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분별력을 가지라

[ 리플 로나이 조제프 : 크리스마스 ]



본문말씀 : 사사기 18장 1-10절


1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그 때에 거주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그 때까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하였음이라 2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그들의 가족 가운데 용맹스런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3 그들이 미가의 집에 있을 때에 그 레위 청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하니 4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이러이러하게 나를 대접하고 나를 고용하여 나를 자기의 제사장으로 삼았느니라 하니라 5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서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 하라 하니 6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니라 7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주하며 시돈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평온하며 안전하니 그 땅에는 부족한 것이 없으며 부를 누리며 시돈 사람들과 거리가 멀고 어떤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8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하니 9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10 너희가 가면 평화로운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 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는지라



< 받은 소명에 전념하라 >

 사람들은 대부분 복을 좋아하고 추구하지만 모두가 복을 얻지는 못한다. 또한 복을 얻어도 그 복을 다 오래 지속시키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은 세상적인 복을 얻고 더 망하는 길로 간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복을 얻고 그 복을 행복한 삶으로 연결시킨다. 그처럼 받은 복을 잘 지켜내고 행복으로 연결시키라.

 당시 단 지파는 스스로 살 길을 찾아 거주할 땅을 찾고 있었다(1절). 결국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5명의 정탐꾼을 북쪽으로 보냈다. 그들은 정탐꾼을 보내면서 찬란한 신천지를 얻는 꿈을 꾸었겠지만 이미 얻은 복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신천지의 복을 새롭게 얻는다 한들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새로운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받은 복을 잘 지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더욱 중요하다.

 정탐꾼들이 북쪽으로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집에 유숙하게 되었다(2절). 그리고 그 집에 있는 레위 청년에게 어떻게 그 집에 있게 되었는지 물었다. 레위 청년은 삯을 받고서 미가의 제사장으로 고용된 것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제사장직의 고귀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천박한 직업의식을 드러낸 것이다. 이 장면은 당시 종교적 부패상을 잘 보여준다. 사역자에게 거룩한 소명의식이 사라지는 것은 그 사회의 어두운 앞날을 예고한다.

 사역자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성도는 소명받은 존재로서 금전적인 이익은 없어도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살아야 한다. 구원의 은혜가 값없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성직자들은 직업의식에 빠져 물질을 위해 사역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사역자는 금전적인 이익을 생각하며 살지 말아야 하고 반면에 일반 성도들은 사역자가 금전에 관심이 없이 소명에 전념하도록 최대한 금전적인 협조를 해 주어야 한다.

< 바른 분별력을 가지라 >

 레위 청년이 제사장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정탐꾼들은 기복적이고 무속적인 신앙색채를 드러내며 말했다. “하나님께 물어 우리가 가는 길이 형통할는지 알게 하라(5절).” 그들은 레위 청년이 에봇과 드라빔을 사용해 예언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렇게 부탁했을 것이다. 그때 제사장 청년이 짐짓 권위 있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평안히 가라. 너희가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다(6절).” 대단한 쇼맨십처럼 느껴진다.

 그 청년의 말을 듣고 정탐꾼들이 떠나 북쪽 라이스에 이르러 그곳을 살펴보았다. 그곳 사람들은 평온하고 안전하고 부유하게 독립적으로 살고 있었다(7절). 정탐꾼들이 그런 라이스의 상황을 정탐한 후 돌아와 말했다.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그 땅을 보니까 매우 좋았다. 가만히 있지 말고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하지 말라. 하나님이 그 땅을 너희 손에 넘겨주셨다(9-10절).”

 그 말을 보면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듯이 라이스 땅을 자신들의 손에 넘겨주신 것처럼 믿음의 말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단 지파의 전쟁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신들의 정욕을 쫓아 행한 전쟁이었다. 자신들이 기업으로 받은 땅조차 지키지 못하고 또한 우상숭배에 깊이 젖은 상태에서 마치 성전을 수행하듯이 하는데 얼마나 앞뒤 상황이 맞지 않는 분별력 없는 태도인가?

 가끔 보면 자기 정욕대로 살면서 입으로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라고 수시로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분별력 없는 공허한 말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무엇이고 참된 성공이 무엇인지를 잘 분별해야 한다. 요새 지도자가 경제문제에서 성공하면 성공적인 지도자처럼 생각하기에 경제문제로 생명문제를 소홀히 할 때가 많다. 그러면 성공해도 후유증이 크다. 단순히 ‘성공적인 경제인’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공적인 신실한 경제인’이 필요하다. ‘성공적인 지배자’와 ‘위대한 지도자’는 다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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