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18의 게시물 표시

주일성수에 감춰진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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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기독일보 오피니언 "예배에 성공하는 법" ] < 안식일의 참된 의미 > 이단은 정당하게 진리와 진실과 실력으로 승부하기보다 기존 교회를 공격하는 그럴듯한 논리를 주로 앞세워 기존 교인을 미혹한다. “왜 교회는 안식일 대신 주일을 지키는가? 왜 성경에 없는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는가? 왜 성령의 은사와 기적을 무시하는가?” 그런 주장들로 교묘하게 접근하고 미혹해서 사람들의 재산과 노동력을 짧은 시간에 털어먹고 자기 세력을 불린다.  어떤 이단은 수요예배에 대해서도 따진다. “성경 어디에 수요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이 있느냐?” 물론 성경에 수요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은 없다. 그래도 고난과 핍박이 심했고 지금처럼 다양하게 말씀을 접할 매체가 없었던 시절에 주중에 하루를 정해 예배를 드리면서 생긴 전통까지 잘못된 것처럼 공격하는 것은 그 의도가 선하지 않다. 그런 식으로 이단은 성경을 내세워 기존 교회를 공격하고 기존 성도들을 미혹할 때가 많다.  안식일 논쟁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 창조 시대의 안식일이 지금의 토요일이라는 증거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일주일의 하루를 안식일로 구별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토요일로 삼았고 기독교에서는 안식일을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인 주일로 삼았다. 결국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 신약 시대에 주일을 지키는 것은 본질적인 의미와 속성은 같다.  그런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외면하고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잘못되었고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자기들이 더 바른 진리의 길을 따른다고 하면서 기존 교인을 미혹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가? 그런 미혹에 넘어가지 말라.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알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안식일은 일주일의 한 날을 정해서 하나님을 정기적으로 예배하는 날로 삼는 것이다. 그 한 날을 교회에서는 신약 성경의 원리를 따라 주일을 안식하고 예배하는 날로 정한 것이다. 안식일의 중요한 가치

뜻이 고우면 길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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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NEOANIME "실뭉치" ] 찢긴 세상을 기워주려는 사랑의 실로 마음의 수를 놓으면 행복을 잃지 않는다. 하나님의 일은 돈이 아닌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뜻이 고우면 길도 열린다. 실천하는 사랑의 증인이 되면 꽃보다도 더 맑은 향내가 난다. 봄이 오면 꽃이 피기도 하지만 반대로 거룩한 한 송이 꽃이 피면 세상에 봄이 오는 역사가 나타난다. 늘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실천적인 삶으로 하나님을 증언하고 세상에 봄소식을 전하는 한 송이 꽃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True Hope 진정한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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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우리는 살면서 훨씬 더 심각한 실망들을 겪기도 합니다. 우리가 바라던 직장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믿었던 친구들이 우리를 실망시키며, 잘 되기를 바랐던 연인 관계도 깨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의 고통 가운데서 성경은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소망에 관한 신선한 진리를 말해줍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혹은 실망시키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 5:3-5).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앞에 어떤 장애물이 있든 상관없이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사랑 받고 또 언젠가 하나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진실을 속삭여주십니다. 자주 우리를 실망시키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참된 소망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어 얼마나 좋은지요. Sometimes life’s disappointments are much more severe. The job we hoped for doesn’t materialize; friends we counted on let us down; the romantic relationship we longed for fails to work out. But into these heartbreaks, God’s Word speaks a refreshing truth about our hope in Him. The apostle Paul wrote, “Suffering produces perseverance;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And hope does not put us to shame [or disappoint us], because God’s love has been poured out into our hearts through the Holy Spirit, who has

꿈과 비전이 있다면 현실적인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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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물댄동산교회 '소망' ]  화려한 꿈만 꾸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생각과 의식이 없지만 목적의식을 가지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생긴다. 꿈과 비전이 있다면 현실적인 책임감도 있어야 한다. 꿈은 화려한데 현실적인 책임감이 없어서 여전히 게으르고 여전히 잘못된 습관을 가지고 있다면 그 꿈과 비전은 허무한 공상일 뿐이다. 꿈과 비전에 합당한 ‘부끄러움이 없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자신도 자신을 신뢰하면서 인생의 두려움도 극복하게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패배에도 뜻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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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작은형제회 "성화이야기: 제이콥 엡스타인 -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  정치인이 선거에서 승리하면 승리의 기쁨과 여운이 잠깐은 간다. 그러나 승리 후에 공인으로서의 언행이 종종 도마에 올라 때 인심을 잃는다면 그것은 결코 행복한 모습이 아니다. 반대로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가 잠시 패배의 눈물을 흘렸다가 그 후에 유유자적하며 삶을 즐기고 자기를 돌아보면서 오랜만에 책도 보는 여유를 누리고 새로운 무엇을 연구하는 기회를 가진다면 그것이 인생 전체로는 패배가 아니다.  인생은 승리와 패배의 게임만이 아니다. 인생을 승리와 패배의 게임으로 보면 패배만 있다. 그때는 승리한 사람도 패자일 뿐이다. 그러나 인생을 하나님의 사명의 현장으로 생각하면 삶의 패배는 없다. 어려운 환경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현장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말라. 참된 승리와 패배는 하나님만 최종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역경도 두려워하지 말라. 신실한 성도에게 역경은 하나님의 선한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당시에는 가장 처절한 패배처럼 보였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의 전환점이 되었다. 십자가를 지고 땅으로 내려가는 길은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다. 예수님처럼 죽는 길이 사는 길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삶을 빼앗긴 패배가 아니라 삶을 완성한 승리였다. 성도의 거룩한 패배는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 되고 하나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을 이어주는 거룩한 접착제가 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남의 십자가를 요구하지 말고 내 십자가를 지려고 하라. 왜 삶을 힘겹게 느끼는가? 패배를 통해 더 나은 승리를 꿈꾸고 내려놓음을 통해 올려놓음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줄다리기를 할 때 지는 팀이 끌려가다가 더 이상 이길 수 없음을 알고 줄을 놓아버리면 이기던 팀은 땅바닥에 뒹굴고 지던 팀은 그 장면을 물끄러미 서서 바라보게 된다. 욕망의 줄을 놓지 않고 이겼다

죄의 길에서 돌아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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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Art and the Bible, Francisco Goya: The Repentant St. Peter ] 자연만물을 통해, 수많은 사고와 사건을 통해, 그리고 말씀을 통해 들려지는 회개의 메시지를 잘 받아들이라. 회개만큼 중요한 것은 거의 없다. 회개해야 새 힘을 얻고 다시 능력을 받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회개는 영혼을 겸손하게 만들고 기쁨을 회복시켜준다. 회개할 때 유쾌한 날이 이른다. 죄를 그냥 두면 길이 다 막히지만 회개하면 영혼과 가정과 그가 속한 공동체에 급속한 회복의 은혜가 주어진다.  베드로도 회개하고 수제자의 위치를 회복했고 사도 바울과 다윗도 회개하고 귀하게 쓰임 받았다. 죄를 그냥 두면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 삶을 쓰레기처럼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 죄다. 죄를 잘 처리해야 참된 성공의 길이 펼쳐진다. 늘 회개를 앞세우고 더 눈물로 기도하고 더 겸손해지라. 눈물의 기도를 통해 영혼과 가정과 교회에 생수가 내려진다. 그처럼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죄의 길에서 돌아서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불의한 현실을 보면 의분이 생긴다. 그때 바로 의를 위해 일어서야 할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조금 더 참으라고 하거나 목회자가 인내하는 삶에 관해 설교하면 괜히 김을 빼는 것 같아 속상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런 마음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일어서는 삶’이 있기 전에 먼저 있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회개하는 삶’이다.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일어서야 할 때도 있지만 앉아야 할 때도 있다. 전진해야 할 때도 있지만 후퇴해야 할 때도 있다. 때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우선순위를 아는 것이다.  의를 위해 일어서기 전에 자신을 의롭게 다듬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기에 회개는 어떤 것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죄인으로서가 아니라 의인으로서 일어서야 하나님께서 그 일어섬을 보증해주신다. 죄는 부끄럽게 만들고 환난을 부르고 삶을 무겁게 한다. 나중에는 그 무거운 짐 때문에 쓰러진다.

성숙을 위해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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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숙을 위해 필요한 것 >  성도에게 성숙이란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완전함’ 혹은 ‘온전함’이란 표현은 성숙함을 뜻한다. 목회자에게 좋은 교회와 좋은 교인과 좋은 사역이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가장 감사한 일은 성도가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목회의 핵심 목표도 교인을 예수님처럼 만드는 것이다. 성숙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1. 구원  예수님을 영접해야 죄 사함을 얻고 구원받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1-2절). 죄 사함을 통한 구원은 성장을 위한 기초 씨앗이다. 중생이 없다면 영적인 성장도 없다. 구원이 그처럼 중요한 것이지만 절대적인 것이나 전부는 아니다. 구원파는 구원을 거의 절대시한다. 그들이 가장 중시하는 질문은 “구원받았습니까? 구원을 확신합니까?”라는 질문이다. 구원을 확신하면 구원받은 날짜도 생일처럼 분명히 알아야 한다면서 “언제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묻는다. 그처럼 구원을 중시하지만 구원 이후의 성도다운 삶은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  구원파의 논리는 초대 교회 때 사도 요한이 가장 주의시켰던 영지주의와 속성이 유사하다. 영지주의는 영적인 지식을 통해 구원받으면 죄와 분리된다고 여겼다. 영지주의자에게는 2개 파가 있었다. 구원받으면 육신을 초월한 존재가 되어 죄를 지을 수 없는 완전인이 된다는 ‘완전파’와 구원받으면 죄가 육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초월인이 된다는 ‘초월파’다. 그들 모두 구원 이후의 성도다운 삶을 경시했기에 윤리성과 도덕성이 약했다.  한때 구원파가 ‘구원의 확신’을 내세워 스스로를 1등 신자인양 여기며 극성스럽게 전도했기에 그 영향을 받아 구원파가 아닌 교인 중에도 “기독교는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다. 구원에 대한 강조가 없는 설교는 윤리적인 설교다.”라고 말하며 마치 기독교가 도덕, 윤리, 상식을 경시해도 되는 줄 아는 경우가 꽤 많다. 구원이 전부인 것처럼 기독교를 잘못 알면 구원파가 나오고 사회적인 책임성과 윤리성과 도덕성도 떨어지면서 성숙한 성도의 모습을

It's In the Attitude 태도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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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itude. Perspective. As the saying goes, “Life is 10 percent what happens to us and 90 percent how we react to it.” The people James wrote to were scattered because of persecution, and he asked them to consider their perspective about difficulties. He challenged them with these words: “Consider it pure joy . . . whenever you face trials of many kinds”(James 1:2). We are each on our own journey of learning to trust God with hard circumstances. The kind of joy-filled perspective James talked about comes as we learn to see that God can use struggles to produce maturity in our faith. [Anne Cetas]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인생의 10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90퍼센트는 우리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라는 격언처럼, 그것은 태도와 관점에 관한 문제입니다. 야고보는 박해를 받아 흩어진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 어려움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를 생각해보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 1:2)라는 말로 도전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각자가 처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 있습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기쁨으로 가득 찬 안목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이 성숙하도록 어려움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될 때 찾아옵니다. [ OurDailyBread 20

책임지는 범위를 넓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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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람의 손길이 없이 세상을 창조했지만 사람의 손길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즐겨하신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깊은 만남을 사회를 변화시키고 역사를 새롭게 하는 삶으로 승화시키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일꾼을 먹고살게 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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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세계의 십자가 상징 모음" ] 곡식을 타작할 때 인정 없는 주인은 소가 곡식 단을 먹지 못하도록 입에 망을 씌웠는데 그렇게 인정 없게 굴지 말고 소도 일하면서 곡식 단을 먹도록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했다(4절). 짐승이라도 그 수고한 대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이다.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암시다. 예수님이 전도자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다(마 10:10)고 한 것이나 사도 바울이 교회 사역자들이 교회로부터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전 9:9-14; 딤전 5:18)고 한 것도 본문의 원리에 근거했다.  왜 이런 말씀이 있게 되었는가? 당시에 몇몇 교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은혜로 하는 것이지 무슨 사례가 필요한가? 사역자는 배가 고파야 더 기도하게 되고 더 영성이 깊어져!”라고 하면서 풀타임(full time)으로 일하는 사역자의 필요에  무관심했다. 그런 태도는 리더를 존경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목회자를 존경하면 목회자의 필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리더에게 정당한 대가를 기쁘게 드리는 것은 리더는 진심으로 존경하는 표시 중의 하나다.  기본적으로 일한 만큼 먹고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라. 일만 시키지 말라. 일도 시키고 누리게 해주면서 일꾼을 정당하게 대우해주라. 최소한 일하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해주라. 더 나아가 기업가는 일꾼에게 정당한 것 이상의 대우를 해줌으로 행복을 선사하는 꿈과 비전을 가지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말씀 구절이나 명령을 율법적으로 꼼꼼하게 잘 지키는 것을 의미하기보다 누군가에게 대우 이상의 대접을 해주는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분임을 그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어떻게 오늘을 어제와는 다른 새 날로 만들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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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네이버블로그 "사이버 사랑행복나눔 캠페인]  어떻게 오늘을 어제와는 다른 새 날로 만들 수 있는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10-11절). 하나님을 찬송할 때 하나님은 대적을 물리쳐주시고 그의 앞날을 거칠 것이 없게 만들어주신다(13절). 하나님은 한없이 부드럽고 자애로운 분이지만 때로는 강력한 권능으로 대적을 쳐서 멸하신다. 사람은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지만 하나님은 약자에게는 부드럽게 나타나시고 강자에게는 강하게 나타나신다. 그처럼 은혜로우신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넘치게 드림으로 내적인 마음이 변화되면 외적인 환경도 변화된다.  찬송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최대 원천이지만 왜 그런 능력이 잘 나타나지 않는가? 찬송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찬송은 ‘찬송가를 많이 부르는 것’이나 ‘찬양 예배를 역동적으로 잘 드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찬양예배 때 역동적으로 일어서서 찬양하고 소리 높여 찬양하고 손을 들고 찬양하면서 열심히 찬양 예배에 참석하지만 주일성수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거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삶이 부족하다면 찬송이 환경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찬양 예배 때 역동적인 모습으로 찬양하는 삶은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의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희생과 헌신이 수반되지 않는 찬양은 사실상 복된 찬양이 아니다. 학생이나 청년이 교회 찬양 예배 때 역동적으로 찬양을 해도 교회를 위해 청소하거나 다른 음지의 봉사를 해보지 않는다면 그 신앙은 신실하고 헌신적인 신앙으로 자라지 못하고 오래 가지도 않고 복된 신앙도 아니다. 교회에서 청소하고 어르신들을 위한 식탁 봉사를 하기도 하면서 자신을 드리는 삶으로 나타난 찬송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능력 있는 찬송이다.  성경은 찬송과 관련해서 ‘찬미의 제사’라는 표현을 쓰고 감사와 관련해서 ‘감사의 제사’라는 표현을 쓴다. 제사는 제물을 드리는 것을 뜻하고 최고의 제사는 자기를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자기를 드리는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삶이 수반된 찬송이

믿음의 능력을 보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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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은 애굽, 앗수르, 바벨론, 바사 등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마치 버러지 같은 비참한 모습이 될 때가 많았다. 그때 하나님은 버러지 같은 약한 이스라엘이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계처럼 되어 문제와 대적의 산을 능히 물리치게 하시겠다고 약속했다(15절). 또한 대적이 껍데기처럼 날아가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에게 즐겁고 자랑스러운 승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했다(16절). 하나님은 산과 같은 문제도 평지로 만들 수 있다.   살다보면 여러 가지 인생의 산을 만난다. 자녀 문제, 재정 문제, 성격 문제, 인간관계 문제 등의 산을 만나면 많은 성도들이 기도한다. “하나님! 이 산을 없애주세요. 자녀가 잘 되게 해주세요. 재정적인 문제가 풀리게 해주세요.” 그런 기도가 잘못된 기도는 아니지만 문제의 산이 너무 클 때는 그저 기도하는 것이나 믿음으로 생각하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산과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는 그 산에게 믿음으로 소리치고 명령할 필요도 있다.  마가복음 11장 23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했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산에게 믿음으로 명령하듯이 외치라고 하셨다. 큰 문제 앞에서 기도만 하지 말고 때로는 믿음으로 외치고 더 나아가 믿음으로 명령하라. 마음에 두려움이 임할 때도 두려움을 없애달라고 기도만 하지 말고 때로는 믿음으로 외치라. “두려움아! 물러가라! 내 삶에 네가 있을 여지는 없다.”  가끔 보면 남이 외치는 명령 기도를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면서 입술로는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소리치지만 내면에는 두려움과 불신이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의 명령 기도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오히려 사탄이 내면의 불안과 불신을 감지하고 우습게 알면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너나 물러가라.” 또한 기도할 때마다 매번 “사탄아! 물러가라!”라고 하는 것도 사탄에게 우습게 보이기 쉽다. 그것은 이전에 했던 명령 기도가 아

The Power of Prayer 기도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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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직면한 어려움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상황이 바뀌지 않을 것 같아 두려울 때, 우리는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의 유혹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의 힘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주님이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간구에 어떻게 응답하실지 모르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품고 그분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오늘 당신이 기도해주어야 할 누군가가 있습니까? When we ache over the challenges facing those we love, and fear the situation won’t change, we may be tempted to believe that the Lord will not act. But we should never underestimate the power of prayer, for our loving God hears our pleas. We don’t know how He will move in response to our petitions, but we know that as our Father He longs for us to embrace His love and to trust in His faithfulness. Do you have someone you can pray for today? [Amy Boucher Pye] [ OurDailyBread 2018016 "The Power of Prayer" ]

Knowing and Loving 알고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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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 knows us and He loves us! We can trust Jesus’s purposes for us and rest in the promise of His care because His Father “knows what [we] need before [we] ask him”(Matthew 6:8). As you deal with the ups and downs of life today, be at rest. You are known and loved by the Shepherd of your heart. [Bill Crowder] 주님이 우리를 알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기”(마 6:8)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뜻을 신뢰할 수 있고 돌보아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 가운데서 안식할 수 있습니다. 오늘 삶에서 많은 부침을 겪고 있겠지만 그 가운데에서 안식하십시오. 당신 마음의 목자께서 당신을 알고 사랑하고 계십니다. [ OurDailyBread 20180114 "Knowing and Loving" ]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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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Godtube "Nearer My God to Thee" ] 1. 하나님 앞에서 잠잠한 삶  하나님이 베푸신 모든 섭리와 조치에 잠잠히 감사하며 따르라(1절). 인생의 중요한 선택 문제를 가지고 스스로 선택하지 못하고 선택을 물으려고 찾아오면 속 시원한 대답을 들려주지 못할 때도 많다. 그때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다. 그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침묵이다. 기도의 가장 중요한 내용 중의 하나도 침묵이다. 힘든 정신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침묵 중에 들려지는 하늘의 음성이다. 하나님 앞에서 침묵할 줄 알아야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다.  진리의 길은 갈등이 불가피한 길이다. 세상 질서와 기득권이 진리를 위협하고 생명력을 상실한 기존 체계가 생명을 억압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진리의 길을 잘 걸으려면 하나님 안에서 침묵하며 자신의 길과 소명을 수시로 다듬어야 한다. 침묵은 영적인 전쟁과 정신적인 투쟁에서 꼭 필요한 무기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말을 절제하는 시간’으로 삼고 힘써 실천하다보면 어느새 영적인 키와 정신적인 키가 부쩍 자라 있음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2. 용기와 감사가 넘치는 삶  가끔 힘든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말라(1절). 성도의 시련은 저주의 증거가 아닌 축복의 증거다. 그때 용기를 잃지 않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하나님이 그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주신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도 다 시련과 약점과 열등감이 있었다. 예레미야도 열등감이 심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 뒤의 작고 가난한 동네인 아나돗 출신이었고 말을 아이처럼 못했지만 멋지게 쓰임을 받았다. 열등감이 있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러나 열등감에 매여 자신의 놀라운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은 죄다.  어떤 분은 어렵게 살아도 입에 늘 “이만큼 사는 것도 감사해요.”라는 말이 붙어 있으니까 낙심도 없고 좌절도 없고 가정이 늘 평안하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넘치는 복을 주시기에 성공적인 삶을 원하면 범사에 감사하라. 사실 구원의

여호와를 앙망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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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카티커 CARTICKER ] 1. 더 하나님을 알려는 삶  가끔 어려운 일을 당하면 본문 27절 말씀처럼 탄식할 때가 있다. “하나님! 왜 제 길을 외면하시고 저의 원통한 송사를 들어주지 않습니까?” 그런 답답한 탄식을 하기 전에 자신의 예배생활과 기도생활과 교회생활을 먼저 성찰해보라. 그런 탄식에 대해 하나님도 답답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본문 28절 말씀처럼 “너는 아직도 모르느냐? 아직도 못 들었느냐?”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을 확실히 알라는 말씀이다.  지식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knowing about God)’과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knowing God)’은 다르다.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알지 말고 인격적으로 알라. 미국의 한 자살자의 자동차 번호판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Jesus is the answer(예수님이 해답이다).” 그런 지식적인 믿음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다. 그런 만남이 이뤄질 때 역전 인생이 펼쳐진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면 삶은 달라지고 축복의 지경도 넓혀진다. 매일 하나님을 붙잡고 큰 은혜와 축복을 달라고 기도하라. 축복을 원하는 것은 이기적인 기복주의가 아니다. 축복만 원하는 것이 이기적인 기복주의다. 많이 축복받고 많이 헌신하면 된다.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알고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라. 2. 다 하나님께 맡기는 삶  창조주 하나님은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창조물을 하나도 빠짐없이 돌보신다(28절).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는 얼마나 더욱 잘 돌봐주시겠는가? 또한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해주신다(29절). 고통과 아픔 중에 있으면 더욱 가까이 찾아와주신다. 자녀가 울면 부모가 즉시 달려오듯이 성도가 눈물로 기도하면 하나님도 즉시 달려오신다. 인간의 위기는 늘 하나님의 기회가 되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말라.  이 세상에 인생을 자신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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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OurDailyBread 20180110 "Growing a Servant's Heart" ]  미국의 한 성도는 주일에 교회에 오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예배 때 허그를 받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그녀가 유일하게 사람의 따뜻함을 느끼는 때였다. 일반인이 수시로 받는 사랑을 어떤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올 때만 받을 수 있다. 주일에 받는 교우의 칭찬과 격려가 어떤 사람에게는 그 주간에 유일하게 받는 칭찬과 격려일 수 있다. 내 옆에 있게 된 사람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그가 우연히 내 옆에 있게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도록 그를 내 옆에 두셨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가 저보다 나아요. 늘 웃으면서 외향적으로 잘 지내지 않나요?” 그러나 웃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과 고독을 감추려고 웃을 때도 많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통로다. 자기 목소리와 미소와 허그에 치유의 능력이 있다고 믿고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라. 하나님은 성도의 손 외에 따뜻한 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성도의 팔 외에 사랑할 팔을 가지고 있지 않고 성도의 목소리 외에 위로할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의 사랑과 격려가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때에 자신의 사랑과 격려를 사용해서 누군가를 위로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은 내 미소, 목소리, 칭찬, 격려 등을 통해 누군가의 영혼을 다시 일어서게 만드신다. 그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전함으로 누군가를 일으켜주는 사람은 어느 누구보다 위대한 사람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희망을 잃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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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Sharefaith Magazine "Jesus Hope for Mankind" ] 헤롯의 길은 곧 저문다. 반면에 예수님의 길은 오래 그 선한 영향력이 남는다. 영혼의 나무에 예수님의 삶과 정신의 싹이 돋아나게 하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했던 시간들, 간절히 기도했던 시간들,  최선을 다해 헌신했던 손길들, 믿음으로 내딛었던 발걸음들이 다 하늘나라에 차곡차곡 저축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늘 기도하라. “하나님! 어떤 경우에도 기쁨과 감사와 희망을 잃지 않게 하소서.”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감사를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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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를 깨달으라  히스기야는 자신의 고통이 평안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17절). 참된 감사는 고난과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생긴다. 어떤 사람은 삶을 불행하게만 생각한다. 그러나 감사를 깨달으면 불행도 행복의 전주곡이 된다. 고통을 피하려고만 하면 오히려 더 크게 다가올 때가 많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당당히 직면해야 상처와 후유증이 작고 얻는 유익도 많다. 결국 고통의 뚜껑이 열리면 고통 안엔 진실도 숨어 있고 자유도 숨어 있고 지혜도 숨어 있음을 깨닫는다.  영어에서 ‘감사한다’는 ‘thank’는 ‘생각한다’는 ‘think’와 어원이 같다. 깊이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된 것만 가지고도 늘 감사해야 한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이 있고 지낼 거처가 있는 것도 감사하고 두 눈이 정상인 것도 감사하라. 또한 현재의 모습이 부족해도 그 모습 그대로가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말고 자신의 현재 모습이 하나님이 허락한 최선의 모습임을 깨닫고 감사하라. 약점이 있다면 그 약점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은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이다. 더 나아가 약함을 통해 일하심으로 하나님의 강한 능력을 보여주신다.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큰 문제도 겪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안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믿고 감사하라. 그러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품꾼을 학대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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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위키백과 "장프랑수아 밀레" ] 곤경과 가난에 처한 품꾼에게 2가지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학대하며 일을 시키는 것’이고(14절), 또 하나는 ‘품삯을 미루는 것’입니다(15절). 품꾼이 그날 품삯을 못 받으면 당장 생계에 지장이 있기에 품삯을 간절히 바라는데 돈이 없다거나 일을 못했다는 이유로 품삯을 미루고 안 준다면 얼마나 서글퍼지겠습니까?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께 호소하게 되면 죄가 되기에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고용주는 고용인의 마음을 헤아려 일을 시키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며 반대로 고용인은 고용주를 위해 성심성의껏 일을 해주어야 합니다. 고용주는 임금을 주는 것은 가장 우선적인 가치로 여겨야 합니다. 줄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고용인이 자유롭게 다른 일을 하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일을 시키고 정당하지 않게 노임을 주지 않거나 맘대로 깎는 것을 인권 침해와 부당 이득 편취와 도둑질의 죄로 보셨습니다.  돈을 축적하고 힘을 키워 큰일을 하겠다고 하지 마십시오. 없는 상황에서도 행하는 거룩한 작은 일이 사실상 큰일입니다. 특히 품꾼을 학대하고 품삯을 주지 않으면서 돈을 축적하고 힘을 키우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축적한 돈과 힘으로 큰일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공의의 토대 위에서 얻는 돈과 힘을 가지고 작은 일이라도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작은 힘과 적은 돈을 가지고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기쁘게 사용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더해져서 큰일이 이뤄집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남을 감싸 안을 때 지혜롭고 적절하게 감싸 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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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크리스천투데이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에 관한 성구 14가지" ] 남을 감싸 안을 때 지혜롭고 적절하게 감싸 안아야 영혼이 짓눌리거나 으깨어지지 않습니다. 적절한 거리를 두며 마음으로 함께 해줄 때 따뜻함과 안정감과 편안함이 넘치면서 어둔 세상에서 빛으로 나아갈 힘과 기운도 얻습니다. 약자와 적절한 거리를 두고 진심으로 살펴주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위치의 거리보다 마음의 거리가 더 가까워야 합니다. 몸과 몸이 너무 붙어있으면 편안함보다 불편함이 커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여백을 두고 그 여백에 약자를 기쁘게 맞이해 들이는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What Do the Experts Say? 전문가들은 무엇이라 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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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another new year gets underway, we’ll hear predictions ranging from the terrifying to the wildly optimistic. Many of them will be stated with a great deal of confidence and authority. Don’t be alarmed. Our confidence remains in the One at the very heart of the Scriptures. He has a firm grip on us and on our future. [Tim Gustafson] 또 다시 새해가 시작되면서 우리는 비관적인 것으로부터 극도로 낙관적인 전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예측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중 많은 예측이 상당한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언급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에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우리는 성경말씀의 핵심이신 그분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우리의 미래를 단단히 붙잡고 계십니다. [ Our Daily Bread 20180104 "What Do the Experts Say?" ]

Bobby Sherman -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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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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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국민일보 겨자씨 "감사표현" ]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사람을 많이 가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인간관계의 포인트는 정직과 감사이다.” - 다케우치 히토시

I'vd found a friend in Jes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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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존재목적을 이루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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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위키피디아 생각하는사람] < 자기 존재목적을 이루십시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어 가십시오. 하나님의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 충성하면서 보답을 바라지 말고 충성한 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또한 어떤 고난이 있어도 무조건 찬송하십시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게 하셔도 찬송하고 자신을 잡아 잡수셔도 찬송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보상을 바라거나 권리 주장을 하지 마십시오.  또한 하나님은 찬송하라고 주신 입술로 원망하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늘 달라는 기도만 하지도 마십시오. 그것은 역효과입니다. 문제해결을 위해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기도하고 극심한 고난 중에도 찬송과 감사를 잃지 않으면 하나님을 위해 큰일은 못해도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거의 달성하는 셈입니다. 그때 오히려 기도응답과 문제해결이 가장 멋지고 신속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며 봉사할 때도 복이나 보상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진짜 충성입니다. 아무리 충성해도 충성의 최종 목적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복된 충성이 아닙니다. 계산적인 목적과 의도가 없는 충성이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보상을 목적으로 충성하고 봉사하면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어긋난 삶이 되면서 불평과 원망이 수시로 생기지만 보상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순수하게 봉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넘치는 보상도 허락하실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배반이 많지만 천국의 상급 문제에서는 결코 배반을 당하지 않습니다. 은혜란 공짜심리를 부추기는 것이 아닙니다.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섬기면 섬김을 받고 남에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면 하나님께서 내게 손을 내밀어 잡아주십니다. 복된 인생을 원하면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사람 관계에서도 승리하십시오.

Pressing On 계속 나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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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 I walked past an outside wall of the office building where I work, I was amazed to see a beautiful flower growing up through a crack between concrete slabs covering the ground. Despite its deprived circumstance, the plant had found a foothold, rooted itself in the dry crevice, and was flourishing. Later, I noticed that an air-conditioning unit located directly above the plant dropped water on it throughout the day. While its surroundings were hostile, the plant received the help it needed from the water above. Growing in the Christian life can sometimes be difficult, but when we persevere with Christ, barriers are surmountable. Our circumstances may be unfavorable and discouragement may seem like an obstacle. Yet if we press on in our relationship with the Lord, we can flourish like that lone plant. This was the experience of the apostle Paul. Despite the severe hardships and challenges he faced(2 Corinthians 11:23–27), he wouldn’t give up. “I . . . take hold of that for wh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