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19의 게시물 표시

자기를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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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4장 1-5절 1.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 믿음으로 예배하라 >  본문에는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인류의 첫 살인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가인과 아벨 얘기는 앞으로 인류에게 펼쳐질 ‘선악의 투쟁사’의 첫 장면이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간은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죄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죄 짓는 것이 신나게 좋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죄를 싫어하면서도 떨쳐버릴 수 없기에 거기서 인간의 고뇌가 싹튼다. 그 고뇌를 제일 먼저 실제로 경험한 자가 인류의 첫 살인자 가인이다.  왜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가?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은 받았기 때문이다(3-5절). 왜 하나님이 땅의 소산으로 드린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린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는가? 언뜻 보면 하나님이 제물을 보고 사람을 차별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물 때문에 가인과 아벨을 차별한 것이 아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드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나님은 영이신데 고기를 잡수시고 싶어 아벨의 제물만 받은 것

절망 중에 희망을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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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장 20-21절 20.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절망 중에 희망을 가지라 >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들은 후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모든 산 자의 어머니’란 뜻으로 하와라고 불렀다(20절). 바로 전에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아내의 이름을 ‘이제 곧 죽을 사람’이라고 짓지 않고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고 지은 것을 보면 아담이 절망 중에도 희망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하와도 자신의 이름을 ‘하와’로 지어준 아담을 통해 큰 위로를 받고 심판의 말씀으로 크게 상심한 그녀의 마음에 새로운 희망이 생겨났을 것이다.  힘들고 지친 심령에게 위로와 격려와 희망의 말을 많이 해주면 말한 대로 희망적인 역사가 펼쳐진다. 다윗이 왜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는가?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고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겪는 수많은 장애물을 생각할 때 내 힘만 가지고는 절망할 수밖에 없다. 희망의 원천은 내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다.  가끔 거룩한 비전을 세우고 나아가면 누군가 비판조로 말한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사역을 지탱시키려고 합니까? 계산적이지 않은 것은 좋지만 너무 계산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지난 삶을 깊이 생각해보면 거룩한 비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서 손해 본 것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나누고도 열두 광주리의 부스러기를 거두는 때도 많았음을 깨닫게 된다.  성도는 절망보다 희망이 늘 크다. 돌아보면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가 늘 따랐다. 많이 받지 않은 것 같아도 많이 누리는 삶이 성도의 희망의 이유다. 그런 희망을 느끼면 다윗처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다. 나의 비전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와 놀라운 능력이 뒤

소통의 프로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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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장 11-15절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여자가 이르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죄로 인한 인간관계 단절 >  본문 앞 11-12절을 보면 아담과 하와의 둘 사이에도 금이 갔다. 당시 에덴에는 아담과 하와 둘만 있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 둘 사이에 단절과 갈등이 생긴 장면도 죄의 치명성을 잘 말해준다. 아담이 처음 하와를 보았을 때 이렇게 고백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하나님의 사랑을 독점적으로 받을 수 없게 하는 상대가 생겼지만 어떤 경쟁도 없었고 참 행복이 있었다. 그처럼 상대가 있어도 행복을 누리는 삶이 천국 삶이다.  상대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정치 세계에서 여당은 “저 야당 없어졌으면...” 하고 야당은 “저 여당 없어졌으면...” 한다. 그러나 상대가 없어지면 잠깐은 편해도 삶의 발전도 없고 보람도 없다. 행복이란 상대의 존재 속에서 내 존재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그런 행복이 있었는데 범죄 후 하나님이 선악과 따먹은 것을 추궁하자 아담은 “저 여자 때문에 그랬습니다.”라고 했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었다. 죄로 인해 인간과의 단절이 생긴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관계단절의 원인은 죄 외에는 다른 것으로 설명되지

종말을 대비하며 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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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엘 1장 1-4절 1.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주민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조상들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3.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4.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 종말을 대비하며 살라 >  베드로전서 4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마지막 때는 미혹과 군중심리로 정신을 차리기 힘든 때가 된다는 암시다. 이단 교주가 가장 애용하는 말은 “종말이 가까웠다.”는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두려움으로 정신을 잃기 쉽다. 그러나 종말이 가까워졌다고 느낄수록 더욱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라.  기도할 때 몰아 경에 빠지는 기도만 너무 좋아하지 말라. 기도할 때는 믿음의 확신도 얻고 하늘의 지혜와 창조성도 받아서 기도한 후에는 더욱 정신이 맑아지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되어야 한다. 소도 도축장으로 끌려가기 전에 자기 종말을 예감하고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있다. 하물며 사람이 종말의 때를 망각하고 산다면 큰 불행이다. 베드로가 약 2천 년 전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라고 했으니까 지금은 훨씬 더 가까워졌다. 이때 더욱 종말의식을 가지고 매일을 내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진지하게 살라.  어느 날 초만원을 이룬 극장에서 불이 났다. 그때 “불이야!”라고 급박하게 외치면 더 난리가 날 것 같아서 한 배우가 연극을 중단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여러분! 지금 큰 불이 났습니다. 먼저 살겠다고 한꺼번에 뛰어나가면 다 죽습니다. 뒤쪽과 좌우의 출입구 쪽에 있는 분들부터 차례대로 나가십시오.” 관중들은 그것도 연극인 줄 알고 박수를 치며 웃었다. 곧 극장 안이 불길로 뒤덮였다. 그때서야

복된 가정을 만드는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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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디도서 2장 1-8절 1.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 2.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3.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4.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6.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7.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 행복을 오해하지 말라 >  얼마 전 한 30대 여성이 집에서 자기 몸에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질러 사망했다. 그때 딸을 말리면서 모친은 몸에 전체 화상을 입었고 부친은 부분 화상을 입었다. 바로 그 전에 딸이 점심에 자는데 엄마가 점심 준비로 너무 시끄럽게 한다고 짜증냈었다. 평소에 그녀가 폭력적이거나 이상 행동을 하지 않았다니까 아마 그때만은 순간적인 짜증과 분노를 못 참고 그랬을 것이다. 부친 말에 의하면 그녀는 오랫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계속 떨어지고 꿈꾸던 시인 등단도 실패했다. 그런 실패들을 통해 받은 스트레스의 누적도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행복과 축복의 실체를 오해하지 말라. 요새 공무원 직업이 안정적이라고 선호하지만 그것도 하나의 직업일 뿐이다. 보수도 적다. 공무원을 공복(公僕)이라고 한다. 공복이란 ‘공적인 종’이란 뜻이다. 남의 종노릇하기가 쉽지 않다. 해고 문제에서는 안정적이겠지만 업무 수행 과정에서는 고충이 많을 것이다. 또한 시인이 못 되면 어떤가? 수많은 SNS 매체나 블로그 등에 글을 쓰면 된다. 자기만의 행복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 빚으로 일가족이 자살하는 뉴스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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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호세아 14장 4-9절 4.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5.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6.그의 가지는 퍼지며 그의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의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7.그 그늘 아래에 거주하는 자가 돌아올지라 그들은 곡식 같이 풍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8.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지라 내가 그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9.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라 >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도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셔서 잘못된 것을 고쳐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고 더 이상 진노하지 않고 기쁘게 사랑하신다(4절). 그리고 풍성하고 다양한 축복을 허락하신다(5-8절). 하나님은 여전히 이스라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없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인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중요한 것은 “나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주어지겠는가?”에 대한 확신이다.  어느 날 호스피스 사역을 하는 한 여성이 지인의 부탁을 받고 죽음을 앞둔 한 환자를 찾아갔다. 환자는 자기는 불교신자이니 찾아오지 말라고 했고 그녀는 조용히 그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돌아왔다. 며칠 후 다시 찾아가자 그가 말없이 돌아누웠다. 그녀는 속으로 기도만 하고 돌아왔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었다. 어느 날 그가 “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왜 자꾸 옵니까?” 하고 역정을 냈다. 그녀는 대화의 시작을 기쁘게 여기며 말했다. “제 생각에 하나님이 당신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은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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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호세아 13장 9-11절 9.이스라엘아 네가 패망하였나니 이는 너를 도와 주는 나를 대적함이니라 10.전에 네가 이르기를 내게 왕과 지도자들을 주소서 하였느니라 네 모든 성읍에서 너를 구원할 자 곧 네 왕이 이제 어디 있으며 네 재판장들이 어디 있느냐 11.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 <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 >  왜 이스라엘이 패망했는가? 자신을 도와주는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이다(9절).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동은 어떤 행동인가?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은 가장 크게 대적하는 행동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펼치신 현실과 섭리에 대해 불평하며 감사하지 않는 것과 나를 돕는 하나님의 손길을 외면하는 것도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면 하나님은 얼마든지 나를 도우실 수 있다.  미국에 오랫동안 마약 중독과 싸웠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잘못된 아이들과 어울린 후 40대 초반까지 계속 마약에 중독된 상태로 있었다.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었고 가정환경도 좋은 편이었기에 여러 카운슬링도 받고 여러 치료 센터에도 갔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어느 날 그가 마약을 끊고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다. 그렇게 끊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사투를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끊도록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한 친구가 물었다. “어떤 좋은 치료 프로그램을 받았는가?” 그가 말했다. “아니야.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면서 그냥 끊어졌어.” 마음과 생각의 중심에 모신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심으로 대적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이끌어주신 것이었다. 살다 보면 실패하고 후퇴하고 무너질 수도 있지만 하나님을 마음과 생각의 중심에 모시면 어느 때부터 하나님이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끌고 그 좋은 상태가 계속되게 도와주실 것이다. 또한 나를 더 좋은 곳으로 올라가게 도우실 것이고 최후까지

하나님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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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호세아 13장 4-8절 4.그러나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나 밖에 네가 다른 신을 알지 말 것이라 나 외에는 구원자가 없느니라 5.내가 광야 마른 땅에서 너를 알았거늘 6.그들이 먹여 준 대로 배가 불렀고 배가 부르니 그들의 마음이 교만하여 이로 말미암아 나를 잊었느니라 7.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사자 같고 길 가에서 기다리는 표범 같으니라 8.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그들을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 우상숭배의 파멸성 >  우상숭배에 빠지면 태양이 떠오른 후 곧 사라지는 아침 구름과 쉽게 사라지는 이슬처럼 되고 타작마당에서 광풍에 날리는 쭉정이나 굴뚝에서 나가는 연기처럼 된다(3절). 우상숭배는 파멸이 예고된 것이란 뜻이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에게 자신을 사자와 길가에서 기다리는 표범과 새끼를 잃은 곰과 암사자와 같다고 비유하셨다(7-8절). 무섭고 빠르고 위엄스럽게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을 심판하실 것이란 암시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상숭배에 빠지면 엄중하게 심판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양보와 관용이 넘치지만 다른 우상에게 참된 신의 지위를 양보하거나 우상숭배에 대해 관용하심으로 진리를 양보하지는 않는다. 양보해도 될 것을 양보하지 않는 것은 완고한 것이지만 진리를 양보하지 않는 것은 독실한 것이다. 불신자의 눈에 유일신 사상이 독선처럼 보여도 전능하신 참 신은 한분일 수밖에 없다. 다른 사상은 다 타협의 여지가 있어도 하나님을 여러 신 중 하나쯤으로 여기는 사상에는 타협이 없어야 한다. 사람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 자리에 다른 우상을 두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어떻게 깊이 사랑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은 사람에 대한 사랑 중의 하나인 N분의 일쯤의 사랑으로 가볍게 여기지 말라.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을

의를 자랑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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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호세아 12장 7-9절 7.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8.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내가 수고한 모든 것 중에서 죄라 할 만한 불의를 내게서 찾아 낼 자 없으리라 하거니와 9.네가 애굽 땅에 있을 때부터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내가 너로 다시 장막에 거주하게 하기를 명절날에 하던 것 같게 하리라 < 불의하게 살지 말라 >  본문 7절을 보라. “그는 상인이라 손에 거짓 저울을 가지고 속이기를 좋아하는도다.” 이 구절에 언급된 상인의 원어인 ‘케나안’은 가나안을 뜻한다. ‘상인’이란 뜻의 가나안은 가나안 주민들이 해상 무역으로 상인 활동을 주로 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스라엘도 ‘상인’이라고 칭해진 것은 가나안 사람처럼 불의하게 행했다는 암시다. 가장 흔한 불의는 거짓 저울로 속이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불의한 상거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불의하게 얻은 힘은 자기 내면부터 망가뜨린다.  불의하게 얻는 힘은 의를 이루기보다 무너뜨린다. 수많은 사회 갈등의 핵심 원천은 불의한 힘의 추구다. 돈이 세상을 바꾸는 데 힘이 되어도 불의한 상거래를 통해 돈을 얻으려고 하지 말라. 정당한 상거래의 기준은 무엇인가? 사실상 이윤을 붙여 파는 것 자체가 의로운 행위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2가지가 있다면 비교적 의로운 상거래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최대한 정당하게 상거래를 하려는 것과 그래도 완벽하게 행할 수 없음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성도는 개인적인 죄는 물론 사회에 저지른 죄도 잘 회개해야 한다. 사회에 끼치는 죄에 대한 의식이 없으면 교인이 늘어나도 사회는 깨끗해지지 않는다. 단순히 교인이 많아지기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의로운 성도가 많아져야 한다. 찰스 피니가 집회하면 그 지역의 사회악이 크게 사라졌다. 오늘날 교회가 많아져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불의와 부패와 타락을 외면하고 예수님의 이름만 찾고 복만 추구하기

멘토를 기쁘게 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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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빌레몬서 1장 20-25절 20.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21.나는 네가 순종할 것을 확신하므로 네게 썼노니 네가 내가 말한 것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 22.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23.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24.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 멘토를 기쁘게 하는 삶 >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중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골로새 출신의 두 사람이 그의 말씀에 큰 은혜를 받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가 교회를 개척했다. 그들은 골로새 교회 담임목사 역할을 했던 에바브라와 장로 역할을 했던 빌레몬이었다. 그 중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란 도망친 종이 있었다. 오네시모는 로마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 회개하고 극진히 섬겼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를 용서하라는 서신을 보내면서 서신 말미에 자신에게 기쁨을 얻게 해달라고 썼다. 그처럼 영적인 멘토를 기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마음을 평안하게 하라  사도 바울은 오네시모의 용서를 호소하고 결론 부분에서 “오 형제여!”라고 다정하게 호칭한 후 자기에게 기쁨을 주어 자기 마음을 평안하게 해달라고 했다(20절). 제자는 십자가도 잘 지면서 멘토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는 일도 잘해야 한다. 신실한 교인은 대개 목회자의 비전에 일조하기를 원한다. 비전 공유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이 목회자와 교인을 한 교회에 두신 핵심 이유는 비전을 공유하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같은 목회자로부터 말씀을 들으면 아무리 은혜로운 말씀도 식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래서 말씀의 은혜와 함께 꼭 필요한 것이 비전 공유다.  하나님은 <월새기(월간새벽기도)> 문서선교의 비전에 여러 동역자와 기

하나님의 3가지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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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호세아 12장 5-6절 5.여호와는 만군의 하나님이시라 여호와는 그를 기억하게 하는 이름이니라 6.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하나님은 특별계시인 성경을 통해 혹은 일반계시인 자연과 양심과 역사와 현실을 통해 혹은 믿는 사람의 입술을 통해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많은 말씀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간절한 사랑의 호소다. 본문 6절에는 호세아의 입술을 통한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가 나온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 이 말씀에 나오는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 3가지가 나타나 있다. 1.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왜 삶에 고난과 기도제목이 주어지는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뜻이다. 때로 목자들이 양 옆에 염소를 두는 이유는 양이 배부르고 안전한 상태에서 누워있기만 하면 운동 부족으로 건강을 잃기 때문이다. 염소가 누워 있는 양을 본능적으로 찌르면 양이 도망치면서 건강이 유지된다. 그 찌르는 염소가 삶의 고난이다. 고난이 힘든 것이지만 나쁜 것은 아니다. 고난은 영적인 건강을 지켜주는 밑거름이고 후에 주어질 영광의 기초다. 고속승진만 좋아하지 말라. 고속 승진 후 고속 추락을 겪을 때도 많다. 하나씩 고난의 계단을 잘 극복하고 오르는 것이 참된 승리의 길이다.  하나님의 일과 뜻과 길 안에 있다가 어려움이 생기면 수동적으로라도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여기라. 그때 고난을 이기는 내면의 기쁨이 생긴다. 더 나아가 능동적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라. 예수님의 고난과 나의 능동적인 고난이 만나는 지점에서 기적적인 역사가 시작된다. 예수님의 고난에 능동적으로 동참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적극적으로 헌신한다는 말이다. 어디서든지 자기를 드려야 좋은 일이 생기고 작품 인생이 이뤄지고 교회생활에서도 기쁨과 보람과 행복감이 커진다. 2. 인애와 정의를 지키라  사람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사랑 대상이다. 사람이 없었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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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호세아 11장 8-11절 8.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10.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라 >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하며 하나님을 끝내 버렸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놓지 않으셨다(8절). 하나님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회개이지 이스라엘의 멸절은 아니었다(9절). 언젠가 하나님께서 사자후를 발하시며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때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동으로 떨면서 이스라엘이 돌아온다(10-11절). 본문의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뜻이다. 왜 성도에게 고난이 주어지는가? 더욱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뜻이다.  고난의 밤은 무익한 것이 아니다. 천지창조 때 하루가 이렇게 표현되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몇 째 날이니라.” 하루의 시작을 밤부터 말한 것은 밤의 필요성을 깨닫게 한다. 인생에서 고난의 밤은 꼭 필요하다. 믿음이 만사형통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고난에 의문을 품지 말고 자연스럽게 여기라. 위대한 성인에게도 고난이 있었고 오히려 고난이 그를 성인으로 만들었다. 그때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고난은 내 한계를 자각시킨 후 새롭게 도약시키는 디딤돌이다. 고난을 통해 겸손해지고 기도를 훈련하고 하나님을 깊이 만난다. 또한 좋은 것을 배우고 얻는다. 고난도 속상한 것이지만 고난을 통해 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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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호세아 11장 1-4절 1.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4.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나님 >  사람은 누구나 죄를 짓는다. 신실한 성도도 때로는 죄에게 진다. 그 죄는 어떤 특출한 죄가 아니라 늘 나를 괴롭혔던 죄다. 그때마다 늘 새로운 결심과 다짐을 하지만 또 질 때가 많다. 그때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가면 하나님은 늘 받아주신다. 그래도 죄책감은 계속 마음에 남아 영혼을 괴롭힐 때가 많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극복된다.  감정은 이성대로 잘 움직여주지 않는다. 잊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잊지 못하고 용서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용서하지 못한다. 머리로는 수십 번도 더 다짐한다. “어차피 저 사람과 평생 살려면 내가 믿는 사람으로서 먼저 사랑하고 용서하고 잊자.” 그런데 또 보면 미우니까 “용서 못해.”라고 한다. “정직해야지.”라고 다짐한 후 또 거짓말하고 “부지런해야지.”라고 다짐한 후 또 게으름을 피운다. 그런 인간이기에 깊은 죄책감은 더욱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오해 때문에 전화로 부친과 큰 다툼을 벌였다. 그때 자기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분노하며 소리쳤다. “아버님! 그럴 수 있습니까? 이제부터 아버님을 없다고 여기고 살겠습니다.” 전화를 탕 끊었다. 다음날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얘야! 네 아버지가 어제 갑자기 돌아가셨다. 어제 무슨 일 있었니?”  그 상황에서 분노하며 부친에게 한 마지막 말이 얼마나 후회가 되겠는가? 그때는 누가 어떤 위로를 해도 위로가 되

주님을 따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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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요한복음 21장 19절 19.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1. 주님만 바라보며 살라  요즘 위기라지만 역사상 위기 아닌 때는 없었다. 요즘 공부가 힘들다지만 옛날에도 공부가 힘들었고 취직이 힘들다지만 옛날에도 취직이 힘들었다. 진짜 위기는 문제를 극복하는 정신 능력이 약해진 것이다. 왜 약해졌는가? 배신의 시대에 사회와 사람으로부터 수없이 배신을 당하면서 기본적인 믿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왜 주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가? 그때 기본적인 믿음을 얻고 각종 공포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잘못된 말 한 마디가 사람을 무섭게 죽일 수 있고 확신을 주는 말씀 한 마디가 사람을 거뜬히 살릴 수 있다.  사람은 약한 존재다. 강한 사람도 알고 보면 약하다. 유명한 권투 선수였던 알리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고 떠벌여서 별명이 ‘떠버리’였다. 나중에 그가 고백했다. “시합 때마다 두려워서 그렇게 떠벌였습니다.” 사람은 다 약하기에 확신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큰 시련이 있어도 나를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말라.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더 드리겠다면서 예배와 기도를 소홀히 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는다. 예배와 기도가 없으면 꽃이 꺾인 것처럼 처음에는 괜찮은 것 같아도 점차 영혼이 시들고 축복의 문도 닫힌다. 2. 주님의 은혜를 추구하라  사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존재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그날로 끝난다. 일의 성취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결국 일이 성취된다.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야 축복 받고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셔야 길이 열린다. 물론 은혜를 추구하며 살라는 말이 은혜를 받는 것에만 초점을 두라는 말은 아니다. 은혜를 받는 삶도 중요하지만 은혜를 나누는 삶도 중요하다. 행복은 은혜를 받을 때도 생기지만 은혜

좋은 만남을 만들어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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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룻기 4장 13-15절 13.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 위대함의 일부가 되라 >  요새 <월새기(월간새벽기도) 유튜브> 말씀으로 필자 자신도 은혜를 많이 받는다. 필자가 쓴 말씀 원고지만 은혜가 되니까 13분 분량의 말씀을 하루에 보통 5번 이상 듣는다. 어떤 날은 10번 이상도 듣는다. 전에는 <네트영어> 비전을 위한 영어 실력 감퇴를 막기 위해 쉴 때나 운전할 때 <유튜브>로 주로 영어 뉴스와 영어 설교를 들었지만 요즘은 중독된 것처럼 거의 <월새기 유튜브> 말씀만 듣는다.  필자는 잠을 잘 자는 편이지만 가끔 잠이 잘 안 들 때가 있다. 그때 침대에 누워 <월새기 유튜브> 말씀을 들으면 말씀의 은혜에 몰입되면서 대개 2편을 듣기 전에 잠든다. 반대로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몸이 힘들고 졸릴 때 <월새기 유튜브> 말씀을 들으면 말씀의 은혜에 몰입되면서 피곤과 지루함이 많이 가시고 졸음이 깬다. 신기하게도 잠자야 할 때는 자게 만들고 깨야 할 때는 깨게 만들니까 <월새기 유튜브> 말씀을 더 듣게 된다. 나이가 들어 심신이 약해지니까 말씀을 붙잡고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더 실감된다.  요새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싫다. 이해력이 떨어져 배우기도 힘들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천년영향력의 비전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 또한 집중력을 발휘해 한 가지 잘하는 것에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나 잘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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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3장 9-12절 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11.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2.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 원망을 극복하는 희망 >  어떤 사람이 아내가 병들었다. 정성스럽게 간호했지만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는 크게 낙심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은 상황을 패배 상태로 끝내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깨닫고 다짐했다. “비록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지만 이 상황이 내 나머지 인생 전체를 망가뜨리도록 하지 않겠다.” 그 후 그는 열심히 살면서 성공적인 뮤지션이 되었고 아내의 이름을 따라 자선기관을 만들어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하나님은 상황을 패배 상태로 끝내지 않는다. 사업에 실패하고 소중한 것을 잃고 심지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도 그 상황이 끝이 아니다. 그때 하나님은 늘 새로운 시작을 계획하신다. 계속 믿음의 길을 고수하고 상처와 아픔과 절망을 버리면 하나님은 더욱 놀라운 축복을 내려주신다.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가지라. 성도가 내세워야 할 것은 원망이 아닌 희망이다.  원망에게 희망을 빼앗기지 말라. 하나님 안에서 희망을 가지면 실망과 원망과 절망을 극복할 수 있다. 실망과 원망과 절망과 실망에 내 입술이 넘어가 “너는 이제 희망이 없어.”라는 식의 말을 하지 말라. 그런 말은 스스로 인생의 큰 장벽을 쌓는 것이다. 절망적인 말은 불화살처럼 위험한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그 상황에서 희망을 품고 주변에 전해주는 일이 성도의 할 일이다.  희망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 안의 희망을 전하는 일처럼 소중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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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에베소서 2장 16-18절 16.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17.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18.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  예전에 필자가 주일예배를 위해 밤새도록 말씀을 준비하다가 주일 아침에 깊이 잠들었었다. 아내는 한참 전에 교회로 먼저 간 상태였다. 그때 누군가 “띵똥!”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집을 잘못 찾은 것이었다. 그때가 예배 40분 전이었다. 하나님이 집을 잘못 찾은 사람을 통해 정신없이 자고 있던 필자를 깨워 예배에 늦지 않게 해주셨다. 작은 기적이다.  어느 날 아침 한 기독교 TV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어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필자와 만나고 싶다는 전화였다. 그 전화가 없었으면 필자는 세상을 떠났을지 모른다. 전화를 받고 일어나자 가스 불을 켜놓고 잠들어서 집안이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전화가 온 것도 작은 기적이다. 지금도 그와 같은 기적적인 은혜가 알게 혹은 모르게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삶의 곳곳에 미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확신하라. 그 확신을 가지면 잠깐의 실패는 있어도 인생 전체의 실패는 없다.  어느 추운 겨울에 한 목사가 어린 딸과 산책하는데 눈이 많이 쌓여 딸의 손을 붙잡아주려고 했다. 그때 혼자 뛰노는 것이 신나니까 딸이 아빠 손을 뿌리쳤다가 곧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때서야 딸이 말했다. “아빠! 손!” 그 다음부터 아빠가 큰 손으로 딸의 작은 손을 꽉 붙들어서 딸이 중심을 잃고 넘어지려고 할 때마다 넘어지지 않게 해주었다. 하나님이 붙들어주시면 잠시 중심을 잃는 일은 있어도 인생 전체가 무너지고 파산하는 일은 없다.  필자는 가끔 “예수님이 없었다면 내가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한다. 대학 4학년 때 장래에 대한 큰 불안이 밀려와

복된 자녀를 만드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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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창세기 27장 15-29절 ... 25.이삭이 이르되 내게로 가져오라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 야곱이 그에게로 가져가매 그가 먹고 또 포도주를 가져가매 그가 마시고 26.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27.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28.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29.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부모의 가장 중요한 사명 중 하나는 자녀를 복된 자녀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복된 자녀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헌신하는 삶을 가르치라  본문 앞부분의 4절을 보면 이삭은 자녀를 무작정 축복하지 않고 자신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자신에게로 가져다가 먹게 해서 그 별미를 받은 후 마음껏 축복하겠다고 했다. 자녀가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면 먼저 헌신을 가르치라는 암시다. 자녀를 우상처럼 키워서 받기만 하고 드리고 나누고 베풀 줄 모르게 키우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점차 멀어진다. 자녀에게 남을 배려하는 삶과 헌신하는 삶을 힘써 가르치라.  어떤 부모는 자녀에게 당부한다. “얘야! 어렵게 살거나 장애가 있거나 내면의 인격 문제가 아닌 외모나 외적인 문제로 따돌림 당하는 아이를 특별히 잘 살펴주고 그의 친구가 되어주라.” 그렇게 교육 받고 자란 자녀가 어떻게 복이 없겠는가? 하나님은 내적인 인격 문제가 아닌 외적인 문제나 편견으로 소외된 사람이나 장애인을 따돌리는 사람은 외면하지만 그런 소외된 사람이나 장애인을 힘써 살피려는 사람은 축복하신다.  요새는 선천적인 장애인보다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장애인이 더 많다. 나이가 많이 들면 누구나

Praying the Distance 오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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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8:1-8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오늘의 성구 누가복음 18:1-8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로새서 4:2 Devote yourselves to prayer, being watchful and thankful.  Colossians 4:2 케빈은 눈물을 닦으며 나의 아내 케리에게 쪽지를 내밀며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 부부가 우리 딸이 예수님을 다시 믿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 메모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성경책에서 찾은 것인데 격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메모 상단에는 “우리 아들 케빈을 위해”라고 쓰여 있었고, 그 밑에는 아들의 구원을 위한 기도가 적혀 있었습니다. Kevin wiped a tear from his eye as he held out a slip of paper for my wife, Cari, to read. He knew Cari and I were praying for our daughter to return to faith in Jesus. “This note 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