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의 게시물 표시

복음 전파에 힘쓰라

이미지
본문말씀 : 사도행전 3장 25-26절 25.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26.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 복음을 전파하는 복 >  신자와 불신자는 회개로 갈린다. 성도란 회개한 사람이다. 성숙한 성도와 미성숙한 성도는 무엇으로 갈리는가? 회개가 빠른 사람이 성숙한 성도이고 회개가 느린 사람은 미성숙한 성도다. 복 받을 사람은 잘못했으면 금방 회개하고 은혜를 예비하지만 복 받지 못할 사람은 잘못했어도 회개하지 않고 진노를 쌓는다.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마음이 강퍅해진다. 마음이 강퍅해지면 찬송을 불러도 감격이 없고 기도해도 감격이 없다. 말씀을 들어도 깨달음이 없다. 그러므로 회개가 없는 것처럼 인생에 큰 마이너스는 없다.  다윗은 죄에 대한 회개의 고백을 하지 않으면 영혼이 종일 신음하고 뼈가 쇠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시 32:3-4). 죄를 회개해야 사는 길과 평안의 길이 열린다. 불신자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고 구원받은 성도도 마음이 강퍅해지지 않도록 회개가 빠르고 익숙해야 한다. 수시로 기도하라. “하나님! 회개의 영을 부어주소서.”  왜 기적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는가? 기적을 통해 기적에 초점을 맞춰 기적을 추구하라는 뜻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해서였다. 베드로도 기적을 추구하게 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추구하도록 설교했다. 본문을 보면 복음을 전파하려는 베드로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전도의 열정을 회복시키라. 전도가 무엇인가? 복음을 아는 자가 모르는 자에게 복음을 나눠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소중한 것을 이웃과 나누기를 원하신다. 특히 복음을 나누기를 원하신다. 복음을 나누지 않으면 성장도 없고 성숙도 없고 성공도 없다.  내 것을 퍼내지 않으면 내 안에서 썩는다. 나눠줄 때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

이미지
본문말씀 : 미가 6장 8절 8.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하나님의 뜻을 살피라 >  필자의 <온새기(온라인새벽기도)> 메일 회원은 7100여명이다. 그 중 절반 이상은 10년 이상 말씀 메일을 받은 회원이기에 회원의 친밀도와 충성도와 이해심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10년 이상 말씀 메일을 주중에 매일 받으면서 그 말씀 중에 자기 생각과 맞지 않고 때로는 반대 입장을 취하고 싶은 말씀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수신거부’를 하지 않고 계속 말씀을 받고 있다면 그것이 친밀도와 충성도와 이해심을 나타내는 표시다. 어느 공동체든지 10년 이상은 있어봐야 자신의 공동체적인 정체성과 인격성을 인정받고 리더로 세워질 수 있다.  필자는 메일 회원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고 목사 그룹, 선교사 그룹, 해외거주 그룹, 교인 그룹, 지인 그룹, 후원자 그룹, 신규 그룹 등 총 38개의 그룹으로 분류해 놓았다. 그들에게 대부분 같은 내용의 메일을 보내지만 구체적인 선교 후원과 관련된 기도제목을 알릴 때는 간혹 내용을 달리해서 보낸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회원에게 그런 기도제목을 알리면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공정과 차별인가? 그렇지 않다.  교인이나 옛 지인이나 친구 등에게는 선교 후원 관련 기도제목 내용을 빼고 보내기도 한다. 심적인 부담을 더 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마음 상태를 세심하게 고려해 차이를 두는 것이다. 특히 마음의 준비가 충분히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순종과 헌신을 말하기 조심스럽다. 반면에 헌신과 순종을 도전하는 말씀이 잘 수용되는 마음을 준비하면 하나님이 그 마음을 기억해주신다. 준비된 마음 지수는 준비된 축복 지수를 높인다. 늘 하나님께 순수하고 진실한 마음을 드리려고 준비하라. <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 >  하나님

기적에 초점을 두지 말라

이미지
본문말씀 : 사도행전 3장 11-12절 11.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 오직 예수 그리스도 >  베드로와 요한이 일으켰던 못 걷는 걸인이 성전을 뛰어다니며 하나님을 찬송하자 사람들이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에 모였다(11) 솔로몬의 행각은 헤롯이 성전을 재건할 때 솔로몬 성전 터에 남은 기초석을 따라 지은 행랑이다. 그 행각은 두 줄의 대리석 기둥과 삼나무로 지붕을 덮은 회랑으로 이뤄졌는데 바깥뜰 동쪽 벽을 따라 죽 이어져서 성전 동편의 부속건물 역할을 했다. 그곳은 종종 대중을 위한 강론 및 집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 모인 백성들에게 베드로가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절).” 만약 기적이 나를 통해 일어나 사람들이 몰려들면 그때 해야 할 첫 번째 말은 “왜 나를 주목합니까?”라는 말이다. 그 말은 “예수님을 주목하라.”는 말이다. 그와 유사한 상황에서 그렇게 말하라. 즉 내가 성공해서 사람들이 도가 지나치게 칭송하면 그때 즉시 해야 할 말은 “왜 나를 주목합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라는 말이다.  그때 베드로가 자기를 높이거나 주목하게 하는 말을 해서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주의 종!”이란 소리를 듣고 인기를 끌었다면 그는 이단 교주처럼 되었을 것이다. 이단 교주는 기적을 통해 예수님이 받아야 할 칭송을 가로채 사람들을 모아 자기 왕국을 세운다. 이단 교주는 영성과 영력이 탁월한 것처럼 주장하고 기적을 주는 존재처럼 여기게 해서 자기를 우월적으로 바라보는 신도를 이용해 돈을 벌고 힘을 키우지만 베드로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게 했다.  걸인을

주님이 찾아오시는 마음

이미지
본문말씀 : 누가복음 1장 14-17절 14.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1. 감사하는 마음  주의 사자는 세례 요한의 탄생으로 사가랴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겠고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할 것이라고 했다(14절). 예수님의 탄생은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천군 천사들이 찬송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예수님이 있는 곳에는 영광과 기쁨과 찬양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성도가 기뻐하고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절망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반항하는 큰 죄다. 가끔 삶이 힘들게 느껴져도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가 넘치게 하라. 내 삶의 가치를 잠시도 잊지 말라. 감사는 자기가 바라는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생각만 바꾸면 얼마든지 감사할 수 있다. 기쁜 일이 있으면 감사가 나오지만 반대로 감사할 때 기쁜 일도 생김을 잊지 말라. 감사는 문제를 해결 받고 축복 받은 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는 것이다. 어려운 때 감사하면 하나님이 더 함께 하신다.  <발자국>이란 그림을 보면 평소에는 하나님의 동행으로 모래밭에 발자국 네 개가 찍혔다가 고난 중에는 발자국이 두 개만 남았다.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나를 업고 걸어가셨기 때문이다. 고통 중에도 낙심하지 말라. 그때 하나님은 나를 더 생각하고 내게 더 가까이해주신다. 그 사실을 생각하고 어려워도 기뻐하고 감사하라. 감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

선한 결말을 기대하라

이미지
본문말씀 : 아모스 5장 24-27절 24.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25.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26.너희가 너희 왕 식굿과 기윤과 너희 우상들과 너희가 너희를 위하여 만든 신들의 별 형상을 지고 가리라 27.내가 너희를 다메섹 밖으로 사로잡혀 가게 하리라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라 >  하나님은 예배가 소수의 그룹 안에서 추상적으로 끝나기보다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모습으로 나타나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모습까지 있기를 원하신다. 특히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정의와 공의를 내버리는 행위로 여기셨다. 본문 26절의 식굿과 기윤은 당시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의 이름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간 희생과 소제물을 드렸지만 수시로 이방신을 섬기면서 결국 나라가 패망해 이방 지역으로 사로잡혀 간다는 말씀이다(25-26절).  우상숭배를 통해 정의와 공의를 저버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 최대의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다. 정의는 인간관계에서의 의를 뜻하고 공의는 하나님관계에서의 의를 뜻한다. 하나님관계에서도 신실하고 인간관계에서도 신실하라. 하나님은 빛과 복을 주시기 전에 바른 신앙 자세를 요구하신다. 정의와 공의가 상실된 예배는 하나님의 마음에도 상처가 된다.  오래전 남아메리카에 평화로운 인디오 마을이 있었다. 어느 날 그 평화가 스페인 정복자들로 인해 깨지고 그때부터 인디오들은 좌절 가운데 살았다. 스페인 정복자들은 그들의 창칼에 상처 입은 인디오의 몸과 영혼을 치료해줄 가톨릭 신부들을 보내고 말했다. “오늘 천부께서 계시를 통해 너희를 위한 성전 건축을 명하셨다. 이 거룩한 사역에 동참하는 영광을 부여받았으니 죽음을 각오하고 천부의 명령을 완수하라.” 그리고 옆에 있는 신부들에게 미사를 명령했다. 그 후 백여 년간 성전을 건축했다.  어

말씀대로 사는 축복

이미지
본문말씀 : 누가복음 4장 31-37절 31.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33.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34.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 < 높은 마음을 가지지 말라 >  어느 날 예수님이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와 안식일에 가르치셨다(31절). 가버나움은 나사렛 북동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갈릴리의 핵심 도시로서 예수님 초기 사역의 근거지였다. 나는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과 관련된 말씀에서 ‘내려왔다’는 표현을 보면 깊은 감동에 사로잡힐 때가 많다. 성도는 올라가는 삶의 전반전도 잘해야 하지만 올라간 후 내려오는 삶의 후반전도 잘해야 한다. 후반전까지 잘해서 승리하는 것이 진짜 승리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낮은 영혼을 찾으셨기에 낮은 영혼을 외면하면 예수님을 만나기 힘들다. 늘 어두운 그늘을 살피고 하나님이 어느 때에 주신 감동을 따라 누군가를 도우라. 그런 손길들의 연대를 통해 세상은 점차 밝아진다. 물론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스스로 참여하되 남에게 참여하라고 강요하지는 말라. 자발적인 참여와 헌신이 중요하다. 내가 가진 것을 힘없는 의인을 위해 자발적으로 내놓을 때 하나님이 그 마음에 임해주신다.  예수님이 이 땅에 깅림하신다는 표현은 하늘도 중요하지만 땅도 중요하다는 암시다. 성경은 위엣 것을 바라보라고 하지만 위엣 것만 바라보라고 하지는 않는다. 아래도 살피라. 대기권에서

정의롭게 판단하라

이미지
본문말씀 : 아모스 5장 11-13절 11.너희가 힘없는 자를 밟고 그에게서 밀의 부당한 세를 거두었은즉 너희가 비록 다듬은 돌로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으나 그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리라 12.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13.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 힘없는 자를 밟지 말라 >  당시 관원들은 힘없는 자를 밟고 부당하게 세금을 거둬서 다듬은 돌로 좋은 집을 건축했지만 정작 그 집에 거주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포도원을 가꾸었지만 포도주를 마시지 못한다(11절). 착취해 얻은 돈으로 잠시 부귀영화를 누려도 결국 불행해지고 비참해진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 받는 위치에 올랐으면 그 은혜를 힘없는 자에게 힘써 흘려보내라. 힘없는 자를 밟지 않고 살 길을 열어줄 때 복되게 사는 길이 열린다.  왜 삭개오가 복된 존재가 되었는가? 예수님을 만난 후 진실하게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간 것을 보고 수군거렸다. 삭개오는 세리로서 따돌림의 대상이었지만 내면은 정직했다. 세리라고 따돌리는 사람이 그 따돌리는 태도로 인해 삭개오보다 못한 존재로 예수님 앞에 평가되었다. 남을 따돌려 짓밟으려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니다.  예수님은 삭개오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집에 유하겠다고 하셨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자신에 대해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느끼고 감동 가운데 말했다. “주님! 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습니다.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4배로 갚겠습니다.” 그런 결단과 고백은 쉽지 않다. 믿음에는 하나님의 축복도 준비되어 있지만 내 측면에서의 결단과 변화도 요구된다.  그때 예수님이 말씀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삭개오에게 ‘오늘’이란 엄청난 희망의 말이었다. 이전의

정직한 말을 기뻐하라

이미지
본문말씀 : 아모스 5장 7-8절 7.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8.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 복되게 사는 길 >  공동체 생활에서 수고 없이 열매를 따먹고 양지만 찾고 단맛만 누리는 사람을 보면 이타적인 사람조차 불쾌해진다. 결국 단맛만 누리는 사람을 따돌리는 기류가 형성된다. 그때부터 공동체는 내적으로 분열되면서 다 힘들어진다. 속상한 마음으로 남의 힘을 빼려고 하면 나도 힘이 빠진다. 때로는 내가 더 힘들어진다. 그때 마음을 잘 돌리라. 남을 미운 마음으로 따돌리거나 괴롭히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원수를 애정적인 대상처럼 사랑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의 앞날의 불행과 심판을 안타깝게 여기고 긍휼히 여기라는 말이다.  남을 해롭게 하기보다 이롭게 하라. 그러면 나도 이로워지고 공동체도 이로워진다. 힘이 있어도 “나 없으면 잘 되나 보자.”라고 하지 말라. 힘을 과시하려고 해야 할 일을 놓고 있지 말라. 물론 교육적이고 전략적인 목적으로 잠시 해야 할 일을 놓는 경우는 필요하다. 그때도 교만한 모습이 없게 하라. 겸손한 마음으로 “내가 여기에 없어도 잘 되겠지만 내가 잠시 이 일을 놓겠다.”고 하라.  힘이 있다면 그것을 과시하거나 휘두르지 말고 겸손하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힘을 보태라. 교만한 ‘헤게모니(hegemony)’ 인생이 아닌 겸손한 ‘하모니(harmony)’ 인생을 꿈꾸라. 나의 힘과 소유로 남을 섬기면 복된 존재가 되지만 남을 망치면 망할 존재가 된다. 후자의 경우라면 힘과 소유가 없는 것이 낫다. 많은 힘과 소유를 가진 것이 성공이 아니라 많은 땀과 섬김을 가진 것이 성공이다. 나의 힘과 소유가 성공의 도구가 아닌 패망의 도구가 되게 하지 말라.  강하다고 마음이 높아지지 말라. 하나님은 강한 자도 갑자기 패망에 이르게 하신다(9절). 모든 것이 하나

하나님께 기도하라

이미지
본문말씀 : 아모스 5장 7-8절 7.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8.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 나를 앞세우지 말라 >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추구하는 데 실패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은 영적 자살 행위와 같고 그 결말이 비참해진다. 밤에 누군가에게 발견되기를 원하는 찬란히 빛나는 네온사인의 불빛처럼 하나님도 위대하신 하나님으로 발견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어디 계셔요?”라고 간절히 찾으면 하나님은 바로 앞에 나타나셔서 “여기 있어.”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간절히 하나님을 찾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은 혼돈과 근심이 넘치는 세계다.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 오히려 사람을 위협한다. 1986년 벨라루스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폭발력은 히로시마에 떨어뜨린 원자폭탄의 200배가 넘는 위력을 가졌다. 그 피해액은 2350억 달러로 당시 벨라루스 국가 전체 예산의 32배였다. 그런 핵 누출 사고가 소량이지만 우리나라 월성에서도 있었다. 사람을 위해 만든 핵발전소가 사람에게 가장 무서운 흉기가 된 것이다. 그런 시대에 마음 편하게 살겠다고 사람들이 많은 대비를 하지만 사실상 피할 곳은 하나님의 품밖에 없다.  모든 성공과 실패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의 수고와 노력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지만 인생의 성공을 좌우하는 큰일은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이뤄진다. 아무리 땀을 흘리며 김을 매고 논밭을 가꾸어도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를 망친다. 인생과 가정의 성공도 하나님께 인정받아야 이뤄진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보다 나를 앞세우지 말라. 좋은 생각을 가지고 좋은 뜻을 품어도 내가 앞서면 허무한 결과를 낳는다.  삶이 아주 힘들 때는 성도들에게조차 거친 질문이 나온다. “하나님! 세상이 불공정한 것 같습니

믿음의 3대 핵심 주제

이미지
본문말씀 : 사도행전 2장 36-38절 36.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1. 십자가  초대교회 때 예수님을 믿는 데는 한 가지 큰 걸림돌이 있었다. 바로 십자가 문제였다. 대역 죄인을 발가벗겨서 매달아 처형하는 도구인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메시야로 섬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는가? 그 문제를 베드로가 어떻게 해석했는가? 십자가 사건도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이뤄진 사건이었다고 했다(23절).  예수님의 십자가는 실패의 상징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심한 계획으로 이뤄진 작품이기에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인류 구원을 위한 참된 사랑의 표상이란 뜻이다. 사도 바울도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성도란 십자가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십자가의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존재다.  참 사랑은 십자가의 자기희생적 사랑이다. 사랑의 깊이는 말로 나타나기보다 자기희생의 깊이로 나타난다. 사랑한다는 말은 있지만 자기희생이 없다면 그 사랑은 관념일 뿐이다. 십자가의 사랑은 남의 의를 위해 내 의를 희생하는 것이고 남을 옳게 이끌려고 내가 죄를 뒤집어쓰는 것이고 남을 유능하게 만들려고 내가 무능한 위치에 서는 것이다. 2. 부활  예수님의 십자가가 인류 구원을 위한 온전한 사랑의 표상일지라도 십자가 사건으로만 끝났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큰 역사를 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3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십자가를 인류 구원의 통로이자 예수님이 진짜 메시야임을 확증하는 표상으로 만드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고 수많은 선행을 베푸셨지만

6가지 기적의 통로

이미지
본문말씀 : 사도행전 3장 1-10절 1.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2.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5.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6.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9.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본문에는 나면서 못 걷게 된 걸인이 40여 세에 기적적으로 일어서는 장면이 나온다. 40여년의 장애를 극복한 걸인의 얘기는 하나님의 사명 이행과 복음 전파를 위해 필요하다면 인생에서 극복하지 못할 단점이 없다는 도전을 준다. 본문의 기적은 사도들이 처음 행한 기적인데 그 놀라운 기적의 통로는 무엇인가? 1. 정기적인 기도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정기적으로 기도했다. 그 시간은 3시, 6시, 9시로서 오늘날의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늘날의 오후 3시인 제9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갔다(1절). 그것은 그들이 정기기도를 중시했고 기도를 생활화했다는 암시다. 생활화된 기도는 기적의 핵심 통로다. 다니엘의 지혜의 원천은 무엇인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정기적으로 하루에 세 번 기도한 삶이었다(단 6:10).  기도는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이고 영혼의 호흡이기에 항상 기도하면서 특히 정기기도 시간을 가지라. 정기기도를 꾸준히 드리면 누구보다 능력 있는 기도자가 된다. 엘리

성령에 의해 흥분하라

이미지
본문말씀 : 사도행전 2장 12-13절 12.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13.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 거룩한 흥분이 필요하다 >  제자들에게 나타난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많은 사람이 놀랄 때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며 말했다.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13절).” 성령 체험을 술 취한 것이라고 조롱한 이유는 제자들이 대부분 갈릴리 출신의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역사를 일으켜도 무식하다면 사람들이 우습게 안다. 유식하다는 사람이 선한 열정을 가지면 “공부한 사람은 역시 달라.” 하고 하지만 무식하다는 사람이 선한 열정을 가지면 “미쳐도 크게 미쳤군.” 하고 반응한다. 교만은 편견을 낳고 편견은 패망을 낳는다.  제자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받았지만 사실상 그들은 영적인 새 술에 취한 것이었다. 그런 술 취함은 필요하다. 흥분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좋은 일에는 흥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성만으로 일이 안 될 때가 많다. 때로는 감정이 움직여야 일이 빨리 이뤄진다. 열정도 없이 “어떻게 되겠지.” 하면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열정은 피가 뜨거운 것이다. 예수님의 피로 구원 얻은 성도가 다시 예수님의 피로 뜨거워져야 구원을 전할 수 있다.  성도에게 복음 전파의 열정이 없다면 불 꺼진 영혼과 같다. 다만 열정은 감정의 일종으로서 신비하게 찾아왔다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기에 열정을 낭만적인 감정으로만 머물게 하지 말고 선한 일을 강력하게 추진시키는 거룩한 불쏘시개로 승화시켜야 한다. 참된 열정은 믿음 안에서 의지적으로 지속되어야 하기에 성령충만이 필요하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퇴색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이끌려 사는 힘도 강력해진다.  참된 믿음이란 예수님이 없으면 언젠가 길이 막히고 예수님이 있으면 언젠가 길이 열린다는 확신이다. 그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는 외적인 흥분을 일으키는 감정적인 열정이 굳이 없어도

절대 희망을 잃지 말라

이미지
본문말씀 : 사도행전 1장 21-26절 21.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 인간적인 계산을 버리라 >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이 어떻게 사도를 뽑았는가? 먼저 사도의 자격을 세웠다. 즉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 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으로 기본 자격을 세웠다(21-22절). 그리고 기본 자격에 합당한 두 사람을 추천했다. 요셉과 맛디아였다(23절). 두 사람 중 하나를 사도로 선택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서 특별히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여달라고 기도했다(24-25절).  그 후 제비 뽑아 사도를 택했다(26절). 언뜻 보면 제비뽑기가 신령하지 않은 일로 생각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직 제자들이 성령을 받지 못했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제비뽑기를 사용했다. 제비뽑기가 성경적인가? 그렇다. 잠언 16장 33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이 말씀은 제비뽑기를 인정한다. 물론 신약시대는 특별한 예외 상황이 아니면 굳이 제비뽑기를 할 필요가 없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세심한 인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결원이 된 사도를 보충하려고 인간적인 상식을 동원해 기준을 세웠지만 최종 결정은 제비뽑기를 통해 하나님께 맡겼다. 얼마나 단순한 절차인가? 그

가족의 인정을 받으라

이미지
본문말씀 : 사도행전 1장 12-14절 12.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13.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14.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은 감람원이라 하는 산, 즉 감람산이다.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남쪽에 위치한 감람나무가 많이 있는 산이다. 그곳의 감람나무 숲 기슭에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감람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모리아 산이고 솔로몬 성전이 있었던 이스라엘의 성지로서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었다. 본문 12절에서 ‘길’은 ‘거리’란 뜻이다. 즉 감람산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에 있었다.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안식일에는 일하지 말아야 하지만 걷지 않을 수는 없기에 유대 율법학자들은 안식일에 얼마나 걷는 것이 일하지 않는 것인지를 연구하고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 외곽으로 한 바퀴 도는 거리 정도라면 죄가 되지 않고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거리로 여겼다. 그 거리가 약 이천 규빗이다. 한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까지 약 45센티미터로서 이천 규빗은 약 900미터 정도다. 결국 예루살렘 성에서 감람산까지의 거리는 약 1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그때 제자들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저희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갔다(13절). 그 다락방에는 가룟 유다 외에 예수님의 11제자가 다 모였고 예수님의 신성을 믿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도 있었다. 예수님의 아우들은 몇 명이고 어떻게 다락방에 있게 되었는가?  마가복음 6장 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끝장난 인생은 없다

이미지
본문말씀 : 사도행전 1장 9-11절 9.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 주님 재림을 소망하라 >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이 땅에서 40일간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고 승천하셨다. 제자들이 승천하시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두 천사가 말했다.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이 구절에서 “그대로 오시리라.”는 말에는 현상적 의미와 위치적 의미가 다 내포되어 있다. 현상적 의미란 주님이 재림하실 때 구름을 뚫고 승천하신 것처럼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의미다(살전 4:16-17). 위치적 의미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감람산에서 승천하신 것처럼 감람산으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의미다.  감람산은 이스라엘 사람에게 성지 중의 성지로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모리아 산이고 솔로몬 성전이 세워진 곳이다. 감람산 아래쪽에는 예수님이 잡히실 때 기도하던 겟세마네 동산이 있다. 그 감람산에 지금은 회교의 ‘바위의 돔(Dome of the Rock)’ 성전이 서 있다. 일부 성경학자들은 그 회교 성전이 무너진 후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믿고 있다. 예수님이 회교 성전 위로 재림하실 리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언젠가 그 성전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종말이 임박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경에 언급된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여러 힌트를 가지고 재림 장소와 모습과 시기 등을 자세히 알면 좋겠지만 사실상 그런 사실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사실 자체다. 지금 성도들은 예수님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초대 교회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의 얼굴을 본

교회 직분자의 자세

이미지
본문말씀 : 역대상 9장 17-26절 17.문지기는 살룸과 악굽과 달몬과 아히만과 그의 형제들이니 살룸은 그 우두머리라 18.이 사람들은 전에 왕의 문 동쪽 곧 레위 자손의 진영의 문지기이며 19.고라의 증손 에비아삽의 손자 고레의 아들 살룸과 그의 종족 형제 곧 고라의 자손이 수종 드는 일을 맡아 성막 문들을 지켰으니 그들의 조상들도 여호와의 진영을 맡고 출입문을 지켰으며 20.여호와께서 함께 하신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옛적에 그의 무리를 거느렸고 21.므셀레먀의 아들 스가랴는 회막 문지기가 되었더라 22.택함을 입어 문지기 된 자가 모두 이백열두 명이니 이는 그들의 마을에서 그들의 계보대로 계수된 자요 다윗과 선견자 사무엘이 전에 세워서 이 직분을 맡긴 자라 23.그들과 그들의 자손이 그 순차를 좇아 여호와의 성전 곧 성막 문을 지켰는데 24.이 문지기가 동, 서, 남, 북 사방에 섰고 25.그들의 마을에 있는 형제들은 이레마다 와서 그들과 함께 있으니 26.이는 문지기의 우두머리 된 레위 사람 넷이 중요한 직분을 맡아 하나님의 성전 모든 방과 곳간을 지켰음이라 < 건강한 믿음을 위한 기초 >  기독교선교연맹(C&MA)의 창시자인 심슨 목사는 예수님을 믿는 축복의 중요성을 확실히 각인시키려고 약 150년 전에 4중 복음을 내세웠다. 즉 예수님은 영혼을 구원해 영생을 주시는 ‘구원의 주’이고 구원 후에도 극적이고 점진적인 삶의 변화로 이끄시는 ‘성결의 주’이고, 성도에게 건강 및 병의 극복 능력도 넘치게 주시는 ‘신유의 주’이고, 성도의 소망대로 언젠가 다시 오셔서 천국을 회복시켜주실 ‘재림의 주’라고 했다. 그 4중 복음으로 믿음의 축복을 굳건히 각인시키면서 19세기 말에 미국의 신앙부흥 운동을 이끌었다.  20세기 초 C&MA 선교사 카우만이 일본에 세운 <동경성서학원>에서 C&MA의 4중 복음을 배운 몇 명의 한인들이 한국에 돌아와 4중 복음을 전파하며 한국에 뿌리내린 교

가장 의미있게 사는 길

이미지
본문말씀 : 사도행전 1장 1-3절 1.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 사도행전 개관 >  사도행전은 초대 교회의 확장 역사를 보여주는 책으로서 누가복음과 히브리서와 함께 가장 미려한 헬라어 문체로 기록된 신약성경의 3대 문서 중 하나다. 사도행전은 교회의 확장 과정을 기록하며 성령의 역사를 추적하기에 ‘성령행전’이란 별칭도 붙인다. 사도행전이라고 명명했지만 실제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사도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바울 네 명뿐이고 나머지 사도들의 기록은 없기 때문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구인가? 사도행전은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이라는 기록으로 시작된다. 그 기록에서 ‘내가’는 ‘누가’를 뜻하고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을 뜻한다. 사도행전에는 기록자가 누가라고 명시되지 않았지만 누가복음 1장 1-4절에 의하면 누가가 기록자란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사도행전의 기록자는 누가이고 수신자는 데오빌로다. 데오빌로는 ‘하나님의 사랑’이란 뜻인데 누가가 각하란 호칭을 쓴 것을 보면 복음에 관심이 많은 유력한 정치가로 추정된다.  사도행전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반부 1-12장은 베드로가 주역으로서 팔레스타인에서의 교회 성장을 다뤘고 후반부 13-28장은 바울이 주역으로서 사방으로의 교회 확장을 다뤘다. 책의 명칭이 사도행전이지만 사도행전에는 사도 중 베드로와 바울만 뚜렷이 나타나기에 전반부 1-12장은 베드로행전, 후반부 13-28장은 바울행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핵심 메시지는 약간 차이가 난다. 전반부의 핵심 메시지는 “회개하라.”는 것이고 후반부의 핵심 메시지는 “믿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누가가

교회적인 관점을 가지라

이미지
본문말씀 : 창세기 50장 19-21절 19.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 신앙적인 관점을 가지라 >  야곱이 죽자 요셉 형제들은 요셉이 자신들을 미워해서 과거에 자신들이 요셉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하며 사람을 보내어 요셉에게 자기들을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그들은 17년 전 화해할 때 이미 끝난 용서를 여전히 믿지 못했다. 그때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 말라고 하며 간곡히 그들을 위로하며 자기 고난을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으로 보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했다.  사람은 늘 통쾌하게 원수를 갚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서로 용서하고 사는 것에 있다. 다 부족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자신을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그 일은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또한 그렇게 해야 마음의 평안도 임하고 축복의 문도 열린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좋아하지만 원수라도 잘못되는 것을 너무 좋아하지 말라. 먼저 하나님의 아픈 심정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모든 사람들을 용서의 시각으로 보라. 가끔 누군가 자기 차를 받고 말없이 가버리면 욕이 나오고 화가 나지만 그 사람 욕하는데 너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라. 그를 찾을 수도 없고 내가 욕한다고 해서 그가 저주받는 것도 아니다. 나의 할 일은 그 일을 넉넉히 웃어넘기고 그를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용서는 쉽지 않지만 자기 행동과 하나님 앞에서 이제까지 했던 일을 깊이 성찰하

음지와 양지의 원리

이미지
본문말씀 : 창세기 50장 7-11절 7.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8.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9.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10.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11.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 야곱의 죽음과 장례 >  본문에는 야곱이 죽은 후 장례를 치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요셉은 사람을 시켜 바로에게 아버지의 유언대로 가나안 땅에 아버지를 장사하고 돌아오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하자 바로가 허락했다(4-6절). 그때 요셉이 직접 요청하지 않고 사람을 통해 요청한 것은 바로의 신임을 잃어서가 아니라 곡하는 기간에 수염을 깎지 않은 상태로 바로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애굽에서는 누구든지 왕 앞에 나아갈 때는 수염을 깎아야 했다.  바로의 허락 하에 요셉이 가나안 땅으로 올라갈 때 바로의 모든 신하, 바로 궁의 원로들, 애굽 땅의 모든 원로를 비롯해 요셉의 가족과 형제들 등 어린아이들과 가축 떼만 고센 땅에 남기고 병거와 기병까지 큰 무리가 요셉을 따라 올라갔다(7-9절).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해 칠 일 동안 애곡하자 가나안 사람들은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해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했다(10-11절). 그리고 마침내 막벨라 굴에 장사했다.  야곱의 장례는 애굽 왕 바로가 죽었을 때나 거행하는 국장 수준의 장례였다. 그 사실은 요셉이 얼마나 성공적인 삶을 살았는지를 잘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

이미지
본문말씀 : 창세기 49장 29-33절 29.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 있는 자리에서 힘쓰라 >  야곱은 단에 대한 임종 유언을 남기면서 후세에 있을 사악하고 비극적인 기운을 감지하고 주의 구원을 간절히 염원하는 기도를 드렸다. 임종 순간에 보여준 그의 모습은 변화된 후 기도가 체질화된 그의 삶을 잘 보여준다. 그처럼 기도를 앞세우며 살라. 기도할 때는 특별히 2가지를 기도하라.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 믿음을 달라는 기도와 그 어려운 환경을 만든 사람을 위한 기도다. 원수 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복을 빌어주라. 그 일은 정말 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하라.  예레미야 29장 7절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명령이 나온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을 생각하면 속상해도 바벨론을 보고 “나쁜 놈! 망할 놈! 죽일 놈!”이라고만 말하지 말고 바벨론을 위해 기도하고 그 자리에서도 최선을 다해 일하라는 말씀이다. 바벨론에서 일해도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있으면 결국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일할 때도 사람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때 점차 복된 위치로 올라선다. 요셉의 탁월한 점은 어디 가든지 있는 처소에서 최선을 다한 것이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축복을 예비하는 삶

이미지
본문말씀 : 창세기 48장 15-19절 12.요셉이 아버지의 무릎 사이에서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고 13.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 축복의 말을 많이 하라 >  1934년 미국 샬롯의 한 목장에서 한 그룹의 남녀가 교회 갱생을 위해 기도할 때 한 사람이 담대히 기도했다. “하나님! 우리 중에 누군가를 일으켜 세계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그 축복 기도대로 후일에 그 목장주 아들이 세계적인 복음 전파자가 되었다. 그가 빌리 그래함이다. 당시에 빌리는 믿음도 별로 없는 고등학생이었지만 하나님은 신실한 성도들의 기도를 기억해서 그 기도 처소를 제공한 목장주 아들을 세계적인 전도자로 삼아주신 것이다. 축복의 말과 축복 기도를 많이 하면 언젠가 말하고 기도한 대로 이뤄진다.  1936년 빌리는 밥 존

유다 지파처럼 헌신하라

이미지
본문말씀 : 창세기 49장 5-12절 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 분노를 다스리라 >  야곱은 임종 유언에서 시므온과 레위에게 책망의 말만 했다. 먼저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라고 했다(5절). 창세기 34장을 보면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 받으면 디나를 주겠다는 세겜과의 약속을 어기고 세겜 성의 모든 남자가 할례 받은 틈을 타서 그곳의 모든 남자들을 죽여 사사로이 원수를 갚았다. 그 모습이 야곱에게 매우 잘못된 태도로 여겨졌었기에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 사건을 떠올리며 두 아들을 책망한 것이다. 그래서 저주를 받아 나눠지고 흩어진다고 했다(7절).  하나님은 사람이 복수심을 품고 스스로 원수를 갚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억울하고 분할 때는 한 템포 늦춰 행동하고 한 번 더 참으라. “이번에 본때를 보여줘.”라고 하면서 미움과 분노와 혈기를 표출하면 하나님이 물러서시면서 자신이

축복에는 서열이 없다

이미지
본문말씀 : 창세기 48장 4-7절 4.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5.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7.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 번성의 축복을 추구하라 >  임종을 앞둔 야곱이 요셉에게 상기시킨 축복은 간단히 말하면 번성의 축복이었다. ‘물질의 축복’과 ‘번성의 축복’은 유사해보여도 아주 다르다. 물질의 축복은 재물이 많아지는 것이지만 번성의 축복은 자녀가 많아지는 것이다. 재물의 많아짐보다 자녀의 많아짐이 더 중요하다. 돈은 많은데 자녀가 없다면 불행한 일이다. 물론 육신적인 자녀만 자녀가 아니다. 육신적인 자녀가 없으면 나의 관심과 사랑과 헌신을 통해 영적인 자녀를 많이 만들면 된다.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고 섬기고 길러내려고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아끼지 말라.  돈을 잘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돈을 어떻게 버느냐?”를 통해서도 사람됨이 나타나지만 “돈을 어떻게 쓰느냐?”를 통해서도 사람됨이 잘 나타난다. 돈을 가지고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자녀를 많이 낳고 기르는 일이다. 죽을 때 많은 돈을 남겨 놓았지만 많은 자녀를 낳지 못했다면 그의 생애는 이렇게 한 마디로 압축될 것이다. “그는 돈을 다스리지 못하고 살다가 죽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인가?  재물을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는 일에 쓰라. 돈을 버는 참된 목적을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는 것에 두라. 돈을 좋은 도구로 사용하려는 꿈을 가지고 돈을 벌

멸망에서 건짐 받는 길

이미지
본문말씀 : 아모스 3장 12-15절 12.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13.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 14.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제단들을 벌하여 그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15.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멸망에서 건짐 받는 길 (아모스 3장 12-15절) 1. 말씀을 듣고 회개하라  아모스 당시에 이스라엘의 죄악상은 명백했다. 그때 그들은 심판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했다(13절). 사람은 잘 말하고 들으면서 점차 사람다움이 생긴다. 특히 말씀은 영혼 변화의 초석과도 같다. 말씀을 들으면 내면에 생기는 변화를 통해 외적인 능력과 열매도 나타난다. 더 나아가 자기를 변화시킨 말씀을 주변에 전하고 싶어진다. 자기 안에서 일어난 뚜렷한 변화를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배고플 때 음식을 먹듯이 영혼이 배고플 때는 말씀의 양식이 필요하다. 한 성현은 하루라도 독서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다. 더 나아가 하루라도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혼에 가시가 돋친다.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으라. 하나님의 뜻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말씀대로 살 때 알 수 있다. 말씀을 통해 영혼이 풍성해지고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고 귀신이 쫓겨나가고 중독에서 해방되고 이탈된 길에서 제 길을 찾는다.  하나님이 가끔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육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의 문제보다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의 문제가 더 중요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려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지 말라. 아무리 잘 살아도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먹지 못하면 영혼은 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