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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지파처럼 헌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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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9장 5-12절 5.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6.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7.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8.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 분노를 다스리라 >  야곱은 임종 유언에서 시므온과 레위에게 책망의 말만 했다. 먼저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라고 했다(5절). 창세기 34장을 보면 시므온과 레위는 할례 받으면 디나를 주겠다는 세겜과의 약속을 어기고 세겜 성의 모든 남자가 할례 받은 틈을 타서 그곳의 모든 남자들을 죽여 사사로이 원수를 갚았다. 그 모습이 야곱에게 매우 잘못된 태도로 여겨졌었기에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그 사건을 떠올리며 두 아들을 책망한 것이다. 그래서 저주를 받아 나눠지고 흩어진다고 했다(7절).  하나님은 사람이 복수심을 품고 스스로 원수를 갚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억울하고 분할 때는 한 템포 늦춰 행동하고 한 번 더 참으라. “이번에 본때를 보여줘.”라고 하면서 미움과 분노와 혈기를 표출하면 하나님이 물러서시면서 자신이

축복에는 서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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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8장 4-7절 4.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5.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6.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7.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 번성의 축복을 추구하라 >  임종을 앞둔 야곱이 요셉에게 상기시킨 축복은 간단히 말하면 번성의 축복이었다. ‘물질의 축복’과 ‘번성의 축복’은 유사해보여도 아주 다르다. 물질의 축복은 재물이 많아지는 것이지만 번성의 축복은 자녀가 많아지는 것이다. 재물의 많아짐보다 자녀의 많아짐이 더 중요하다. 돈은 많은데 자녀가 없다면 불행한 일이다. 물론 육신적인 자녀만 자녀가 아니다. 육신적인 자녀가 없으면 나의 관심과 사랑과 헌신을 통해 영적인 자녀를 많이 만들면 된다.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고 섬기고 길러내려고 물질을 사용하는 것을 아끼지 말라.  돈을 잘 버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이 더 중요하다. “돈을 어떻게 버느냐?”를 통해서도 사람됨이 나타나지만 “돈을 어떻게 쓰느냐?”를 통해서도 사람됨이 잘 나타난다. 돈을 가지고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자녀를 많이 낳고 기르는 일이다. 죽을 때 많은 돈을 남겨 놓았지만 많은 자녀를 낳지 못했다면 그의 생애는 이렇게 한 마디로 압축될 것이다. “그는 돈을 다스리지 못하고 살다가 죽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인가?  재물을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는 일에 쓰라. 돈을 버는 참된 목적을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는 것에 두라. 돈을 좋은 도구로 사용하려는 꿈을 가지고 돈을 벌

멸망에서 건짐 받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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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아모스 3장 12-15절 12.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침상 모서리에나 걸상의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도 건져냄을 입으리라 13.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언하라 14.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제단들을 벌하여 그 제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 15.겨울 궁과 여름 궁을 치리니 상아 궁들이 파괴되며 큰 궁들이 무너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멸망에서 건짐 받는 길 (아모스 3장 12-15절) 1. 말씀을 듣고 회개하라  아모스 당시에 이스라엘의 죄악상은 명백했다. 그때 그들은 심판과 관련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했다(13절). 사람은 잘 말하고 들으면서 점차 사람다움이 생긴다. 특히 말씀은 영혼 변화의 초석과도 같다. 말씀을 들으면 내면에 생기는 변화를 통해 외적인 능력과 열매도 나타난다. 더 나아가 자기를 변화시킨 말씀을 주변에 전하고 싶어진다. 자기 안에서 일어난 뚜렷한 변화를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배고플 때 음식을 먹듯이 영혼이 배고플 때는 말씀의 양식이 필요하다. 한 성현은 하루라도 독서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고 했다. 더 나아가 하루라도 말씀을 먹지 않으면 영혼에 가시가 돋친다.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삼으라. 하나님의 뜻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말씀대로 살 때 알 수 있다. 말씀을 통해 영혼이 풍성해지고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고 귀신이 쫓겨나가고 중독에서 해방되고 이탈된 길에서 제 길을 찾는다.  하나님이 가끔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육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의 문제보다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의 문제가 더 중요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다. 영적인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려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지 말라. 아무리 잘 살아도 영혼의 양식인 말씀을 먹지 못하면 영혼은 피

하나님과 뜻을 같이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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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아모스 3장 1-5절 1.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에 대하여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모든 족속에 대하여 이르시기를 2.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 3.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4.사자가 움킨 것이 없는데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는데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 5.덫을 땅에 놓지 않았는데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잡힌 것이 없는데 덫이 어찌 땅에서 튀겠느냐 < 문제의 최대 해결책 >  사람들은 일이 잘 되면 자기가 잘해서 그렇게 된 것처럼 호기를 부릴 때가 많다. 작은 성공으로 너무 빨리 하나님을 잊거나 마음이 높아지지 말라. 마음이 높아지면 말씀에서 멀어져 어떤 말씀은 사리에 맞지 않게 생각하거나 의문을 표한다. 때로는 말씀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마음이 높아진 표시로서 작은 죄와 허물이 아님을 인식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라. 높아진 마음은 자기 존재 자체를 비천하게 만든다.  승리 전에도 잘해야 하지만 승리 후에는 더 잘해야 한다. 승리 전보다 승리 후에 마음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마음이 높아져서 방심함으로 아이 성 첫 전투에서 패배했다. 그 사실을 반면교사로 삼아 아이 성 둘째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는 마음이 높아지지 않도록 에발 산에서 제단을 쌓고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했다. 승리를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승리 후에는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암시다.  각종 문제의 최대 해결책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반면에 각종 문제를 낳는 최대 원인은 ‘내 말을 들으라는 것’이다. 내 말을 들으라는 태도는 문제와 고통의 원인을 남에게 돌리는 태도로서 갈등과 대립을 낳는다. 내 말을 들으라는 태도는 “네 탓이요.”라는 말의 간접 화

하나님의 마음을 얻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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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10장 25-28절 25.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 생명을 살리고 돌보라 >  어느 날 한 목사가 교회를 개척하며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마음이 약해 거칠고 사나운 양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런 양들은 감당할 수 있는 큰 교회로 보내소서.” 그러자 곧 이런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종아! 나는 죄인을 구하러 왔는데 너는 의인만 찾는구나. 좋은 사람만 찾지 말고 먼저 네가 좋은 교회의 좋은 목사가 되라.”  교회는 거룩한 주막처럼 성령의 새 술에 취하는 역사가 넘쳐야 한다. 교회에 올 때마다 “여기는 밥맛과 살맛이 나게 하는구나.”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천국 교회를 꿈꾸라. 인생 나그네가 천성을 향해 가다가 주일에 배고프고 피곤한 심령으로 거룩한 주막을 찾아오면 주막 주인은 그를 따뜻하게 맞이해서 음식과 새 술을 공급하고 쉬게 해서 힘을 얻어 다시 여장을 챙기고 떠나게 해준다.  험한 인생길이기에 주일에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도 너무 감사하다. 그처럼 교회에서 피곤하고 지친 심령이 말씀으로 성령충만해지면 기쁨과 감사와 웃음꽃과 활력도 넘치게 된다. 또한 교인들이 서로 예쁜 말로 힘을 주면 믿음도 커지고 결국 가정과 건강과 일터의 복도 받는다. 왜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고 이 땅에 두셨는가? 다른 생명을 살리고 돌보라는 뜻이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더 불평을 삼가고 서로에게 더 힘을 주라. 교회와 가정이 내 마음에 맞기만 바라지 말고 내가 교회와 가정의 필요를 더욱 살피며 요구하는 삶이 아닌 돌봐주는 삶을 살라. < 영생의 축복을

선한 청지기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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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7장 23-26절 23.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24.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25.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26.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 합당한 대가를 받게 하라 >  당시 요셉은 바로의 허락 아래 백성들에게 공짜로 양식을 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대가를 요구했다.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렇게 한 것은 백성들에게 정당하게 노동을 시키고 그 대가를 얻게 하려는 뜻이 있었다. 사람들을 도울 때 그냥 돕는 것보다 정당한 대가와 땀을 치르게 하고 돕는 것이 도움 받는 사람에게도 좋다. 도움 받는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그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것은 돕는 사람의 입장에서 공로의식을 가지지 말라는 뜻도 있지만 도움 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주라는 뜻도 있다. 남을 돕는 좋은 방법은 정당한 땀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물질을 주는 것보다 일자리를 주는 것이 진짜 돕는 것이다. 땀의 의미를 모르면 바른 청지기가 될 수 없다. 요셉이 백성들에게 땀을 흘리도록 하고 그에 상응한 대가를 주었듯이 땀을 가치 있게 여기고 주인을 위해 땀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라.  언뜻 보면 요셉이 백성을 착취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의 이웃 사랑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백성들에게 씨를 뿌리게 하고 추수한 것의 5분의 1은 바로에게 드리게 하고 5분의 4는 자신이 가지게 했다(23-26절). 20%를 세금으로 거둬간 것은 당시로서

세상에서 구별되어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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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6장 28-34절 28.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29.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30.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31.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32.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33.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 세상에서 구별되어 살라 >  아들 요셉의 초청을 받고 이스라엘(야곱)이 애굽으로 떠날 때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 말라고 하셨다. 목적 없이 휩쓸려 내려가면 문제지만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내려가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애굽에서도 구별된 고센의 삶을 살면 된다. 부활의 능력이 무엇인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도 부활의 능력이지만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도 부활의 능력이다. 외적인 화려한 삶으로 나를 구별시키지 말라. 그렇게 구별시키면 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만 더욱 짙게 보이게 할 뿐이다.  야곱 가족이 고센에 거하게 된 것은 애굽에서 구별된 삶을 살게 하려는 요셉의 지혜로운 계획으로 이뤄졌다. 요셉은 형들과 가족들에게 바로가 직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목축업이라고 대답하라고 했다(33-34절). 애굽인들은 목축업을 싫어했다. 나일강의 곡창지대를 중심으로 농경을 했던 그들은 동물을 죽이는 것과 관련된 목축업을 야만적인 일로 보았다. 그래서 목축업을

비전을 포기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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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5장 24-28절 24.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길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25.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26.알리어 이르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의 말을 믿지 못하여 어리둥절 하더니 27.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에게 말하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요셉이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28.이스라엘이 이르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하니라 < 잘 예측하고 대비하라 >  요셉은 형들과 재회한 후 가족들을 애굽으로 초청하고 아버지가 애굽으로 오는 길에 먹을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어 보내면서 형들에게 길에서 다투지 말라고 했다(23-24절). 이 장면을 보면 요셉이 얼마나 사려 깊은 사람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요셉은 현실 상황도 잘 읽으면서 사람의 본능과 심리도 잘 읽을 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문제의 발생 전에 어떤 조치를 취해 문제의 가능성을 낮추고 예방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왜 기도하는가? 문제가 일어난 후 어떤 응답을 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기도는 문제 해결 능력을 얻게도 하지만 문제 예방 능력을 얻게도 한다. 기도하지 않으면 욕망에 휘둘리기 쉽다. 풍요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말씀과 기도가 없어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풍요는 영혼의 덫이 될 수 있다. 육신적인 풍요를 영적인 풍요로 승화시키지 못하면 탄탈로스처럼 될 수 있다.  영어의 탠털라이즈(tantalize)는 ‘애타게 하다’라는 뜻이다. 네트영어의 원리대로 뜻풀이하면 그것은 ‘탄탈로스처럼 되게 하다’라는 뜻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탄탈로스(Tantalus)는 제우스의 아들이었는데 신들의 비밀을 누설해 물이 턱까지 차고 주위에는 탐스런 열매가 달린 나무

마음의 천국을 이루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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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누가복음 17장 20-37절 17.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1. 보여주는 것을 주의하라  어느 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합니까?”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20-21절).” 이 구절에서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은 “바리새인 안에 천국이 있다.”라는 뜻이 아니라 외적인 형식을 중시했던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겉’이 아닌 ‘너희 안’에서 마음의 천국을 이뤄야 함을 역설적으로 강조한 말씀이다.  바리새인과 이단 교주의 유사한 특징은 보이는 것과 보여주는 것으로 영성을 나타내려는 태도다. 물론 바리새인보다 이단 교주의 해악이 훨씬 크다. 바리새인은 영성을 과시해 존경받으려는 것이 목적이지만 이단 교주는 영혼을 미혹해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을 보여준다는 말과 천국이 어떤 장소나 공동체에서 펼쳐진다는 말에 미혹되지 말라고 하셨고 무엇을 보여주면서 미혹하는 곳에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고 하셨다(22-23절).  영성과 영적 체험은 다르다. 대개 영성은 보이지 않고 영적 체험은 보인다. 그래서 영성보다 영적 체험이 더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것 같고 더 사람의 시선을 끈다. 쉽게 말하면 영성은 영양가를 추구하는 것이고 영적 체험은 맛을 추구하는 것이다. 수련회 캠프파이어 때 죄를 뉘우치고 우는 체험을 했어도 왜 사흘만 지나면 이전과 똑같아지는가? 영적

시험에 관한 3대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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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4장 9-13절 9.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10.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11.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12.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13.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 < 시험에 관한 영적 원리 >  요셉은 형제들을 모른 척 하고 자기 집으로 인도해 잘 대접한 후 청지기를 통해 형제들에게 자기 은잔을 훔쳤다고 누명의 씌우는 시험을 했다. 형제들이 훔치지 않았다고 하며 말했다. “그 은잔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종이 되겠습니다.” 결국 청지기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해서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자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되었다.  형제들이 너무 놀라서 옷을 찢었다. 그때 형제들은 베냐민만 남기고 가나안으로 갈 수 있었지만 아버지 야곱과의 약속도 있고 어린 동생만 애굽에 둘 수 없어 각기 짐을 싣고 성으로 돌아갔다(13절). 어린 동생을 위해 자유와 생명을 기꺼이 포기하는 결정을 내린 후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하나님의 무심함을 한탄했을 것이다. 본문은 흔히 ‘요셉의 은잔의 시험’이라 부르는데 이 시험을 통해 교훈 받는 시험에 관한 영적 원리는 무엇인가? 1. 잘못이 없어도 시험 당한다  그때 요셉의 형제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었어도 시험 당했다. 어떤 사람은 많이 기도하면 시험 당하지 않을 줄 알지만 예수님은 40일 금식기도 후 시험 당하셨다. 축복 가능성이 크면 큰 시험을 당할 가능성도 많다. 그렇다면 기도를 많이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가? 아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시험을 당하지 않는 시험 면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을 이기는 영적인 능력을 얻는다. 성도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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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3장 19-23절 19.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20.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21.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22.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23.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 >  야곱의 아들들이 야곱의 허락 하에 막내아들인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을 때 요셉은 베냐민을 보고 너무 기뻤지만 아무런 내색 없이 청지기에게 자기 집 점심식사에 그들을 데려오게 했다. 요셉 형제들은 신변에 큰 위험이 닥친 줄 알고 먼저 진실을 고백하겠다는 다급한 마음으로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전번에 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돌아갈 때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보자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었는데 그 돈이 왜 자기들 자루에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19-22절).  왜 다급해하는 형제들 앞에서 요셉이 신분을 감추었는가? 두 가지 의도 때문일 것이다. 삶의 위기 중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면서 믿음과 인격과 성품을 시험해보려는 의도와 그 시험이 잘 끝나면 감격적인 깜짝 기쁨을 안겨주려는 의도다. 하나님도 믿음과 인격과 성품 시험을 통해 깜짝 기쁨을 주시려고 가끔 문제 해결을 늦추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까지 믿음으로 잘 기다리라.  12월은 기다림의 절기다. 그런데 요즘은 기다림의 절기를 무덤덤하게 지내며 마음의 가난을 통해 우러나오는 해맑은 미소를 잃어버린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욕심과 이기주의에 젖어 자기만 알며 살고 있다. 기다림의 절기가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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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3장 13-15절 13.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5.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 죽는 길이 사는 길이다 >  요셉의 형제들이 애굽에 식량을 구하러 가서 요셉을 만났을 때 요셉은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들을 정탐꾼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리고 시므온을 인질로 잡고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는 명령과 함께 은밀히 돈과 양식을 주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가나안 땅에 돌아온 형제들이 야곱에게 모든 상황을 말하자 야곱은 완강히 막내 베냐민을 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때 르우벤이 말했다.  “아버님! 만약 베냐민을 데려오지 않으면 제 두 아들을 죽이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베냐민을 데려오겠습니다.” 그래도 야곱은 안 된다고 했다.  얼마 후 애굽에서 가져온 양식이 다 떨어지자 야곱이 아들들에게 애굽에 가서 양식을 조금 사오라고 했다. 유다가 말했다. “아버님! 막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양식을 구해 올 수 있습니다.” 그래도 선뜻 허락하지 않자 유다가 말했다. “아버님!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우리 가족들이 다 삽니다. 제가 베냐민을 꼭 데려올 것을 보증하겠습니다. 만약 베냐민을 데리고 돌아오지 못하면 제가 영원히 죄를 지겠습니다.”  가장 믿음직한 아들인 유다가 그렇게 나오자 비로소 야곱은 자기 뜻을 꺾고 베냐민을 데리고 가게 허락하면서 말했다.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이 자식을 잃을 각오까지 하자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고 나중에 합력하여 선이 이뤄졌다. 그처럼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려면 누군가 먼저 희생해야 한다. 문제가 극도로 어려울수록 더욱 희생이 요구된다. 사는 것에 너무 관심을 두면 늘 두려움에 젖어 제대로 살지

용서하고 희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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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2장 36-38절 36.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 37.르우벤이 그의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오지 아니하거든 내 두 아들을 죽이소서 그를 내 손에 맡기소서 내가 그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리이다 38.야곱이 이르되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하리니 그의 형은 죽고 그만 남았음이라 만일 너희가 가는 길에서 재난이 그에게 미치면 너희가 내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 되리라 < 용서하라 >  요셉이 왜 훌륭한가? 용서의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는 형들과 재회했을 때 잠시 모른 체 했지만 이미 형제들을 용서하기로 작정했다. 아마 오래 전부터 용서했을 것이다. 그가 지혜롭고 책임적인 삶을 살면서 마침내 당시 대 제국의 총리가 된 것은 그가 미움에 사로잡혀 한 맺힌 삶을 살지 않았다는 뚜렷한 증거다. 용서는 쉽지 않다. 그냥 “괜찮아. 다 잊었어.”라고 말한다고 해서 용서한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 용서해야 한다.  물론 마음속으로는 용서했어도 요셉의 경우처럼 특별한 목적 때문에 용서의 표현을 잠시 미룰 수도 있다. 용서가 쉽지 않아도 용서는 모든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기에 잘 용서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라. 가끔 이해를 용서로 여길 때가 있다. 물론 이해하면 용서가 쉬워진다. 남의 형편과 처지를 생각해보면 어떤 행동이 이해될 때가 있다. 그러나 이해와 용서는 다르다. 이해도 중요하지만 한 차원 더 나아가 용서하라.  에베소서 4장 32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 말씀은 용서의 황금률과 같은 말씀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같이 남을 용서하라. 용서가 있어야 하나님의

요셉의 복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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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5장 1-8절 1.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리니 그 때에 그와 함께 한 다른 사람이 없었더라 2.요셉이 큰 소리로 우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 4.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6.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 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8.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 복된 존재가 되기를 꿈꾸라 >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말만 그럴듯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리에서 말한 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드러난 가지 역할도 필요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뿌리 역할은 더 필요하다. 하나님의 손길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나타난다. 보이지 않는 실상이 더 큰 실상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승리하라.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먼저 승리하는 것이다. 먼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해서 절망 중에도 희망을 말하라.  희망을 선도하고 찬란한 꿈을 향해 나아가라. 개인적인 사명도 잘 감당하면서 교회적인 사명과 사회적인 사명도 잘 감당하라. 세상 변화에 헌신하는 복의 근원이 되라. 복음 전파와 역사 발전의 사명을 늘 인식하고 공짜 의식과 무임승차 태도를 버리라. 나를 돕

지나친 죄책감을 버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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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2장 18-23절 18.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23.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 지나친 죄책감을 버리라 >  요셉은 모른 체 하며 형제들을 정탐꾼으로 몰고 그들 중 한 사람이 인질이 되고 막내 베냐민을 데려오라고 제안했다(18-19절). 그때 그들은 억울한 누명을 쓴 줄 알고 과거 요셉의 일로 죗값을 치르게 되었다고 한탄했다(21-23절). 얼마나 오래 전 죄인가? 요셉이 17세에 팔려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고 7년의 풍년 후 7년의 흉년 기간 초기였기에 그 죄는 약 20여 년 전의 죄였다. 현재의 어려움을 20여 년 전의 죄와 금방 관련시키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그 전에도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요셉을 팔았던 죄를 생각했던 것 같다.  회개로 죄 문제를 잘 처리하지 않으면 끊임없이 죄는 스토커처럼 내 의식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그처럼 죄책감에 깊이 빠진 형제들의 행동이 옳은가? 과거에 한 번 큰 죄를 지으면 어려울 때마다 그 죄와 연결시켜야 하는가? 그런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성도는 그런 모습을 더욱 버려야 한다. 지나친 죄책감을 가지는 것은 죄로 고민하는 의로운 모습처럼 보이지만

과거를 잘 정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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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2장 1-8절 1.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2.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3.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4.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5.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6.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 전략적인 외면도 필요하다 >  총리가 된 요셉의 탁월한 리더십으로 애굽 경제는 아주 윤택해졌다. 특히 7년 풍년 때 양식을 잘 저장하고 관리해서 흉년 때도 양식이 넘쳤다. 그 즈음 가나안 지방도 흉년으로 먹을 것이 궁핍해지자 야곱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아들들을 보냈지만 베냐민은 재난이 미칠까 두려워해서 야곱이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않았다(3-4절). 그때 요셉이 애굽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고 있었는데 요셉의 형들도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했다(6절).  21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요셉은 복장과 외모와 말투를 통해 형들을 금방 알아봤다. 그러나 형들은 애굽 총리가 된 동생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때 요셉은 형들을 모르는 체 했다. 옛날 상처가 도지고 복수심이 생겨서가 아니라 그들의 태도를 시험해보려는 전략적인 외면이었다. 사랑이란 무조건 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잘못된 것도 무조건 품으면 불의와 방종으로 흐를 때

리더에게 필요한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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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1장 46-52절 46.요셉이 애굽 왕 바로 앞에 설 때에 삼십 세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47.일곱 해 풍년에 토지 소출이 심히 많은지라 48.요셉이 애굽 땅에 있는 그 칠 년 곡물을 거두어 각 성에 저장하되 각 성읍 주위의 밭의 곡물을 그 성읍 중에 쌓아 두매 49.쌓아 둔 곡식이 바다 모래 같이 심히 많아 세기를 그쳤으니 그 수가 한이 없음이었더라 50.흉년이 들기 전에 요셉에게 두 아들이 나되 곧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이 그에게서 낳은지라 51.요셉이 그의 장남의 이름을 므낫세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내게 내 모든 고난과 내 아버지의 온 집 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52.차남의 이름을 에브라임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이 나를 내가 수고한 땅에서 번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 리더에게 필요한 3가지 >  요셉은 30세에 총리가 되었다(46절). 거부 가정의 사랑 받는 아들로 지내다가 17세에 노예가 되었다가 30세에 당대의 최강대국인 애굽의 총리가 되면서 공인의 생애를 시작한 것은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의 삶을 예표한다. 히브리인에게 30세는 책임적인 위치에서 일하는 존재로 인정받는 나이다. 요셉은 총리가 된 후 애굽 경제를 크게 발전시켰다. 요셉은 어디서든지 맡겨진 일을 멋지게 해내는 탁월한 리더였다.  사람들은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축복의 말씀대로 기도할 때마다 꼬리가 되지 않고 머리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 기도대로 응답받으려면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머리가 될 만한 자질이다. 머리가 된다는 말은 리더가 된다는 말이다. 리더가 되기를 원하면 리더십을 갖추어야 한다. 리더십을 갖추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1. 관심  본문 46절 후반부를 보라. “그가 바로 앞을 떠나 애굽 온 땅을 순찰하니.” 리더는 순종도 잘해야 하지만 순찰도 잘해야 한다. 관심을 가지고 곳곳을 지혜롭게 잘 살피라. 능력이 큰 것보다 관심이 큰 것이 더 소중한 리더십의 요건이다.

[온라인새벽기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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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1장 37-39절 37.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1. 책임적이고 생산적인 사람  바로의 꿈을 듣고 요셉은 그 꿈이 7년 풍년 후에 7년 흉년이 있을 꿈이라고 해석해주었다(25-31절). 그리고 꿈을 해석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대책까지 상세히 알려주었다. 어떤 대책인가?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해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고 풍년이 들 때 오분의 일을 따로 거두어 각 성에 보관해 흉년의 때를 예비하라고 말해주었다(33-36절). 요셉은 지혜로운 대책을 세우게 했다.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성령충만한 사람은 무아지경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 현실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생산적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맡겨진 일을 그대로 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맡겨진 일보다 더욱 많이 하는 것은 더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일은 맡겨진 일을 생산적으로 하는 것이다. 가끔 보면 일을 더 많이 하면서도 생산적으로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일을 많이 하는데 마음을 나뉘게 하고 나쁜 열매를 맺게 한다.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생산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런 격언이 있다. “비생산적인 사람이 소신껏 사는 것처럼 무서운 일은 없다.” 비생산적인 사람이 열심히 일하면 겁난다. 더 나아가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하면 공동체에 큰 짐을 지워 힘들게 만들 때도 많다. 바른 길에서 벗어나 열심을 내는 것은 반갑지 않다. 어떤 구역장은 열심히 심방하는데 오히려 구역원의 마음을 나눈다. 심방은 심방 훈련을 한 사람이 해야 한다. 심방하는 사실만큼 심방할 때의 자세와 윤리도 중요하다. 남을 위로한다고 하면서 교회의 흉을 보고 남의 흉을 보면 심방의 의미는 퇴색된다.  게다가 영적인 상태에

[온라인새벽기도]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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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1장 14-16절 14.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15.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 기록하면 마음이 풀린다 >  요새 자영업자의 눈물소리가 많이 들린다. 노동청 신고를 악용하는 점원에 의해 업주가 시달리면서 점원을 두기 두렵다고 하소연하는 자영업자도 많다. 노동자의 권리 보장은 필요하지만 갑자기 출근을 안 하거나 근무 태만으로 가게에 피해를 입하고 그만 둔 점원이 노동청에 신고할 때도 노동청이 무조건 점원 편에 서서 일처리를 하니까 노동청에서 몇 번 소환 통보를 받은 업주는 점차 마음이 메말라진다. 사랑과 정의의 균형이 중요하다.  고용인은 일한 만큼 받고 고용주는 일한 만큼 주는 것이 기본 정의다. 갈이 살려고 하고 열심히 살려고 하라. 회사에 다닐 때는 고용주만 갑질의 주체인 줄 알던 사람이 퇴사 후 자영업을 하면서 고용인도 갑질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깨달을 때도 많다. 좋은 고용주는 장사가 잘되면 고용인을 잘 대우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장사도 힘든데 잘못된 고용인을 만나 노동청에 몇 번 소환 통보를 받다 보면 한숨도 커지고 마음도 메말라진다.  최근에 한 자영업자가 말했다. “요즘처럼 불경기에 누가 직원들 벌어 먹이려고 대출받고 거래처 가서 굽신거리며 자영업을 하겠습니까? 고용주가 무조건 갑인 시대는 갔고 고용인이 갑일 때도 많습니다. 가게 운영에 지장을 주는 고용인의 권리까지 무조건 인정해주면 고용주는 어디에 하소연합니까?” 기본적으로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 더 받고 더 대접받고 더 고용이 잘되는 세상이 의로운 세상이다.  일전에 한 자영업자가 월요일에 직원을 고용했다. 그녀는 화요일에 가정에

나누는 인물을 배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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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아모스 2장 12-16절 12.그러나 너희가 나실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령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보라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 14.빨리 달음박질하는 자도 도망할 수 없으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용사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으며 15.활을 가진 자도 설 수 없으며 발이 빠른 자도 피할 수 없으며 말 타는 자도 자기 목숨을 구할 수 없고 16.용사 가운데 그 마음이 굳센 자도 그날에는 벌거벗고 도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힘써 나누라 >  하나님이 은혜로 가나안 땅을 주셨고 인물을 주셨는데 그 인물들을 부자와 권력자들이 타락시키면서 나실인은 포도주를 마시게 했고 선지자들은 예언하지 못하게 했다(12절). 그처럼 부자와 권력자들의 술수에 영적인 리더까지 타락하면 그 사회는 더 이상 희망이 없게 된다. 결국 곡식 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하나님이 그들을 누르는 심판이 임한다(13절). 그 무섭고 신속한 심판을 누구도 피할 수 없다(14-16절).  부자는 힘들게 사는 사람과 좋은 것을 나눌 책임이 있다. 부자들이 제일 금해야 할 것은 투기와 이자놀이다. 부자는 저축보다 나눔과 좋은 투자를 잘해야 한다. 좋은 투자는 일종의 나눔이다. 어려울 때를 대비한 예비금은 필요해도 너무 돈을 쌓아놓는 것은 죄다. 돈을 좋은 곳에 투자하면 많은 일자리가 생겨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여호수아가 요단 동편 땅을 먼저 차지한 2지파 반 사람들에게 가나안 정복전쟁의 선봉에 서서 나머지 지파들을 도우라고 하자 그들은 “우리가 그대로 행하겠다.”고 하며 여러 번 ‘우리’를 강조했다(수 1:16). ‘우리 의식’을 가지고 먼저 잘살게 되면 가난한 형제와 나누려고 해야 전체가 다 살게 된다. 암이란 한 조직세포가 자기만 무한정 커지려다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 그 커진 조직 때문에 전체 생명이 다 죽는다. 어떤 공동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