있다.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하나님이 가뭄 때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이끄시고 까마귀를 통해 엘리야를 매일 먹이시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 그릿 시냇가는 너무 조그만 냇가여서 지금은 어딘지도 모른다. 차라리 큰 강물이나 폭포로 인도하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강물과 폭포수의 축복은 잠깐의 찬양은 줄지라도 자칫 입술에서 나오는 꾸준한 찬양을 앗아갈 수 있다. 진짜 축복은 큰 것에 있지 않고 꾸준한 것에 있다.  왜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보내어 매일 아침저녁을 먹이셨는가? 10년 먹을 풍족한 양식을 한꺼번에 공급해 주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10년 먹을 풍족한 양식은 자칫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다. 반면에 엘리야는 그릿 시냇가에서 아침저녁으로 까마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축복을 주실 때 축복을 홍

진정한 영혼의 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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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22장 14-20절 14.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15.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16.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7.이에 잔을 받으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르시되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1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9.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 초심이 변하지 않게 하라 >  시작이 중요한 것처럼 마지막도 중요하다. 시작이 잘못되면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없고 시작과 과정이 좋아도 마지막이 나쁘면 허무하다. 요새 교회 세습에 대한 비판이 심해지고 있다. 교회 세습은 지난날의 자기 설교를 전면 부인하는 것이란 비판도 있다. 지난날에 “십자가를 지고 헌신하라. 돈과 자리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고 얼마나 많이 설교했겠는가?  그 설교를 듣고 교인들은 힘써 자기 것을 드렸는데 나중에 목회자가 그 바친 것을 자기 것처럼 여기고 교회를 아들 목사에게 물려주면 그 동안 바치라고 했던 설교가 결과적으로 “내게 바치라.”는 말처럼 된 셈이다. 예전에 한 교인이 흥분하며 말했다. “그렇게 세습하면 개신교 교황 가계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교회생활에 회의가 생깁니다.” 사람됨과 성도됨은 떠날 준비를 잘하고 잘 떠나는가를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개인 재산이나 기업을 정당하게 자녀나 충성스런 후계자에게 물려주면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거대 기업도 상속세를 잘 내고 회장 자리를 물려받으면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의로운 후대 회장은 엄청난 상속세 내는

끝까지 충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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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5장 6-8절 6.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 교회를 소중히 여기라 >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피신할 때 서원했던 대로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에서 정착했다. 거기서 외동딸 디나가 강간당했고 그 복수로 야곱 가족이 세겜 족속을 야비하게 멸족시켰다. 그 복수가 통쾌함을 주기보다 오히려 마음이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대로 야곱은 벧엘로 이주할 것을 결심하고 마침내 벧엘에 이르러 그곳에 제단을 쌓고 그곳 이름을 ‘엘벧엘’이라고 불렀다(7절).  야곱이 벧엘에 이르자 하나님은 큰 축복을 다시 약속하셨다. 즉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자 하나님이 다시 그에게 나타나 복을 주시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불러주셨다(9-10절). 또한 생육하고 번성하는 축복을 주시면서 많은 왕들이 그의 후손에서 나오고 그와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11-12절). 그 약속 말씀을 듣고 야곱은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곳에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과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다(14-15절). 벧엘이란 ‘하나님의 집’이란 뜻으로 오늘날 교회를 상징한다.  세상을 상징하는 세겜에서는 행복이 주어질 수 없다. 행복을 얻으려면 영적 환경도 중요하기에 하나님은 야곱 가족을 벧엘로 이사시키셨다. 세겜에서 벧엘로 가서 축복받은 것은 교회 중심적인 삶의 중요성을 교훈한다. 창세기 35장 1절을 보면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란 말씀이 나온다. 교회 안에 거하라는 암시다. 어떤 곳이든지 그곳에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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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4장 25-30절 25.제삼일에 아직 그들이 아파할 때에 야곱의 두 아들 디나의 오라버니 시므온과 레위가 각기 칼을 가지고 가서 몰래 그 성읍을 기습하여 그 모든 남자를 죽이고 26.칼로 하몰과 그의 아들 세겜을 죽이고 디나를 세겜의 집에서 데려오고 27.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 28.그들이 양과 소와 나귀와 그 성읍에 있는 것과 들에 있는 것과 29.그들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집 속의 물건을 다 노략한지라 30.야곱이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 <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라 >  어느 날 야곱의 외동딸 디나가 세겜 땅 여자들을 보러 나갔다가 하몰의 아들이자 그 땅의 추장인 세겜에 의해 강간을 당했다. 그 후 세겜은 아버지인 하몰에게 청해서 디나를 아내로 얻게 해달라고 했다. 하몰이 야곱 가족에게 부탁했다. “내 아들 세겜이 당신 딸을 연모하니 딸을 내 아들에게 주시고 여기서 기업을 일으키십시오.” 세겜도 무엇을 요구하든지 다 들어줄 테니까 디나를 아내로 달라고 했다.  그때 야곱의 아들들은 그들이 할례를 받으면 디나를 주겠다고 했다. 그 제의를 좋게 여겨서 세겜에 사는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았다(24절). 할례를 받으면 3일째 되는 날이 가장 고통스러운데 그때 시므온과 레위의 주도 하에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 성을 급습해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세겜 성을 노략했다(25-29절). 그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었다.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지만 사적인 피의 복수극을 허락하시지 않는다. 감정과 분노와 욕심에 사로잡힌 사적인 심판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공의로운 심판이 아니다.  사람이 사적으로 복수하지 말아야 하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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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4장 1-2절 1.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2.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라 >  본문에 언급된 디나의 비극은 세겜에 거할 때 일어났다(창 33:18). 밧단아람의 외삼촌 라반 집으로 피신할 때 야곱은 하나님이 자신을 편안하게 돌아오게 하시면 벧엘에서 하나님의 전을 세우겠다고 서원했다(창 28:20). 그 서원을 외면하고 세겜에서 제단을 쌓고 거했다. 결국 디나의 비극은 사실상 야곱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고난 중에 하나님 앞에서 한 서원대로 벧엘로 올라가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어려운 때의 서원을 버리고 세겜에 머물렀다가 결국 외동딸 디나가 강간당하는 사건을 만났다.  자신이 했던 서원을 힘써 지키라.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시련의 유무와 상관없이 진실한 사람이 되라. 진실한 사람은 꾸준한 사람이다. 꾸준한 진국 성도가 되라. 믿음은 진실함과 꾸준함을 통해 성장한다. 단번에 크게 성장하는 믿음은 별로 없다. 기적 같은 성장, 급성장 등의 말은 장기적으로는 별로 좋은 말이 아니다. 급성장으로 잘못된 틀이 형성되어 전체적으로 나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할 때가 많다.  ‘기적 같은 역사’란 말을 깊이 분석해보면 일확천금 사상이 듬뿍 들어있다. 기적을 좋아하며 추구하는 모습에는 수고 없이 무엇인가 얻기를 원하는 심리가 들어있다. 즉 내 수고에 비해 지나치게 축복을 원하는 모습이 기적을 좋아하는 습성으로 표출된 것이다. ‘소나기 같은 은혜’란 말도 너무 즐겨 쓰지 말라. 소나기는 사실상 거의 유익이 없다.  소나기 때문에 식물들이 상하고 물이 땅 속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전에 흘러내려가기에 그렇게 흘러내려가면서 옥토까지 쓸어가지고 간다. 식물만 망가뜨려놓고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이 소나기다. 식물을 위해서는 소나기보다 이슬비가 훨씬 좋다. 조용히 내리지만 땅 속 깊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