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살라

 

[ 제니퍼 로머스 : 27마리의 새 ]


본문말씀 : 여호수아 5장 10-12절


10 또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며 11 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의 소산물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라 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살라 >

 유월절이 어떤 날인가? 유월절은 ‘진노의 사자가 양의 피가 뿌려진 이스라엘 집을 넘어간 날’이란 뜻이다. 유월절에 양의 피가 뿌려지지 않은 애굽 집들에는 초태생이 죽는 심판이 임했지만 양의 피가 뿌려진 이스라엘 집에는 그 심판이 임하지 않았다. 결국 그 재앙으로 견디다 못한 애굽 왕 바로가 출애굽을 허락함으로 이스라엘이 해방되었다. 그 해방을 기념한 절기가 유월절로서 이스라엘의 독립기념일 같은 절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할례를 행한 후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다. 한국 성경에 나오는 “유월절을 지켰으며”란 표현은 원어적인 의미로는 “유월절 잔치를 벌였으며”란 뜻에 가깝다. 눈앞에 여리고성이 보이는데 그 성 앞에 있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 잔치를 벌인 것이다. 큰 전쟁을 앞두고 잔치 기분이 나지 않았을 텐데 그렇게 잔치를 벌인 것은 가나안 정복 전쟁의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승리의 확신이다. 실제 전쟁에서 이기기 전에 마음의 전쟁에서 먼저 이겨야 한다. 성도의 싸움은 ‘승패를 걸고 싸워서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이미 이긴 상태에서 싸우는 싸움’이다. 기도가 주는 가장 큰 축복은 승리의 확신이 커지는 것이다. 성도는 구원을 받고 천국 시민이 될 것이 확정된 존재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받아야 할 축복의 99%는 다 받았다. 혹시 경제적 축복이나 사회적 축복을 받지 못해도 이미 다 받은 것이나 다름없기에 늘 기뻐하며 살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도 “다 받았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그처럼 이미 승리한 존재로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늘 잔치하는 마음으로 살라. 살다보면 때로 어려운 일도 만난다. 그때 너무 좌절하지 말라. 이미 이긴 존재이고 다 받은 존재란 확신 가운데 살라. 특히 하나님 아버지가 내 아버지임을 결코 잊지 말라. 하나님 아버지는 사랑하는 자녀의 싸움을 외면하지 않고 반드시 승리하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 승리자로서 치열하게 살라  >

 유월절 의식을 행한 후 이튿날에 그 땅 소산, 즉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다. 얼마나 오래 만에 먹어보던 음식인가? 무교병이란 ‘누룩 없는 떡’이란 뜻이다. 빵은 누룩으로 부풀려야 맛이 있는데 무교병은 맛으로 따지면 맛없는 음식이지만 꿀맛이었을 것이다. 40년 동안 만나만 먹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게 가나안 땅 소산을 먹은 다음날 아침 그들은 신기한 일을 목격했다. 40년 동안 끊임없이 내리던 만나가 그친 것이다. 만나가 신비하게 내리는 것만이 기적이 아니다. 매일 내리던 만나가 신비하게 그치는 것도 기적이다.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신 광야에서부터 먹기 시작했다(출 16장). 그때는 애굽에서 가져온 음식이 바닥이 난 절망적인 상태였다. 그때부터 하늘에서 만나가 내렸다. 그렇게 40년 동안 내리던 만나가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게 된 시점에서 중단되었다. 하나님은 필요를 채워주는 분이지만 맹목적 의뢰는 용납하지 않으신다. 승리의 믿음은 나태와 게으름을 조장하는 것이 되면 안 된다. 신앙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미 승리한 존재이지만 승리의 환상에 젖어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은 승리를 주신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사람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들은 하나님은 이적을 통해서라도 이뤄주지만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각자 열심과 성의 있는 노력으로 자신의 달란트를 썩히는 일이 없게 하신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서 필요한 음식을 구할 수 있었을 때가 되자 비로소 하늘 창고를 닫으시고 더 이상 만나를 내리지 않으셨다.

 가끔 하나님이 하늘 창고를 닫으실 때는 하늘로부터 초자연적인 능력만을 고대하여 눈만 껌벅이고 있어야 할 때가 아니라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면서 땀샘을 열어야 할 때다. 하나님은 책임 있는 삶을 원하신다. 가끔 신앙이 뜨거워졌다고 멀쩡한 직장을 다 내버려두고 교회에 와서 기도만 하는 사람이 있다. 교회에 자주 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모든 일을 다 팽개치고 교회에 와서 살려고 하면 안 된다. 늘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되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열심히 해서 크신 하나님의 복을 예비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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