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은 결국 패망한다

 

[ 도메니코 페티 : 티와 들보의 우화 ]


본문말씀 : 사사기 9장 22-29절


22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23 하나님이 아비멜렉과 세겜 사람들 사이에 악한 영을 보내시매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하였으니 24 이는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에게 저지른 포학한 일을 갚되 그들을 죽여 피 흘린 죄를 그들의 형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의 손을 도와 그의 형제들을 죽이게 한 세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게 하심이라 25 세겜 사람들이 산들의 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엿보게 하고 그 길로 지나는 모든 자를 다 강탈하게 하니 어떤 사람이 그것을 아비멜렉에게 알리니라 26 에벳의 아들 가알이 그의 형제와 더불어 세겜에 이르니 세겜 사람들이 그를 신뢰하니라 27 그들이 밭에 가서 포도를 거두어다가 밟아 짜서 연회를 베풀고 그들의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하니 28 에벳의 아들 가알이 이르되 아비멜렉은 누구며 세겜은 누구기에 우리가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그가 여룹바알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신복은 스불이 아니냐 차라리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후손을 섬길 것이라 우리가 어찌 아비멜렉을 섬기리요 29 이 백성이 내 수하에 있었더라면 내가 아비멜렉을 제거하였으리라 하고 아비멜렉에게 이르되 네 군대를 증원해서 나오라 하니라



< 악인은 자중지란에 빠진다 >

 아비멜렉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삼 년에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심으로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을 배반했다(22-23절).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악한 영을 보내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악의 원천이란 말이 아니라 악의 활동을 용인했다는 말이다. 결국 요담의 말대로 아비멜렉과 아비멜렉을 왕으로 옹립한 세겜 족속들 사이에 큰 반목이 생겼다.

 당시 아비멜렉은 아루마를 수도로 삼고 점차 왕권을 강화했는데 그때 세겜 사람들은 정권에서 점차 소외되면서 배신감에 젖어 산꼭대기에 사람을 매복시켜 아비멜렉을 정찰하고 산적 떼처럼 행인을 강탈하게 했다(25절). 그 사실이 아비멜렉에게 알려졌다. 그때 세겜 지도자 에벳의 아들 가알 형제가 포도주 연회를 베풀고 신당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며 아비멜렉을 저주했다(27절). 그리고 세겜은 세겜 원주민이 다스려야 한다는 정통성과 지역감정을 내세워 세겜 사람들을 선동한 후 아비멜렉에게 선전포고를 했다(29절).

 악한 세력들이 자중지란에 빠지는 모습을 보라. 그것이 악한 세력의 결론이다. 성도는 어떤 것도 부러워할 것이 없는 존재다. 남과 비교하면서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지 말라. 악인의 잠깐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반대로 지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고 있다면 현재 고난이 있고 축복과 보상이 없어도 낙심하지 말라. 끝까지 사명을 따라 제자리를 지키면 극적인 반전의 때는 반드시 온다.

 의인은 돋는 햇볕처럼 점점 생기를 찾지만 악인은 어둠 속을 걷다가 넘어져도 깨닫지 못한다. 의인은 고난의 의미를 해석하는데 탁월하지만 죄인은 자기 삶의 징조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지금은 부족해 보여도 찬란한 꿈과 비전을 가지고 의와 진리를 따라 살라. 진리의 길은 포장도로가 아닌 비포장도로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비포장도로다. 악인의 일시적인 형통이나 매혹적인 지름길에 미혹되지 말고 현재의 슬픈 현실보다 찬란한 내일을 더욱 볼 줄 알라.

< 악인은 결국 패망한다 >

 성도를 가장 낙심하게 만드는 일이 있다. 그것은 악인의 형통한 모습을 보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가끔 신앙에 회의가 든다. 왜 악인이 형통한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둘째는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버림받은 사람은 잠깐은 형통한 것처럼 보여도 그 형통함 때문에 죄를 자각하지 못하고 영원히 망한다.

 치사율이 높은 병은 대개 자각 증상이 없다. 암도 초기에 발견되면 치유가 쉽지만 몸이 아파 병원에 가보면 대개 암이 상당히 진전되어 때가 늦은 것이다. 악인의 형통은 암이 걸렸는데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것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제게 죄가 있으면 그 죄를 빨리 깨닫도록 제 길을 막아주소서.”

 죄가 있고 잘못된 길로 나갈 때 길이 막히는 것은 큰 복이다. 그때 형통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무서운 일이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예배와 말씀과 기도를 멀리했는데도 사업이 잘되고 손대는 일마다 잘된다면 잠깐은 형통한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더 무서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형통함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 반대로 하나님 뜻대로 살려고 하는데 현재 사는 것이 힘들어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맡은 사명을 이루고 비전을 포기하지 말라. 의인의 고난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다.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면 이 땅에서 호강하지 못한 것에 대해 더욱 큰 보상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악한 세력은 조만간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서로 반목하다가 심판받고 패망할 것이다. 하나님은 악은 악대로 의는 의대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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