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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Sharks Won't Bite

“배부른 자는 꿀이라도 싫어하고 주린 자에게는 쓴 것이라도 다니라”(잠언 27:7). 배고픔, 곧 내면의 공허함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분별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채워주는 것이라면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더라도 무엇이든 받아들여도 괜찮다는 확신을 가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그저 욕망을 따라 사는 것 이상의 삶을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서 모든 일을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안정감으로 행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조건 없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늘 깨달음으로 자신감을 얻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성공이나 재산, 인간관계 같은 “달콤한” 것들에 마음을 쓸 때 신중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One who is full loathes honey from the comb, but to the hungry even what is bitter tastes sweet” (Proverbs 27:7). Hunger—that sense of inner emptiness—can weaken our discernment as we make decisions. It convinces us that it’s okay to settle for anything that fills us up, even if it causes us to take a bite out of someone. God wants more for us than a life lived at the mercy of our appetites. He wants us to be filled with Christ’s love so that everything we do flows from the peace and stability He provides. The constant awareness that we’re unconditionally loved gives us confidence. It e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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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7장 1-7절 1.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2.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4.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1. 말씀 중심적인 믿음  창세기 6장 14-16절을 보면 하나님은 대 홍수 때 노아 가족을 구원하시려고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도록 구체적인 설계도까지 그려주셨다. 그 방주는 배 모양을 했지만 평소에는 전혀 쓸모없는 상자 모양의 배였다. 그런 이상한 방주를 땅에서 오랫동안 만들고 있으니 사람들이 한심하게 보고 놀렸을 것이다. “저 친구 도대체 뭐하는 거야. 돌았어.” 그래도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했다(5절).  노아는 인간의 이성과 논리를 초월해서 하나님이 하라면 그대로 했다. 그런 순종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은 그를 당대에 완전한 자로 여겼고 그와 그의 가족에게 구원의 은혜를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비결은 “다 준행하였더라.”는 표현에 있다. 철저한 순종은 신앙의 척도이고 앞으로 얻을 은혜의 척도다. 순종이 없으면 참된 믿음이나 축복도 있을 수 없다. 믿음의 축복은 순종이 있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2. 교회 중심적인 믿음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고 하셨다(1절). “방주로 들어가라.”는 말은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는 암시다. 시련이 있다고 구원의 방주에서 이탈하면 세상 물에 빠져 죽는다. 주님의 몸인 교회 안에 늘 있으면 아무리 세상의 비바람과 폭풍이 몰아쳐도 안심할 수 있다. 방주에서 내려

노아의 방주가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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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6장 14-16절 14.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15.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1. 방주의 용적량  본문 15절을 보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방주는 길이가 300규빗(135미터) 넓이가 50규빗(22.5미터), 높이가 30규빗(13.5미터)으로 그 용적량이 대략 화차(貨車) 522대분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지구상의 모든 동물을 암수 한 쌍씩 태우는데 화차 188대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즉 모든 동물을 다 태우고도 여유가 많다는 말이다.  천국 시민권자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천국의 용량이 크듯이 마음의 용량이 큰 것이다. 거주지나 소속처의 크기는 작아도 마음과 꿈은 크게 하라. 노력도 해야 하지만 노력보다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이 넓은 마음과 큰 꿈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라도 계속 쳐다보라. 사람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의 약 5% 밖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한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나를 위해 준비해두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거의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잘 준비되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용량은 무한하다. 2. 방주의 창과 층수  방주의 창은 방주 꼭대기에서 한 규빗(45센티) 아래의 높은 곳에 두었다(16절). 그래서 방주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하늘만 쳐다보아야 한다. 창문이 사람 눈높이에 맞춰 있었다면 대 홍수로 무수한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이 다 보이면서 마음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을 막으려고 하나님은 높은 곳에 둔 창을 통해 하늘만 보게 하셨다. 그것은 믿고 구원받은 존재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라는 암시다.  방주는 3층으로 되었는데 꼭대기에만 창

아브라함처럼 복 받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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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15장 8-18절 8.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10.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 어려울 때도 순종하라 >  신체에 장애가 있으면 신체장애라고 하듯이 인격에 장애가 있으면 인격장애라고 한다. 인격장애는 외적으로는 정상처럼 보여도 내적인 장애가 있는 것이기에 치료가 힘들다. 태초에 아담의 범죄로 영혼과 정신과 몸의 조화가 흐트러지면서 인격장애가 생겼다. 결국 모든 사람에게는 크고 작은 인격장애가 있다. 인격장애 증상으로는 의심과 시기와 분노가 많은 편협성 인격장애, 허무감과 소외감과 우울증이 많은 분열성 인격장애, 헛된 환상과 자랑과 교만이 넘치는 연극성 인격장애, 피해망상과 패배감에 사로잡힌 자학성 인격장애 등이 있다.  어떻게 인격장애를 치료하는가? 최상의 길은 하나님 안에 있

비전의 불씨를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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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15장 1-5절 1.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 두려워하지 말라 >  축복 비전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본문 1절을 보라.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이 구절에서 ‘환상’은 영어로는 ‘비전(vision)’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왜 하나님이 환상 중에 임해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가? 찬란한 비전을 이루려면 두려움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두려워하면 최상의 작품인생을 위한 기초부터 흔들린다. 비전을 품고 나아갈 때는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지켜주고 큰 상급을 주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 온유하면서도 용맹하고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고 질서와 시스템을 존중하면서도 얽매임과 억눌림이 없는 자유를 누리라. 또한 사소한 이해득실에 따라 울고 웃지 않고 고난 중에도 기쁨과 감사와 믿음을 잃지 않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함을 가지라.  인생은 변화무쌍한 것이다. 어제의 쓰라린 상처가 내일의 영광스런 훈장이 될 수 있다. 내일까지 인내하고 내일까지 살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실패는 누구에게나 있다. 실패가 있기에 인생이다. 세상의

심판보다 앞서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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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엘 2장 15-17절 15.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을 욕되게 하여 나라들로 그들을 관할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겠나이까 할지어다 < 거룩한 삶을 결단하라 >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시온에서 양각나팔을 불어 심판의 날을 경고한 후 다시 양각나팔을 불어 거룩한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라고 했다(15절). 전체 유다 공동체가 거룩한 삶을 새롭게 결단하라는 메시지다.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할 때는 젖 먹는 자까지 모으라고 했다(16절). 하나도 빠짐없이 다 함께 모여서 거룩한 삶을 결단하라는 뜻이다. 회개 고백은 회개 생활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누구나 예외 없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그러므로 하나님 만날 날을 준비하면서 더욱 성실하게 살라. 하늘에 속한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살라. 이 땅에 있는 것 중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사할 때 종종 느끼는 사실은 사서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이 꽤 많다는 사실이다. 자리만 차지하고 이사할 때 짐만 되는데 왜 그게 좋아 보였는지 모른다. 그리고 아까운 생각이 드니까 제대로 버리는 결심도 못한다. 세상 것들을 너무 쌓아두지 말라. 부귀영화는 순간적이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주님의 말씀(눅 16:9)은 불의한 세상 제물로 영원한 것을 준비하라는 뜻이다. 인생은 짧다. 조금 후에 거울을 보면 돌아가신 할머니 얼굴이 거기에 있다. 마음은 청춘이라고 우기는 사람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나이가 든 사람이 힙합바지 입고 머리염색하고 다니면 “저분은 마음은 청춘이야.”라고

말씀을 받들고 받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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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엘 2장 1-2절 1.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 말씀을 받들고 받으라 >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기에 말씀을 진중하게 들으면 어느 때보다 더 성령충만해진다. 어떤 사람은 말씀을 통해 깨달음과 성령충만함을 얻기보다 신비한 행동이나 이상한 방법으로 성령충만함을 얻으려고 한다. 말씀을 외면하고 성령충만을 얻으려는 시도는 대개 실패하거나 거짓된 영에 미혹되기 쉽다. 말씀에 대한 목마름을 가지고 말씀을 진지하게 받고 순종하려는 열린 마음이 없으면 성령님의 임재도 주어지기 힘들다. 성령님은 강압적인 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써 받들라. 먼저 말씀을 받은 후 받들기보다 먼저 말씀을 받든 후 받으라. 말씀을 어떻게 받들고 듣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히 4:12). 말씀을 난도질하지 말고 말씀에 의해 찔리려고 하라. 말씀을 높임으로 하나님을 높일 때 점차 나도 높여지는 은혜를 입는다.  말씀을 높이고 깨달은 후 그 깨달은 말씀을 삶에서 잘 번역해 나타내라. 행동하라는 말씀이 요구에 응답해서 ‘좁고 작은 나’에서 탈피해 ‘넓고 큰 나’를 이루려고 나를 드리고 깨뜨릴 때 비로소 성령충만한 사람이 된다. 그렇게 변화된 나를 통해 세상을 더 정의롭고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왜 하나님이 위로의 말씀과 더불어 경고의 말씀도 주시는가? 어두운 세상을 변화시키는 행동에의 요구를 급박하고 진중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 선지자를 통해 종말 심판에 관한 말씀을 종종 주셨다.

후회함이 없이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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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15장 4-7절 4.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 기쁘게 수고하며 살라 >  본문 4절에서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닌다.”는 표현은 목자의 희생을 잘 보여준다. 목자는 아무리 힘들어도 양을 찾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목자에게는 어떤 것도 무섭지 않았다. 무서운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양을 찾기 전에 사랑했던 양이 죽는 것이었다. 마침내 목자가 양을 찾았다. 그때 어떻게 했는가? 찾은 양을 야단치며 끌고 오지 않고 양을 어깨에 메고 오면서 모든 고생을 잊고 즐거워했다(5절).  참된 사랑은 아무리 큰 수고를 해도 “내가 당신을 찾기 위해 이토록 고생했소.”라고 밝히지 않고 그저 찾은 것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것이다. 가끔 부모들은 자녀에게 공치사를 한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너는 이렇게 하냐?” 사실이라도 그런 말을 하지 말라. 그런 말은 할수록 참 사랑의 의미가 퇴색된다. 준만큼 받으려고 하면 갈등과 섭섭함이 생긴다. 참된 사랑은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기꺼이 주는 것이다. 크게 수고하고도 사람의 칭찬이 없으면 더욱 기뻐하라. 더욱 큰 하나님의 칭찬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이 한 영혼을 찾고 그렇게 기뻐하시는가? 죄의 결과와 지옥의 참상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천국에서는 국경일이 선포되고 축제가 열릴 것이다. 스펄전은 말했다. “한 영혼이 구원받을 때 하늘의 예루살렘 거리는 주님의 기쁨의 눈물로 강물이 되고 천사들과 성도들은 그 강물에서

진리 안에서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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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13장 10-17절 10.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우라 >  지금 중국은 시진핑 집권 후 그의 절대 권력 강화를 위해 취한 애국주의 패권 전략으로 많이 어려워졌다. 중국은 북한처럼 1인 절대 권력 체제를 갖추기 힘들다. 12만 제곱킬로미터의 땅과 2500만 인구를 가진 북한에서는 꽤 장기간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있어도 960만 제곱킬로미터의 땅과 14억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는 절대 권력을 가지기 힘들다. 중국은 상당한 자유를 이미 맛보았기에 역사의 바늘을 거꾸로 돌리기 쉽지 않다. 지금 시진핑은 큰 도전과 스트레스를 받아서 조만간 그의 사망 혹은 실각 소식이 들려올 것 같다.  지금 중국의 어려움은 사드 보복도 큰 원인이 되었다. 그 보복이 안하무인의 패권국가 인상을 심어 미국도 자극해서 미국의 대중 제재를 초래했다. 사드 보복 대상이 한국인 것도 중국을 어렵게 했다. 한국의 경제 규모와 실력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중국은 조금 잘살게 되었다고 교만해져서 자살골을 넣고 물귀신 작전을 펼쳐서 한국도 같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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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엘 1장 13-14절 13.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울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이 새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 14.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1. 겸손한 기도  하나님은 마음이 높은 자의 기도는 받지 않으신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음이 높으면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마음이 높은 작은 흔적조차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더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다.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는 더욱 철저히 마음을 낮추라. 몸까지 낮춰서 마음이 낮아지도록 견인하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기도를 받으신다. 태생이 교만한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진실로 겸손해질 수 있는가? 그래서 회개가 필요하다. 사람이 가장 겸손해질 때는 진실하게 회개할 때다.  특히 겸손해지기 힘든 사람은 영적인 리더를 자처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영적인 리더는 더욱 회개 기도를 앞세워야 한다(13절).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으면 예수님의 겸손한 삶이 나타나야 한다. 겸손할 때 불화의 기운이 평화의 기운으로 바뀐다. 겸손으로 내면의 불화와 불통을 제거할 때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뤄지고 형통의 은혜도 얻는다. 세상의 어둠은 나의 높은 마음이 물리적으로 나타난 흔적들이다. 겸손한 기도를 통해 자기와의 소통을 이룰 때 하나님과의 소통도 원활해진다. 2. 정결한 기도  율법에 의하면 금식일은 일년 중에 대속죄일 하루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구할 때는 국가적인 금식일을 선포하기도 했다(14절). 눈물은 감정적으로 표출된 회개 표시지만 금식은 의지적으로 표출된 회개 표시다. 왜 금식하는가? 어떤 사람은 “금식기도 하면 기도 응답을 잘 받는다.”고 생각해서 금식한다. 진실한 금식기도가 응답을 잘 받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마음속에 무지개를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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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9장 12-17절 12.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 무지개 언약 >  하나님은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는 징표로 무지개를 주셨다(12-13절). 그래서 그 언약을 ‘무지개 언약’이라고도 부른다. 홍수 후 노아 후손들은 구름만 봐도 공포에 젖을 수도 있다. 게다가 비까지 떨어지면 더욱 공포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비가 그친 후 생기는 무지개를 보면서 그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생각하며 삶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무지개가 뜨면 이런 암송을 했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영원히 찬송하라. 그리고 항상 언약을 기억하며 내 말을 굳게 지키라.”  하나님이 무지개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언약의 증거를 세우셨기에 무지개는 보통 중요한 현상이 아니다. 무지개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 있고 무지개가 나타나면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시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과학문명이 발달하면서 어떤 현상이 생기는가? 점차 무지개가 사라지고 있다. 옛날에는 무지개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비가 오면 무지개가 가끔 떠올라서 무지개 잡으러 가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지개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 사실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무지개가 나타나면 하나님이 언약을 기억하시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사명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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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8장 13-19절 13.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15.하나님이 노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6.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오고 17.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매 18.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의 아내와 그 며느리들과 함께 나왔고 19.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 세상의 선물이 되라 >  노아는 방주에 들어갈 때처럼 나올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했다(15절). 이미 노아는 물이 걷힌 것을 알았다(13절). 그래도 바로 방주 밖으로 나오지 않고 하나님이 방주에서 나오라고 할 때까지 57일을 더 방주 안에 머물렀다. 그는 철저히 말씀 중심적으로 살았다. 마침내 하나님이 방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나오라고 하면서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고 하셨고 그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할 것이라고 하셨다(17절). 그 말씀을 듣고 노아는 사방이 황폐화된 상황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가졌을 것이다.  마침내 노아의 식구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에서 나오고 노아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들도 함께 나왔다(18-19절). 방주가 아무리 안전하고 좋아도 때가 되면 방주 밖으로 나와야 하는 것처럼 구원받은 성도는 교회 안에서만 안전하게 있지 말고 사명을 가지고 교회 밖으로 나가야 한다. 교회 밖으로 나아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보다 세상의 소리를 따라가고 세속적인 축복과 행복 신화에 사로잡혀 교회 안에서 가위눌린 사람처럼 지내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성도의 삶이란 하늘의 소리를 따라 변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 사명을 외면하면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신실한 일등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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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장 19-24절 19.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20.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21.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22.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 가인의 후손을 통해 문명 >  가인의 6대손 라멕은 아다와 씰라 두 아내를 맞이했다(18-19절). 성경 기록상 라멕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부일처의 신성한 결혼제도를 깨뜨린 최초의 인물이다. 라멕은 첫째 아내인 아다를 통해 야발과 유발 형제를 낳았는데 야발은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어 인류 첫 목축업자가 되었고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인류 첫 음악가가 되었다(20-21절). 또한 씰라를 통해 두발가인을 낳았는데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각종 기구를 만들어 인류 첫 기술자가 되었다(22절).  또한 라멕은 성경 기록상 인류 최초로 시를 썼다. 본문 23-24절은 히브리 원어로 보면 시로 되어 있다. 어떤 내용의 시인가? 사람을 죽이고 지은 시로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에도 하나님의 긍휼로 가인을 해롭게 하는 자는 칠 배의 벌을 받았지만 라멕은 동생이 아닌 사람을 죽였으니 자신을 해롭게 하는 자는 칠십 칠 배의 벌을 받는다는 시다. 최초의 시가 아름다운 시가 아닌 하나님을 조롱하는 시였다.  가인의 후손을 통해 문명은 진보했지만 하나님이 없는 상태에서의 풍요와 발전은 결코 복이 아니다. 성도의 삶의 목표가 풍요와 발전과 문명적인

인생을 의미 있게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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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5장 1-20절 1.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6.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18.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 세월을 아끼라 >  창세기 5장에는 아담이 930세를 살았던 것을 필두로 셋의 후손이 다 수백 년 이상 살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처럼 초기 인류의 장수를 생각하면 부럽지만 사실 장수의 복보다 더 큰 복은 건강하고 의미 있게 잘사는 복이다. 살면서 가장 피해야 할 삶이 ‘무기력한 삶’이다. 몸이 조금 약해도 얼마든지 기력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언제 기력이 생기는가?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나도 동참해서 기쁨이 넘칠 때 기력도 넘치게 된다.  본문에 나오는 인물들은 질병과 무기력과 기억력 저하 가운데 장수하지 않고 건강과 기력을 유지하며 장수했다. 본문에서 계속 반복되는 어휘는 “OO를 낳은 후 몇 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라는 어휘다. 나이가 많았어도 오랫동안 자녀들을 낳을 정도로 기력이 넘쳤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장 큰 복은 짧게 살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복이다. 에녹이 산 날은 365년으로 당시 다른 사람의 약 3분이 1밖에 안 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다.  우리는 당시에 가장 적게 살았던 에녹보다도 훨씬 적게 살기에 더욱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 남은 인생으로도 얼마

끝이 없는 주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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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15장 4절 4.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 끝이 없는 주님의 사랑 >  한 유명한 가수가 1차 세계 대전 때 전쟁으로 25살 된 외아들을 잃었다. 그 후 신경쇠약에 걸려서 모든 연예활동을 멈추고 해변으로 휴양을 가서 거기서 독서와 묵상을 하며 지냈다. 휴양 중에 몇 명의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그 중의 하나는 꼬마 소년이었다. 어느 날 그는 꼬마 소년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었다. 마침 해가 막 지고 있었는데 둘은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주위의 경관을 쳐다보았다. 그때 소년은 바닷가를 따라 있는 몇몇 집의 창문에 별이 그려진 깃발이 걸린 것을 보았다.  소년이 로더에게 물었다. “아저씨! 저 집들에는 왜 깃발이 걸려 있어요?” 로더가 말했다. “깃발이 걸린 집은 그 집에서 아들을 전쟁터로 보냈다는 뜻이란다.” 그 말을 듣고 소년이 말했다. “그런데 왜 어떤 깃발에는 은색별이 그려져 있고 어떤 깃발에는 금색별이 그려져 있나요?” 로더가 말했다. “은색별이 그려진 깃발은 아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뜻이고 금색별이 그려진 깃발은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뜻이란다.”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두워지자 하늘에 첫 번째 별이 떴다. 그 별을 보고 소년이 말했다. “아저씨! 하늘에 별이 떴어요. 그런데 별이 금색별이에요. 그러면 저 금색별은 하나님이 아들을 전쟁터로 보냈는데 그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뜻인가요?” 그 소년의 말을 듣고 그가 감동 가운데 말했다. “네 말이 맞다! 저 금색별은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을 전쟁에 보냈다는 뜻이야. 그 역사상 가장 큰 전쟁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서 저 별이 금색별이 된 거야.” 그 말을 할 때 깊은 평안이 임하며 신경쇠약이 순식간에 치유되는 체험을 했다.  지금 우리는 영적인 전쟁 중에 있다. 그 전쟁은 일반적인 전쟁보다 훨씬 큰 전쟁이다. 그 전쟁에서 승리

계속 인내하라 참아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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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15장 1-4절 1.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 계속 인내하고 참아주라 >  본문의 비유에서 잃어버린 1마리의 양은 ‘소외된 사람’을 상징한다. 그들은 도덕적으로 허물이 많고 사회적으로 욕을 먹고 정신적으로 병든 존재일 수도 있다. 그 1마리의 양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인내와 용납을 상징한다. 또한 내가 지금 멀쩡히 살아 있는 것도 하나님의 무한한 인내와 용납의 증거다. 그 하나님의 인내하심은 나의 인내를 도전한다. 그런 인내심이 있어야 영혼을 얻을 수 있다.  영혼을 찾아나서는 일은 인간적으로 제일로 하기 싫은 일이다. 그 일이 얼마나 외로우며 그 행위가 얼마나 고독한 것인가 하는 것은 경험한 자가 아니면 모른다. 전도는 세상에서 가장 반대 받는 일이요 물질적으로나 현실적으로는 아무 이득이 없는 일이다. 그래도 영혼 구원에 관한 열정과 관심을 늘 가지라. 주님이 그것을 원하고 지금도 참된 사랑과 참된 교인의 모습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참고 인내하며 전도하라. 그래야 하나님이 그 삶과 가정을 기억하고 천국 보상도 찬란하게 하실 것이다.  옛날에 첫째 딸이 어렸을 때 딸을 잃어버린 꿈을 꾸었다. 교인들과 함께 정신없이 찾으러 다녔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뒷동산을 찾아보라는 영감을 주셨다. 다행히 거기서 벌벌 떨고 있는 딸을 찾아 꼭 껴안다가 잠에서 깨었는데 깨어보니까 정말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때 자녀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생하게 느꼈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영혼을 찾아 이 땅에 내려오신 사건이 바로 성육신의 사건이다.  성육신에는 사람에

한 사람을 중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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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15장 1-4절 1.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 사람에 대해 실망하지 말라 >  예수님은 세리와 창기와 같은 소외된 사람과 함께 있기를 즐겨하셨다. 그 모습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못마땅하게 여겼다(1-2절). 완전히 침몰한 배는 다른 배의 항해에 방해되지 않지만 절반쯤 침몰한 배는 큰 방해가 된다. 그들은 영적인 방해꾼처럼 알량한 자신의 의와 어설픈 지식을 휘두르면서 남을 정죄하는 불행한 존재였다. 그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메시야가 이 땅에 오신 참된 목적을 알려주려고 본문의 비유를 하셨다.  본문 말씀의 핵심 메시지는 부족한 양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족한 양을 찾으려고 이 땅에 오셨다. 다른 모든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이 사람을 찾는다. 기독교에서는 종교적인 열심과 노력으로 구원받지 않고 사람을 찾는 하나님의 열망에 대한 사람의 응답으로 구원받는다. 그래서 기독교는 처음부터 소외된 사람들, 즉 죄인, 병자, 과부, 고아 등을 귀하게 여겼다.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이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비판했듯이 요새도 비슷한 비판이 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못된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면 “어떻게 저런 사람이 교회에 다닐까?” 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사람을 위해서도 존재한다. 교회는 건강하고 문제가 없는 사람뿐만 아니라 문제가 많고 소외된 사람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곳이다. 그래서 교인 중에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도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전도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왜 기독교에는 그렇게 교파가 많고 왜 교인 중에

부족해도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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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장 9-15절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 형제 사랑의 원리 >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린 아벨의 제물은 받고 형식적으로 드린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았다. 그러자 선을 행하지 않고 죄를 다스리지 못한 가인이 아벨을 들에서 쳐 죽였다(8절). 그 후에 있었던 하나님과 가인의 대화를 통해 형제 사랑과 관련해 얻는 교훈은 무엇인가? 1. 형제를 시기하지 말라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이 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그가 대답했다. “내가 알지 못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그 말을 보면 가인의 열등감과 시기심이 살인의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시기심은 살인 이전에 있었던 타락한 인간의 핵심적인 죄다. 그 시기심을 잘 극복하도록 남과 비교하며 살지 말라. 남의 성공을 보고 나에 대해 실망하지도 말라. 내가 그가 될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  남보다 나아지려는 건전한 꿈과 목표는 가지되 남보다 나아지려고 집착하거나 잘못된 수단방법을 쓰지는 말라. 또한 앞선 사람에 대한 부당하고 지나친 비난도 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