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버려야 할 4가지

[ 에티엔 들론 : 천지창조 ]



본문말씀 : 사사기 20장 1-16절


... 11   이와 같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12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다니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13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들 곧 그 불량배들을 우리에게 넘겨 주어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거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들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14 도리어 성읍들로부터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라 15 그 때에 그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 명이요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 택한 자가 칠백 명인데 16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



< 삶에서 버려야 할 4가지 >


1. 위선과 비진실

 자기 첩의 사체 훼손을 통한 레위인의 선동으로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1절). 그때 이스라엘 자손이 일의 자초지종을 묻자 레위인이 대답했다. “내가 첩과 함께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는데 기브아 사람들이 밤에 내가 묵던 집을 에워싸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 죽였습니다.” 레위인은 첩을 자기 대신 내 주어서 죽은 사실은 쏙 뺀 채 그들이 욕보여 죽였다는 말만 했다. 교활한 모습이다.

 그 레위인은 계속 말했다. “내가 첩의 시체를 거두어 쪼개서 이스라엘 온 땅에 보낸 것은 그들이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체를 훼손한 자신의 사악함은 외면한 채 일부 기브아 불량배들의 행위를 기브아 사람들 전체의 악행인 양 과장해 전 이스라엘의 공분을 일으켰다. 그 레위인의 위선과 비진실이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켰다. 위선은 자기 영혼의 최대 위기도 초래하지만 공동체의 최대 위기도 초래한다.

2. 반목과 분열

 레위인의 말을 듣고 전 백성이 기브아 사람들을 치자고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왕이 없어서 혼란한 사사 시대에 기브아 사건으로 전 이스라엘이 일체감을 보였다(11절).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후 지파 간에 반목하며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공동체가 발전하려면 구성원들의 단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단합은 공동의 적이 있거나 공동 목표가 뚜렷하면 굳건해진다.

 왜 하나님은 공동체에 큰 역경을 주시는가? 분열의 습성을 버리고 하나 됨의 습성을 배양하라는 뜻이다. ‘배타적인 자신의 벽’도 잘 깨면서 ‘배타적인 우리의 벽’은 더욱 잘 깨라. 이간질은 사탄의 가장 유용한 공격 수단임을 깨닫고 하나 됨에 힘쓰라. 다양성은 인정하되 늘 다양성 속에서 일치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라.

3. 자존심과 분노

 총회 후 이스라엘 지파들은 베냐민 지파에게 사람들을 보내 말했다. “너희가 저지른 이 악행이 어찌 됨이냐? 이제 기브아의 그 불량배들을 넘겨서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거하게 하라.” 그때 베냐민 자손은 그 권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기브아에 모여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려고 했다(13-14절). 아마 미스바에 모인 40만 대군을 보고 분개했거나 자존심과 배타심과 적개심 때문에 그런 비이성적인 결정을 했을 것이다.

 율법에 의하면 기브아 불량배들은 사형에 처해야 했다. 그 상황을 그냥 넘기면 율법의 권위가 실추되기에 불량배들을 넘겨달라고 했지만 베냐민 자손은 자존심을 내세워 듣지 않고 오히려 베냐민 지파의 26개 성읍에서 나온 군사들이 기브아에 모여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려고 했다. 그처럼 자존심과 분노로 인한 감정적인 대응은 늘 큰 화를 부른다. 자존심 때문에 축복의 댐이 무너진 인생이 한두 명이 아니다.

4. 과신과 교만

 그때 26개 성읍들로부터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26000명이고 그 외에 기브아 주민 중에 택한 자가 700명으로 전체 숫자는 26700명이었다. 기브아 주민 중에 선택한 700명은 다 왼손잡이라서 물매로 돌을 던지면 정확히 맞히는 막강한 용사들이었다(15-16절). 그래서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약 15배에 가까운 이스라엘 연합군에 대항해 과감히 전쟁을 일으켰다. 그 과신이 지파가 거의 전멸되는 비참한 결말을 낳았다.

 지나친 과신은 비극을 낳는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지나치게 믿어서 자랑을 일삼고 분수에 넘게 행동한다. 그러나 신앙과 신념은 다르다. ‘주님을 믿는 신앙’은 복을 예비하지만 ‘자신을 믿는 신념’은 오히려 패망으로 이르는 지름길이 된다. 좁은 말구유에 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자신에 대한 과신을 버리고 늘 겸손하기를 힘쓰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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