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도구화하지 말라

[ 제임스 티소 :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를 붓다 ]



본문말씀 : 사무엘상 14장 24-46절


... 43 사울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가 행한 것을 내게 말하라 요나단이 말하여 이르되 내가 다만 내 손에 가진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을 뿐이오나 내가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44 사울이 이르되 요나단아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46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 추격하기를 그치고 올라가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 법을 도구화하지 말라 >

 일전에 주식 51%를 가진 작은 언론사 대표가 자신이 영입하고 이사로 취임시킨 기자들에 의해 해임되는 일이 벌어졌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그런 일이 이뤄진 것은 회사의 법인 등록을 위해 형식적으로 만든 정관을 이사 기자들이 교묘하게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 정관에는 이사들이 다수결로 대표이사를 해임시킬 수 있는 법 조항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법 조항을 이용한 것이다.

 그때 미국 장기 출장을 간 대표에게 한 이사가 가서 다른 대화를 하는 척 하다가 “다른 이사에게 임시 사회권을 넘기시죠.”라고 하니까 그 대표가 얼떨결에 “그러세요.”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비밀리에 녹취해서 한국에 돌아와 2명의 이사와 1명의 사외이사가 이사회를 열어 대표이사를 해임시키고 그 법적 근거로 삼았다. 그런 비상식적인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기자들이 셀럽 기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법이 자리 찬탈의 도구가 되는 사례는 무수히 많다.

 예전에 한 작은 신생 교단이 법인 등록을 위해 형식적으로 이사회를 구성하고 정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교단 운영은 교단 총회 법을 따라 했다. 매년 총회가 열리면 총회 법 한 조항 수정에는 촉각을 곤두세워도 이사회 정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뒤늦게 교단에 가입한 A 목사가 교단 리더들에게 불만을 품고 반대 여론을 일으키려고 어디서든지 리더를 무너뜨리는 2대 공격 포인트인 돈 문제와 법 문제를 활용했다.

 A 목사는 교단 리더들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총회 법을 샅샅이 살폈는데 리더십에 타격을 줄 결정적인 법 조항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리더들의 멱살을 붙잡고 “당신들 물러가!”라고 할 수 없으니까 나중에는 형식적인 정관이던 이사회 정관까지 샅샅이 살폈다. 마침내 이사회 정관에서 교단 리더십을 흔들만한 한 조항을 발견했다. 그 조항과 함께 작은 재정 문제를 꼬투리로 잡아 평안했던 교단을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그처럼 법이 리더십을 흔드는 도구가 되는 사례도 무수히 많다.

 법을 돈과 자리를 빼앗는 도구로 삼지 말라. 정당하게 돈과 자리와 소유를 추구하라. 뒤늦게 들어온 사람이 앞서 헌신해 공동체를 일으킨 사람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법조문과 돈 문제를 내세우는 태도는 지극히 삼가야 한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수 년 혹은 수십 년의 과거를 샅샅이 살피면 잘못된 것 몇 개는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을 꼬투리로 삼아 앞선 사람을 밀어내고 자기 입지를 확보하려는 삶은 야비한 삶이다.

< 하나님의 심판을 믿으라 >

 법은 인간 사회를 유지시키는 근간으로서 사람. 특히 약자를 보호하려고 제정된 것이다. 문제는 힘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이 대중을 다스리려고 법을 고상하게 악용하는 것이다. 그처럼 악용된 법에 당한 사람은 법을 두려워하게 된다. 옛날에는 법의 이름으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았다. 요즘은 아무리 법을 악용해도 옛날처럼 법을 내세워 무조건 죽이는 시대도 아닌데 왜 그렇게 법을 두려워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을 악용하면 누구라도 명예까지 떨어뜨리며 괴롭히고 제거하는 폭력적인 도구가 될 수 있기에 무서운 것이다.

 최근에 한 사회 운동가가 우울증에 빠졌다. 사회 운동의 정당성은 의에서 나오는데 그 운동의 정당성을 훼손하려고 반대 세력이 별건 수사로 그가 주도해 만든 법인의 수십 년 간의 수만 번의 카드 사용 내역에서 몇 십만 원의 잘못 사용된 지출까지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추궁하고 심지어는 가족과 지인의 개인 계좌까지 탈탈 털었기 때문이다.

 수사를 명목으로 남의 사생활이 깃든 지출들까지 샅샅이 들여다보고 언론에 그 내용을 슬슬 흘리는 것은 프랑스 혁명 후에 반대 세력을 단두대로 보내는 것보다 더 나쁜 고상한 마녀사냥과 같은 행위다. 그런 행위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용납되면 안 되기에 의도적인 별건 수사를 엄금하는 법을 속히 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이 누군가를 제거하는 도구로 얼마든지 악용되거나 악용 유혹을 받기 때문이다.

 그 사회 운동가는 다른 고초는 다 견뎌도 가족들의 수십 년 개인 계좌 기록까지 샅샅이 털리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우울해진 것이다. 그렇게 수사를 명목으로 인생과 가족 전체를 탈탈 터는 것은 여자를 끊임없이 뒤따르며 위협하는 스토커 같은 행위다. 그래서 목숨과 투옥을 겁내지 않던 사회 운동가조차 가족까지 샅샅이 털며 망신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 수사로 인해 우울증에 빠진 것이다. 집요한 별건 수사는 포악한 왕정 시대나 독재 시대에 목숨을 빼앗는 것보다 더 사람을 침묵시킬 수 있다.

 마녀사냥을 이용하는 권력과 언론과 유튜브에 놀아나지 말라. 가족을 건드려 누군가를 제거하려는 악랄한 모습을 보고 좋아하면서 유튜브 슈퍼챗을 날리지 말라. 남을 부당하게 조롱해서 한 맺히게 하면 언젠가는 자신도 똑같이 당한다. 특히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 대상이 된다.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믿으라. 하나님을 굳게 붙잡고 나아가면 점차 인간관계의 갈등도 풀리고 하나님이 억울함도 풀어주신다. 이 땅에서 풀어지지 않으면 천국에서 풀어 주실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다시 일어서서 꿈과 비전을 향해 나아가라.

< 사울과 요나단의 갈등 >

 본문에는 사울 왕의 명령으로 인한 그의 아들 요나단과의 갈등 상황이 그려져 있다. 요나단과 그의 무기를 든 소년의 맹활약으로 믹마스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극적으로 블레셋을 물리쳤다. 그때 소극적으로 방어하던 사울 왕이 뒤늦게 나서서 명령했다. “모두 금식하라. 적들에게 복수할 때까지 이 명령을 어기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24절).” 당시에 왕의 명령은 곧 법이었는데 요나단은 왕이 금식 명령을 내린 줄 모르고 꿀을 먹었다.

 그때 한 사람이 와서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 왕께서 금식을 선포하고 어기는 사람은 저주받는다고 했습니다.” 요나단은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아버지께서 잘못하신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꿀을 조금 먹어도 힘이 생기고 눈이 밝아졌는데 지금 같은 때는 금식을 선포하지 않아야 더 크게 승리할 수 있을 텐데(29-30절).” 그 요나단의 말은 아마 누군가에 의해 순식간에 사울 왕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그때 사울은 마음이 심히 불편했을 것이다.

 사울은 승리의 공적이 전적으로 아들 차지가 되지 않도록 승리 후에 뒷북치는 적극성을 또 보이면서 말했다. “우리가 밤에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동틀 때까지 그들 중에 한 사람도 남기지 말자.” 제사장 아히야가 사울의 결정이 경솔하고 어리석은 결정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의 뜻을 묻자고 했다. 대제사장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 사울이 하나님께 물었다. 그러나 그날에 하나님이 대답하지 않으셨다(37절). 그러자 사울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이유를 찾겠다고 나섰다.

 어떤 결정에 대해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다는 이유로 범인을 색출하겠다면서 아들 요나단이 지목되어도 죽이는 벌을 내리겠다고 하는 것은 최종 리더의 언행으로서는 너무나 경솔한 언행으로서 시기심으로 인해 이성과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폭군적인 언행이었다. 그런 언행이 너무 비정상적이니까 백성들은 조용히 있었다(39절). 그리고 범인 색출을 위한 제비뽑기에 들어가 마침내 요나단이 최종적으로 뽑혔다(40-42절).

 사울이 요나단에게 죄를 추궁하자 요나단이 말했다. “내 손의 지팡이 끝으로 꿀을 조금 맛보았지만 죽을 수밖에 없나이다.” 사울도 요나단이 죽어야 한다고 말했다(44절). 요나단은 사울의 금식 명령을 듣지 못했기에 그가 꿀을 먹은 것은 고의성이 없는 범죄였다. 그렇다면 속죄제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는데 속죄제 기회조차 주지 않고 요나단을 죽이려 한 것은 법을 내세워 정적을 제거하려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때 백성들의 간절한 탄원으로 요나단은 죽음을 면했지만 사울과 요나단 사이에는 미묘한 갈등상태가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 자신이 선물이 되라 >

 사울과 요나단의 갈등 문제는 오늘날 교회에서도 교회 리더들 사이에 많이 일어나고 있다. 어떻게 그런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가? 리더와 팔로워 모두가 권력욕을 극복해야 한다. 어느 공동체에 가든지 돈과 권력이 배제된 순수한 인간관계를 통해 복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일조하라. 무엇보다 내가 속한 교회에 깜짝 선물로서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음을 깨닫고 교우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물의 삶을 살라.

 명절 때 누군가로부터 생각지 못한 선물을 받으면 기쁘다. 자신이 공동체에 그런 선물이 되는 삶을 살면 그가 가는 곳마다 갈등은 줄고 화해가 넘치게 될 것이다. 그처럼 어디에 가든지 보탬이 되는 인생으로서 가는 곳마다 풍성함이 넘치게 하는 삶이 자신이 선물이 되는 삶이다. 그렇게 선물로 살려고 열심히 돈도 벌고 선한 영향력도 키우라.

 한 교단에서 목회자 재교육(연장교육) 2박 3일 프로그램을 시행하게 되었다. 교육위원장이 구체적인 계획안을 냈는데 교육 장소가 8인실, 6인실, 4인실 등의 숙소가 있는 수양관이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나이 든 목사 부부가 흩어져서 8인실 등에 머물게 한 그 계획안을 보고 한 교회 목사가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재정부와 상의해 교육 장소를 2인 1실의 호텔로 옮기도록 후원했다. 재정을 그런 곳에 쓰는 삶이 자신이 선물이 되는 멋진 삶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은 선물을 주고받는 삶이다. 물질만이 선물이 아니다.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고, 인정을 원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눈빛과 말을 건네주고, 묵묵히 땀 흘려 공동체 성장에 일조하고, 자연의 신음에 귀를 기울여 자연을 잘 관리하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 등이 다 선물이다. 지금은 갈등이 많은 시대다. 이때 주변에 유무형의 선물을 많이 주는 거룩한 산타클로스를 꿈꾸고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선물이 되어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복된 심령이 되라.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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