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22의 게시물 표시

주님의 시인을 받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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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거 쾨더 : 성령을 받아라 ] 본문말씀 : 마태복음 10장 26-33절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 하나님을 주목하고 시인하라 >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다. 진실하게 믿으면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병도 낫게 하신다. 그러나 병이 낫는 것 이상의 기적이 마음의 병과 인격 장애가 치유되고 변화되는 것이다. 사람의 변화는 쉽지 않다. 내 힘만으로는 사소한 악습도 잘 끊지 못한다. 남을 변화시키려고 너무 안달하지 말라. 나도 나를 쉽게 바꾸지 못하면서 어떻게 남을 쉽게 바꾸겠는가? 그러나 진실로 예수님을 잘 믿으면 선한 변화가 일어난다.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지만 사실상 기독교 믿음의 본질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대부분의 종교는 기적을 믿음의 핵심 근거로 삼는다. 강신무당도 기적을 내세운다. 그러나 기독교는 믿음의 근거를 기적이 아닌 계시에 두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라는 지식에 둔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믿는다’라는 사실보다 ‘하나님’에 더 강조를 둔다. “얼마나 열심히 믿느냐?”보다 “얼마나 바르게 믿느냐?”가 중요하다.  성경에 나오는 치유의 기적은 누가 주셨는가? 하나님이다. 병자가 나았

축하를 선택하기 Choosing Celeb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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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잠언 14:30] A heart at peace gives life to the body, but envy rots the bones. [ PROVERBS 14:30 ] ... “질투의 반대는 축하”라는 그 통찰은 긴 여운을 내게 남기면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자유롭고, 다른 사람들을 깊이 진실로 기뻐하는 그런 삶을 사는 듯한 내 친구들을 떠올려주었습니다. 질투는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의 연약함과 상처, 두려움을 먹고 자라며, 우리가 조금만 더 이러저러하다면 힘들거나 낙담하지 않을 거라고 계속 속삭입니다. 베드로가 베드로전서 2장에서 새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일깨운 것처럼, 질투심이 우리에게 하는 거짓말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진리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는 것”, 곧 깊이 체험하는 것입니다(1-3 절). 우리 기쁨의 진정한 원천이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1:23) 임을 알 때, 우리는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1:22)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사랑받는 “택하신 족속이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비교하는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도록”(2:9)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 Loving God, source of all that’s good, help me to let go of envy’s lies, the kind of lies that suck out joy and “rot the bones.” Help me to instead celebrate the countless beautiful gifts of life in Your kingdom. 모든 선한 것들의 원천이신 사랑의 하나님, 질투가 주는 거짓말들, 곧 기쁨을 메마르게 하고 “뼈를 썩게 만드는” 거짓말들을 버리고, 대신 하나님 나라의 수많은 삶의 아름다

대자연의 경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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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iNDICA - 쉽싸리 ] 대자연의 경이로움 언제나 우리를 품에 안고 지켜주는 자연을 보면 놀라움과 경이로움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밤하늘을 밝히는 별, 바람 따라 소리 없이 움직이는 구름, 겨울바람에 소리를 내는 숲의 나무들, 봄이면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 자연에는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손길 같은 경이로움이 있습니다. 자연은 조금의 가식도 없고 그 어떤 불평도 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손길은 온 세상을 하나로 만든다.’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말입니다. [ CBS 1분 묵상 20220228 ]  

복음의 기쁨 The Joy Of Good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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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 61:1] The Lord has anointed me to proclaim good news. [ ISAIAH 61:1] ... 이사야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61:1)라고 했을 때 이를 들었던 이스라엘 민족도 같은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황폐한 땅을 보며 무너진 삶과 암울한 미래로 모든 것을 다 상실한 것 같았던 바로 그 순간에 이사야는 또렷한 목소리로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1, 4절) 것을 계획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공포 한가운데에서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 곧 하나님이 주시는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바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복음’이라는 말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공포나 고통, 실패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시며, 그럴 때 우리의 괴로움은 기쁨으로 바뀌게 됩니다. ... God, I need some good news. I hear bad news all the time. I need to hear what You say about things. I need the joy You bring. 하나님, 저에게 기쁜 소식이 필요합니다. 항상 나쁜 소식을 듣지만, 하나님께서 세상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저에게 필요합니다. [오늘의 양식  "복음의 기쁨 The Joy Of Good News"  중]

기분 좋은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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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 iNDICA - 초령목 꽃 ] 기분 좋은 시간을 여러분은 하루 중에 얼마나 기분 좋은 시간을 가지고 계십니까. ‘만일 여러분이 기분 좋게 살려면 기분이 좋다고 말해야하고 행복을 원하신다면 행복하다고 말을 해야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2002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린스턴 대학의 다니엘 카네만의 말입니다. 그의 말은 극히 단정적이고 누구든지 그것을 지키기만 하면 누구나 행복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루 중에 기분 좋은 시간이 길면 행복한 것이고 기분 좋은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불행하다’ 얼른 생각해도 기분 좋은 이 말 오늘 한번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 CBS 1분 묵상 20220227 ]

사랑으로부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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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거 쾨더 : 착한 목자 ] 본문말씀 : 출애굽기 23장 6-9절 6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7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9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 율법의 바탕은 사랑이다 >  구약의 율법이 겉으로는 엄중한 정의감이 바탕을 이루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랑이 바탕을 이루고 있다. 율법의 핵심 정신 중 하나가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참된 정의가 아니고 사랑이 없는 율법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본문에는 재판관이 어떻게 정의롭게 판단해야 할지에 관한 율법이 나오는데 이 율법의 근간을 이루는 바탕도 사랑이다. 구체적으로 재판관에게 어떤 태도가 필요한가?  첫째, 매사에 공정해야 한다(6절). 가난한 자를 부당하게 대우해도 안 되지만 과도하게 보호해도 안 된다. 만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재판관은 바르게 판단해서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의인과 악인을 분별해서 무죄하고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아야 한다(7절). 그처럼 재판관은 진실과 지적인 능력을 겸비해야 한다.  둘째,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8절). 재판관은 뇌물의 유혹에 노출되기 쉽다. 그 유혹을 이기고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바른 지적인 능력을 가지며 유혹을 힘써 물리치려고 해야 한다. 그처럼 지정의를 겸비한 바른 인격을 갖춘 사람만이 좋은 재판관이 될 수 있다.  셋째, 이방인을 압제하지 말아야 한다(9절). 나쁜 재판관들은 이방인들을 부당하게 취급할 가능성이 많다. 그런 폐쇄적인 국수주의를 배격하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고 사랑해야 한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한마디로 보복의 율법으로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 것이 그 기본을 이룬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구약 시대의 율법이 추상같은

가족의 일원 Part Of The Fam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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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에베소서 2:19] You are no longer foreigners and strangers, but fellow citizens with God’s people and also members of his household. [ EPHESIANS 2:19 ] ...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은 엄청난 권리와 특권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에베소서 3:12) 수 있으며, 방해받지 않고 무제한으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큰 가족, 곧 우리를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믿음의 공동체의 일부가 됩니다 (2:19-22). 하나님의 가족 구성원들은 아낌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을 붙잡을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특권을 지니고 있습니다(3:18). 두려움이나 의심은 우리로 하여금 쉽게 외인처럼 느끼게 하고,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어 누릴 수 있는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풍성한 사랑의 선물(2:8–10)에 대해 다시 듣고 받아들여,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그 경이로움을 즐겨 누리십시오. ... Heavenly Father, thank You for welcoming me into Your family and giving me all the rights and privileges that come with being a child of God. 하나님 아버지, 저를 하나님 가족으로 즐거이 받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에 따르는 모든 권리와 특권까지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의 양식  "가족의 일원 Part Of The Family"  중]

100도가 되어야 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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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 iNDICA - 복수초 ] 100도가 되어야 끓는다 물은 100도가 되어야 비로소 끓고, 그동안의 존재방식이던 액체상태로부터 기체상태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네. 손으로 만졌을 때 아무리 뜨겁더라도 물은 90도에서 끓지 않습니다. 어떤 물은 마이너스에서 시작할 수도, 어떤 물은 35도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관계없습니다. 그 어떤 물이든 100도에 이르러야 합니다. 모든류의 영감이 그러합니다. 물이 100도에 이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쌓여 임계점을 넘는 순간 꽃 피우는 그것이 영감입니다. 거기까지 인내해야만 합니다. [ CBS 1분 묵상 20220226 ]  

하나님이 받으시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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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바조 : 이삭의 희생 ] 본문말씀 : 출애굽기 23장 18-19절 18 너는 네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며 내 절기 제물의 기름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지니라 19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1. 깨끗한 마음  하나님의 유월절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라고 하셨다(18절). ‘제물의 피’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뜻하고 구속사적으로는 예수님의 보혈을 뜻한다. 왜 그 제물의 피를 유교병(누룩 있는 떡)과 함께 드리지 말라고 했는가? 성경에서 누룩은 종종 죄악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율법은 거룩한 것과 부정한 것을 함께 드리지 말라는 뜻이다.  때로는 유교병이 허락되기도 했지만(레 7:13; 23:17), 보통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무교병을 사용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죄악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마음을 받으신다는 뜻이다. 깨끗한 마음은 빈 마음과 상통한다. 산더미 같은 기도제목에 파묻혀 하나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면 그 기도는 응답되기 힘들다. 하나님이 자녀의 기도를 통해 가장 받기 원하시는 것은 깨끗한 마음이다. 2. 경외하는 마음  어린양을 구워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때 그것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은 아침까지 남겨두지 않고 소각시켰다(18절). 그렇게 소각한 것은 성물이 소홀히 취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요새 교회에서 성찬에 쓰고 남은 떡과 포도주를 사람들 손에 닿지 않는 땅에 파묻는 것도 성물이 소홀히 취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뜻이다. 그처럼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바로 경외하는 마음이다.  무서워하는 두려움은 없어야 하지만 깊은 존경심에서 나오는 두려움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갈 줄도 알아야 하지만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설 줄도 알아야 한다. “달라!”는 주문이 넘치는 기도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표식이고 순종과 감사가 넘치는 기도는 하나님을

문을 피하라 Avoid The 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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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 [잠언 5:8] Keep to a path far from her, do not go near the door of her house. [ PROVERBS 5:8 ] ... 문은 우리를 멋진 곳이나 아니면 위험한 곳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성적인 유혹을 피하라는 잠언 5장의 솔로몬의 충고에서 문이 두드러지게 눈에 띕니다. 그는 성적인 죄는 매혹적이지만 그것을 추구하면 곤경에 처한다고 말합니다 (5:3-6). 그 문을 지나 들어가면 거기에 갇혀 명예는 사라지고 낯선 사람들이 부를 빼앗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 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7-11절). 솔로몬은 대신 자신의 배우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누리라고 충고합니다 (15-20절). 그의 충고는 여러 다른 죄에도 폭넓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21-23 절). 그것이 과식이나 과소비, 혹은 어떤 다른 유혹이든, 하나님은 우리가 덫에 갇히게 되는 문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겨울잠쥐는 집주인이 정원에 있는 새 모이통에서 그를 발견하고 풀어주었을 때 틀림없이 행복했을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손도 우리가 갇혔을 때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먼저 덫에 가두는 문을 피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 Almighty God, help me avoid the door that leads to entrapment. 전능하신 하나님, 덫에 가두는 문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오늘의 양식  "문을 피하라 Avoid The Door"  중]

스탠리 볼드윈의 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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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 iNDICA - 변산바람꽃 ] 스탠리 볼드윈의 목표 사람이 뜻을 세워 무슨 일을 도모코자 할 때 나이 때문에 망설이지는 맙시다. 42세의 늦은 나이에 정치를 시작해서 57세에 영국 수상을 세 번이나 역임한 스탠리 볼드윈을 생각해봅시다. 볼드윈 철강회사의 부사장이었던 그가 하원의원에 출마했을 때 그의 친구가 말렸습니다. 그러나 스탠리 볼드윈은 말했습니다. “내가 정계에 나가는 것은 나의 출세 때문이 아닐세. 경제 위기에 빠진 나라와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어서야” 정치에 대한 그의 확고한 목표는 결국 위기에 직면한 영국을 재건하는 초석이 되었음을 기억합시다. [ CBS 1분 묵상 20250225 ]

생각 없이 바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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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렘브란트 : 엠마오의 저녁식사 ] 본문말씀 : 출애굽기 23장 10-12절 10 너는 여섯 해 동안은 너의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11 일곱째 해에는 갈지 말고 묵혀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네 포도원과 감람원도 그리할지니라 12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라 네 소와 나귀가 쉴 것이며 네 여종의 자식과 나그네가 숨을 돌리리라 < 남을 배려하며 함께 살라 >  왜 하나님은 안식년 율법을 주셨는가? 한 해 동안 경작을 쉬면서 육체적인 일을 멈추고 영적인 일에 힘쓰라는 뜻도 있지만(신 31:10-13), 사실상 땅을 배려하는 의미도 있다. 경작을 쉬면 지력이 회복되고 들짐승의 배설물 등으로 토지가 비옥해진다. 요새처럼 영농기술이나 비료 등이 없던 때에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지력이 회복되도록 하셨다.  안식년 때는 포도원과 감람원도 경작을 쉬게 했다. 포도주와 감람유는 히브리인들의 식생활에 중요한 작물이다. 그런 작물의 밭조차 경작을 쉬게 한 것은 전 국토의 경작을 쉬게 하라는 뜻이다. 사사 시대나 왕국 시대에는 그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아서 대신에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 기간 중에 비로소 땅이 쉼을 얻었다(대하 36:21). 결국 바벨론 포로 생활은 안식년 법을 지키지 않았던 것에 대한 하나님의 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안 쉬면 강제로 쉬게 되는 상황이 온다. 질병도 안 쉬니까 하나님이 쉬게 하려고 주어질 때가 많다.  안식년은 영적인 일에 집중하라는 의미와 지력 회복의 의미도 있지만 본문 말씀은 가난한 자들과 들짐승을 위해서도 안식년 율법을 제정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안식년 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경작해 먹게 하고 그 남은 것을 들짐승이 먹게 했다. 안식년은 남을 배려하는 삶의 훈련에도 좋은 제도다. 사실상 희년과 관련된 율법도 남을 배려하는 삶을 위해 제정된 율법이다.  희년에는 빚으로 땅과 집을 넘긴 사람들이 그것을 돌려받고 종도 자유인으로 회복되었다.

리더를 따르라 Follow The Lea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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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11:1] Follow my example, as I follow the example of Christ. [ 1 CORINTHIANS 11:1 ] ... 말은 때로 방해가 되거나 장벽을 만들기도 합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언급했듯이, 말은 그들이 경험한 것과 같은 혼란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특정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한 논쟁의 소지가 있는 문제에 서로 견해가 달라 생긴 혼란이었습니다(고린도전서 10:27-30). 그러나 행동은 장벽을, 그리고 혼란마저 초월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는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행동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합니다(10:32-33). 우리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11:1)가 됨으로써 우리는 사람들이 주님을 믿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말했듯이, “항상 복음을 전하되 말은 필요한 경우에만 하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우리의 그런 행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우리 믿음의 본질을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10:31) 행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Father God, thank You for the example of Jesus. Show me how to follow Him in actions and in words every day. 아버지 하나님,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말과 행동으로 주님을 어떻게 따라야 할지 보여 주소서. [오늘의 양식  "리더를 따르라 Follow The Leader"  중]

3등칸의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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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 iNDICA - 갯버들 ] 3등칸의 슈바이처 아프리카 랑바레네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 그가 모금을 위해 고향인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갔을 때 기차역에 마중 나온 사람들이 1등 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슈바이처 박사는 3등칸 쪽에서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갔을 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박사님 왜 3등 칸에서 내리십니까.’ 슈바이처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4등 칸이 없어서요.’ 슈바이처에 대한 수많은 찬사보다 이 말 한마디가 긴 여운으로 우리의 가슴에 남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 CBS 1분 묵상 20220224 ]

별들의 도전 The Challenge Of The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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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시편 8:4] What is mankind that you are mindful of them? [ PSALM 8:4] ... 다윗 왕은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별들을 시로 노래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편 8:3-4). 다윗의 질문은 불신의 질문이 아니라 놀라움에 찬 겸손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그는 이 광대한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이 참으로 우리를 마음에 두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세한 것 하나하나, 곧 좋은 것과 나쁜 것, 겸손한 것, 당돌한 것, 심지어 어리석은 것까지 다 아십니다. 별들에게 도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오히려 별들이 우리 창조주를 찬양하라고 우리에게 도전합니다. ... Heavenly Father, I acknowledge Your love for me with feelings of amazement, awe, and humility. Who am I? Thank You for loving me! 하나님 아버지,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놀라움과 경외심과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제가 누구이기에 저를 사랑하시는지,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의 양식  "별들의 도전 The Challenge Of The Stars"  중]

영감을 얻고 싶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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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지 출처 : iNDICA - 털동자꽃 ] 영감을 얻고 싶거든 ‘작가는 엉덩이로 글을 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창작의 과정이 번뜩이는 영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노력의 양과 비례하여 생긴다는 말이자, 반대로 꾸준한 노력의 양이 영감을 만들어낸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영감이 뚝 떨어지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실상 영감이 주어지는 자리 이면에는 수많은 노력과 루틴의 자리들이 엿보입니다. 그런 기본기들이 창조의 정신적 여유를 만들어내기 때문이지요. 영감을 얻고 싶거든 일탈이 아닌 기본으로 돌아갑시다. [ CBS 1분 묵상 20220223 ]

다수에 휘둘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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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거 쾨더 : 회개를 외치는 아모스 ] 본문말씀 : 출애굽기 23장 2-3절 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 다수에 휘둘리지 말라 >  사람이 군중심리에 휘둘리면 악한 길로 들어설 때가 많다. 윤리적이고 거룩한 행위의 주체는 대개 다수가 아닌 개인이다. 그러므로 다수의 결정이 옳지 않으면 혼자서라도 담대히 진리의 편에 서라. 의로운 소수는 마이너그룹이 아니라 예수님이 함께 해주심으로 결국은 그 소수가 실질적인 메이저그룹인 셈이다.  마가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이 수많은 군중에 둘러싸여 있을 때 12년을 혈루증을 앓는 한 여인이 주님의 옷자락을 만졌다. 그때 주님은 말씀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주님은 지금도 주님의 옷 가라도 손을 대려는 군중속의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살라.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천만 성도들 중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예수님의 피 묻은 손을 붙들고 그 품에 안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지금도 찾고 계신다.  지금 연약해진 현실에서 영적인 의미로 예수님이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고 물으시면 이렇게 대답하라. “주님! 문제와 고통의 멍에가 너무 무겁고 길이 보이지 않아서 제가 댔습니다. 주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늘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다시는 놓지 않게 하소서!” 그런 고백을 드리면서 믿음의 손을 내밀고 예수님을 붙들면 그 여인처럼 놀라운 치유와 회복의 역사를 체험할 것이다.  초대교회 문헌을 보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댄 여인의 이름은 베로니카였다. 그녀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시다가 넘어지셨을 때 무리에서 뛰어나와 자기 손수건으로 예수님 얼굴의 땀방울과 핏방울을 닦아드렸다. 그때 그 손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의 흔적이 새겨졌다고 한다.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예수님을 위해 일하다 보면 몸과 마음에 예수님의 흔적이 나타난다. 그처럼 예수님을 깊이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