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리바 사건의 교훈

[ 틴토레토 : 바위에서 물을 뽑아내는 모세 ]



본문말씀 : 민수기 20장 10-13절


10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 므리바 사건의 교훈 >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기적적으로 구원받았다. 그러면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데 그들의 감사는 얼마 가지 못하고 광야 생활 중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수시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본문의 므리바 사건도 물이 없다는 원망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모세가 믿음으로 냉철하게 대응하지 못해 전체 이스라엘 공동체가 하나님과 다투는 것처럼 상징화된 므리바 사건이 생겼다. 므리바 사건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가?

1. 실패의 현장을 찾으라

 가데스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보낸 정탐꾼 다수의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믿음이 없는 모습을 보임으로 40년의 광야 생활로 진입하게 된 회한의 장소였다. 그런데 38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한 후에 다시 그곳에 이르렀다. 가나안의 꿈을 기필코 이루려고 실패의 현장을 다시 찾아 극복하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처럼 실패에서 다시 일어서려고 하라.

 일어설 때는 무작정 일어서기보다 생각하면서 일어서라. 실패 원인도 분석하고 실패할만한 태도가 있었다면 그 태도를 버리고 다시 일어서라. 대개 실패자에게는 실패할만한 태도가 있다. 약속을 잘 깨고 노력이 부족하고 사람을 무시하고 예의가 없고 독불장군처럼 고집스럽고 부정적이고 쓸데없는 논쟁을 일으키고 우선순위가 잘못된 태도 등을 힘써 버리되 그 모든 태도의 근원인 교만을 힘써 버리라.

 또한 실패했을 때 내게 감정적인 모습은 없었는지 성찰하라. 실패했으면 뜨거운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철한 이성을 작동시키라. 무엇보다 믿음을 가지고 일어서라.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셨다(마 17:20). 누구에게나 남들을 놀라게 할 만한 힘이 있다. 장벽이 있어도 비틀거리거나 좌절하지 말라. 현재 인생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갈 가능성이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누가 인물이 되는가? 그동안의 실패로 넘지 못할 것 같았던 장벽을 넘어선 사람이다.

 성공과 실패의 개념을 오해하지 말라. 일시적인 성공은 진짜 성공이 아니고 일시적인 실패는 진짜 실패가 아니다. 세상 승리는 상대적이어서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다. 그러나 남을 울려서 내가 웃고 남을 쓰러뜨려서 내가 일어서는 것은 좋은 승리가 아니다. 참된 승리는 절대적이고 공동체적이고 영구적이어야 한다. 일시적으로 패배했어도 용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서면 진짜 패배한 것이 아니다. 실패의 현장을 두려워하면서 피하지 말라. 실패의 현장을 피해서 승리하면 승리의 기쁨이 덜하지만 실패의 현장을 극복하고 승리하면 승리의 기쁨이 배가될 것이다.

2. 불평과 원망을 버리라

 실패를 극복하려고 일어선다고 곧 성공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이 심기일전해서 다시 가데스로 왔지만 곧 가뭄 문제가 터졌다. 그러자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냈다. 맞는 말을 해도 불평과 원망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교회에 대해 불평하면 그 말이 맞는 말이라도 교인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교회에도 도움이 안 된다. 교회의 허물이 보이면 안타까움의 표현은 혹시 해도 불평은 삼가고 잠깐의 불평은 혹시 해도 불평 체질은 되지 않도록 평소에 감사를 체질화시키라.

 사람은 관대해도 불평 대상이 될 수 있다. 때로는 관대하고 공정하기에 더 불평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처럼 사람은 감사보다 불평을 앞세워 살 때가 많다. 그 반대로 불평보다 감사를 앞세워 살라. 아무리 봐도 감사해야 하는데 불평부터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감사부터 하는 사람이 되라. 일할 때 불평하면서 일함으로 불행이 닥치게 하지 말고 감사하면서 일함으로 행복이 넘치게 하라.

 두 형제가 있었는데 부자인 동생은 늘 불평이 많았고 가난한 형은 늘 행복해했다. 어느 날 동생이 물었다. “형님, 행복의 비결이 뭐지요?” 형이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만 하면 돼.” 동생이 또 물었다.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가요?” 형이 대답했다. “좋아하는 일이 따로 있나,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면 좋아하는 일이 되지.”

 지금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의 의미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그 일을 통해 좋은 가치를 창출하고 그 일을 감사 조건으로 삼으라. 남과 싸우면서 돈과 권세를 추구하기보다 겸손하게 하나님을 추구하면서 감사하며 사는 것이 행복이다. 이기심에 빠진 자아를 버리고 좋은 일에 자신을 드리라. 맘에 들지 않는 환경에 대한 불평만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현실 속에서 복된 세상을 꿈꾸고 감사하면서 맡은 일에 힘쓰고 좋은 일에 자신을 드릴 때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다.

3. 분노와 혈기를 삼가라

 이스라엘이 불평하자 모세와 아론은 불평으로 맞대응하지 않고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 앞에서 엎드렸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다. 그때 모세가 혈기를 부리며 반석을 지팡이로 두 번이나 쳐서 물을 내었다(11절). 분노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더욱 잘못된 것이다. 분노하면서 벽을 치지도 말고 물건을 던지지도 말고 특히 사람을 때리는 일은 더욱 없게 하라.

 야고보서 1장 20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믿음의 핵심 증거 중 하나가 평안과 온유다. 힘들어도 온유함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성도답게 살라. 강한 공격은 강한 반작용을 부른다. 너무 강하게 나오면 좋은 사람이 떠나면서 점차 외로워진다.

 어떤 일에 대해 나쁜 면만 보고 자기 의를 과시하면서 혈기를 부리며 말하는 것을 경계하라. 잘 알지 못하면서 나쁜 면만 강하게 말하면 자기 심성도 나빠진다. 또한 내부 고발자인 자기 양심이 “네 자신도 나쁜 줄 알아.”라는 신호를 자꾸 보낸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내부 고발자인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고 겸손하게 자신부터 성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기의 죄와 허물과 비리가 들통 날 때가 온다.

 내부 고발자처럼 무서운 존재는 없다. 요새는 회장이 운전기사에게 혈기를 내고 폭언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녹음해 두었다가 유튜브에 공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내부 고발로 인해 오랫동안 쌓아왔던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 특히 주의를 기울여 들어야 할 내부 고발자는 자기 양심이다. 남을 강하게 비판하기 전에 “나는 어떤가?”라는 양심의 소리를 잘 경청하고 혈기와 분노를 힘써 삼가라. 내부 고발자인 사람이 볼 수 있고 더 무서운 내부 고발자인 양심이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혈기와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평안과 온유를 잃지 말라. 그러면 내부 지원자가 그것을 보고 감동 받아 나를 변호해 준다. 외부 비판자가 어떤 일로 비판하면 내부 지원자인 양심이 나를 변호하고 때로는 진짜 내부자가 나서서 항변한다. “그분이 잠깐 실수했지만 평소에는 헌신적으로 소리 없이 선을 베풀며 사십니다.” 내부 고발자인 양심의 소리를 경청하며 평안과 온유를 잃지 않으면 양심이 내부 지원자가 되고 진짜 내부자가 나를 변호해 주며 특히 하나님이 나를 변호해 주실 것이다.

4. 말씀에 힘써 순종하라

 모세가 혈기를 부리며 지팡이로 반석을 쳤을 때 반석에서 물이 많이 솟아나왔다(11절).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옳게 여기지 않고 그들의 분노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것이기에 그들이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다(12절). 분노는 불평만큼 잘못된 것이다. 분노는 믿음이 없는 것과 하나님의 거룩함을 해치는 것으로서 큰 심판이 따른다.

 본문 13절을 보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므리바란 ‘다툼’이란 뜻이다. 모든 원망과 불평과 분노와 혈기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다. 하나님과 다투면 가나안의 복은 멀어진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힘써 순종함으로 온유함을 체질화시키라. 다만 말씀에 순종할 때 거짓 말씀에 순종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거짓 예언의 특징이 있다. 거짓 예언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바탕으로 삼지 않고 자기 영성을 과시하고 사욕을 채우려고 영혼을 낚으려고 드리우는 낚싯줄이다. 또한 거짓 예언은 회개에 이르게 하기보다 낙심과 불안에 빠뜨리고 운과 요행을 추구하게 해서 자기 성찰을 빼앗는다. 리더가 계산적인 거짓 예언으로 속이는 것도 잘못이지만 팔로워가 거짓 예언에 잘 속는 것도 잘못이다.

 또한 하나님이 비밀로 두셔서 알지 못하게 한 것을 안다고 하면서 분수에 넘게 자기 지식을 자랑하는 것도 거짓된 삶이고 가정과 교회와 일생생활에서 책임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기적과 신비만 추구하는 것도 거짓된 삶이다. 언뜻 보면 기적을 체험했다고 자랑하는 것이 말씀에 순종하는 것보다 낫게 보이지만 사실상 기적을 체험했다고 자랑하는 것보다 소리 없이 힘써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더욱 복된 태도다.

 삶은 기적의 연속이다. 일상의 기적 외에 특별한 기적은 특별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나타난다. 말씀에 힘써 순종하면 얼마든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신앙생활을 할 때 너무 특별하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 계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자기 영성을 과시하려는 것은 영성이 없는 태도다. 거짓된 태도를 보이고 거짓된 말에 미혹되면 믿음도 자라지 않고 결국 고난을 자초하게 된다. 늘 바른 말씀을 잘 분별해서 듣고 힘써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복된 존재가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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