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게 사는 길

 

[ 권소영 : 대관령 ]


본문말씀 : 열왕기상 22장 41-49절


41 이스라엘의 아합 왕 제사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유다의 왕이 되니 42 여호사밧이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삼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수바라 실히의 딸이더라 43 여호사밧이 그의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행하며 돌이키지 아니하고 여호와 앞에서 정직히 행하였으나 산당은 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이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였더라 44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니라 45 여호사밧의 남은 사적과 그가 부린 권세와 그가 어떻게 전쟁하였는지는 다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6 그가 그의 아버지 아사의 시대에 남아 있던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47 그 때에 에돔에는 왕이 없고 섭정 왕이 있었더라 48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49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



< 복되게 사는 길 >

 본문에는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 왕의 치적이 간략하게 그려져 있다. 본문이 주는 교훈으로써 복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참된 화평을 추구하라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 제4 년에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35세에 남유다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25년간 다스렸다(41-42절). 그는 부친 아사처럼 여호와 앞에서 정직하게 행했지만 화평을 추구하겠다고 산당을 폐하지 않아서 백성이 여전히 산당 제사를 드리며 분향했다(43절). 또한 북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냈다(44절). 특히 그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의 정략결혼으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간의 분쟁을 종식시켰지만 그 정략결혼이 나중에 우상숭배와 정쟁을 초래했다.

 화평을 추구하는 것은 좋지만 전제가 있다. 그것은 의의 토대 위에 형성된 화평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의하고 모욕감을 주고 비굴함을 강요하며 형성된 화평은 참된 화평이 아니다. 이길 힘이 있어도 대의를 위해 져 주고 다툼과 갈등을 힘써 절제하는 참된 화평을 추구하라. 그것을 위해 일상 중에 당하는 모욕과 수치를 영혼과 정신을 키우는 밑거름으로 삼으면서 공감 능력과 타인 감수성을 기르라.

 잠시 일을 멈추고 남과의 대화도 멈추고 하루에 잠깐만이라도 하나님을 묵상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라. 그러면 화평의 기운이 싹튼다. 일상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숨결을 좀 더 느끼려고 묵상하고 말이 아닌 삶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려고 하면 내가 가는 곳마다 신비한 화평의 기운이 환경과 상황을 바로잡을 것이다. 그렇게 가는 곳마다 화평의 기운이 깃들게 하는 피스메이커가 되라.

2.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라

 여호사밧 왕은 도덕적 개혁 운동도 펼쳐서 우상 신전의 남창들인 남색하는 자들을 그 땅에서 쫓아내었다(46절). 많은 도덕적인 개혁 과제 중 남색하는 자의 추방을 앞세운 것은 그만큼 하나님이 남색을 가증하게 여기신다는 암시다. 동성 행위자는 다른 것은 다 끊어도 그 행위만은 끊지 못하겠다면서 신이 원래부터 그렇게 만든 자신을 왜 정죄하느냐고 항변한다. 그것은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 탓과 하나님 책임으로 돌리는 모습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중독 행위가 있다. 중독자는 그 중독  행위를 끊기 힘들어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그를 원래부터 그것에 중독된 존재로 창조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그 중독된 것을 끊겠다고 각오하고 싸우라. 하나님이 자신을 원래부터 어떤 것의 중독자로 창조하셨다는 변명을 버리라. 중독 행위를 끊기 힘들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줄 알고 끊으려고 힘써야지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하면 안 된다.

 누구에게나 미숙하고 부족하고 어리석은 부분이 있다.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려고 힘쓰라. 기독교의 도덕성은 사회적인 윤리나 도덕 이상의 뜻을 가지고 있다. 선한 심성과 인간성은 기독교적인 도덕성의 기초다. 잘살아도 인간성이 나쁘면 행복할 수 없고 앞날이 좋을 수 없다. 인간성을 지켜야 사랑을 지켜낼 수 있고 욕심과 이기심과 인격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

3. 경제적인 책임을 다하라

 여호사밧은 바른 통치로 남유다의 군사력을 강화시켜 에돔을 정벌하고 에돔에 섭정 왕을 두었다(47절). 또한 무역을 통해 경제력도 크게 증진시켰다. 복된 삶을 살려면 경제적인 책임 이행은 필수적인 것이다. 돈은 나쁜 것이 아니다. 성경은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다(딤전 6:10). 돈은 사람과 인격과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선하게 될 수 있다. 돈에 대한 나쁜 편견을 버리라. 영적인 복만 사모하고 물질적인 복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선한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정직하고 정당하게 돈을 힘써 벌라. 돈을 잘 쓸 줄 모르는 사람이 불의하게 돈을 버는 모습을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은 결코 복된 모습이 아니다. 개인적인 내적 평안도 중요하지만 시대적인 사명 이행도 중요하다. 자기 사명에 눈뜨고 충실해야 참된 평안이 주어진다. 영적인 삶에만 탁월한 차선책의 삶보다 영적인 삶과 육적인 삶에서 동시에 탁월한 최선책의 삶을 추구하라.

 의로운 부자의 꿈을 품고 힘쓰라.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지 말고 땅도 세심하게 살피라. 소중한 돈이 잘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 넘어가는 것을 그냥 방관하지 말라. 가난한 것이나 혼자 평안한 것으로 만족하지 말라. 돈 욕심은 버리더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사명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의의 사회적인 확산에 일조하기 위해 의로운 부자가 되려는 경제적인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 복된 인물이 된다.

4. 좋은 사람과 함께하라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해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했는데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해서 오빌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48절). 그때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십시오.”라고 하면서 다시 선단을 조직하자고 한 제안을 여호사밧은 거절했다. 잘못된 왕과 교류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줄 알고 거절했을 것이다. 그처럼 여호사밧은 경건하게 살려고 했지만 그의 아들 여호람은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그의 아내 아달랴의 영향으로 악한 길을 걸었다.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있느냐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대개 좋은 사람이 곁에 있다. 누구와 시간을 보내고 대화하고 같이 어울리느냐에 따라 사람은 크게 달라진다. 그래서 은혜로운 가정환경과 교회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좋은 사람이 되어 좋은 환경을 만드는 주체가 되고 더 나아가 좋은 사람과 같이 지내려고 하라. 사람을 차별하라는 말이 아니다. 모든 사람을 소중한 인격체로 존중하면서도 좋은 사람을 곁에 두라는 말이다.

 좋은 책을 가까이하는 것도 좋지만 좋은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은 더 좋다. 좋은 책, 좋은 사람, 좋은 마음은 미혹과 타락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준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더 기도로 대화하라. 그러면 삶의 무게가 덜어지고 우울함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지고 시야가 넓어지고 가슴이 펴진다. 또한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주고 싶은 마음이 넘치면서 결국 줄 수 있는 능력도 넘치게 된다.

< 무응답도 응답이다 >

 열왕기상의 핵심 주제는 간단하다. 그 주제는 하나님을 버리면 망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면 흥한다는 것이다. 이제 자기 우상화에 빠지지도 말고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우상으로 섬기지도 말라. 오직 하나님만 믿고 자신의 사명을 따라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아갈 때 하나님은 큰 복으로 함께하실 것이다. 가끔 인생의 장벽을 만나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그러면 상처가 상급으로 변하고 위기가 기회로 변할 것이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신기할 정도로 응답된다. 때로는 아주 사소한 기도도 잘 응답된다. 어제 사소한 기도가 응답되었어도 오늘 또 사소한 기도를 드리면 또 응답된다. 결국 기도는 응답이다. 때로는 응답이 없는 것도 최선의 응답이다. 하나님이 가끔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거절로 여기지 말라. 하나님의 더 좋은 찬란한 계획이 있기에 내가 원하는 모양의 응답을 유보하신 것이다. 때로는 하나님이 그냥 조용히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응답이다.

 최근에 한 외부 교인이 깊은 고민이 담긴 상담과 기도 제목이 담긴 메일을 필자에게 보내 왔다. <월간새벽기도> 집필로 시간이 없어 그런 개인적인 상담과 기도 제목은 거의 응답해 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 교인의 상담과 기도 제목만은 응답해야 할 것 같아서 일주일 내내 그 메일을 열어 놓은 상태로 수시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다. 기왕에 응답하려면 성의 있게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월새기> 집필 시간도 부족하고 우리 교인들을 위해 기도할 시간도 적은데 외부 교인의 상담과 기도 메일까지 신경을 쓰니까 마음의 고통이 심해졌다. 그리고 묵상 중에 깨달은 내용을 몇 번이나 메일을 보내려고 고민하다가 적확한 응답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결국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에 맡기는 기도를 한 후 그에게 답장 메일 쓰는 것을 포기했다.

 누군가가 깊이 고민하며 보내온 메일에 일일이 응답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상황에서 상대 입장에서는 답장 메일이 없으니까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무시한 것이 아니라 깊은 고민 가운데 답장을 포기한 것이었다. 사람이 답장을 포기한 것에도 무언의 답장과 고민의 흔적이 있다. 하물며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은 것에는 더욱 깊은 무언의 응답과 고민의 흔적이 있었을 것이라고 믿으라.

 하나님 안에서는 무응답도 응답이다. 즉 무응답은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최선의 응답을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가끔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더욱 기도할 때다. 지난 몇 주간 필자는 토요일 저녁에 잠이 잘 오지 않아서 그 시간에 누워서 눈 감고 더 절실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성도에게는 불면의 시간도 기도와 창조와 충전 기회다. 어려운 때일수록 범사에 감사하며 기도하면 그 기도는 더욱 능력 있는 기도가 될 것이다. 그런 믿음의 기도로 복된 인물의 길을 예비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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