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버리라

[ 제임스 티소 : 예수님께 질문하는 바리세인들 ]



본문말씀 : 마태복음 5장 27-32절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31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3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 편견을 버리라 >

 이 세상에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면 이미 간음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평생 떳떳할 남자는 한 명도 없다. 결국 이 말씀은 자기 의를 자랑하지 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사람은 무엇인가 남보다 나은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나와 남을 가르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장벽으로 가르지 않고 장벽을 가로질러 사셨다. 가르는 편견의 장벽을 깨고 가로지르는 축복의 대로를 만들라.

 ‘자기 의를 자랑하는 삶’과 일란성쌍둥이와 같은 삶이 바로 ‘편견을 가지는 삶’이다. 왜 예수님은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면 빼어 내버리라.”라고 하셨는가? 남자들을 다 애꾸로 만들려고 그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이 지닌 깊은 의미는 편견의 눈으로 남을 바라보는 광어족이 되지 말라는 뜻이다. 즉 눈이 극단적으로 한쪽에 몰린 광어처럼 한쪽 면만 보고 편견에 사로잡혀 살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을 쉽게 규정하는 것은 사람을 쉽게 부정하는 것이다. 남으로부터 몇 마디 얘기만 듣고 어떤 사람을 규정했다가 실제로 그를 만나본 후 자신의 못난 편견을 부정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남을 쉽게 규정하지 말라. 남이 그렇게 할 만한 남모르는 사정이 있을 수 있다. 사람은 원래 나쁠 수도 있지만 설 자리를 잃거나 제 자리를 못 찾아서 나빠질 때도 많다. 그래서 편견을 힘써 버려야 한다. 편견은 복과 발전을 저해하는 제일 요소다.

 은혜와 축복을 원하면 편견을 버리는 훈련을 끊임없이 하라. 편견의 습관을 버리기 힘들면 의도적으로 좋은 편견을 습관화시키라. 사랑도 일종의 편견이지만 위대한 편견이다. 사랑만 들어가면 다 좋게 보이게 만든다. 사랑은 연인과 함께 걷는 청계천을 쎄느 강변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런 위대한 편견을 가지라. 잘못된 편견은 불행의 예고편이지만 위대한 편견은 행복의 예고편이다.

< 여성을 존중하라 >

 모세 율법은 아내를 버릴 때 이혼 증서를 써주라고 했다(31절). 그 율법은 원래 여인의 인권 보장을 위해 아내를 쉽게 버리지 말라는 의도로 제정되었지만 점차 남자의 편리한 도구로 역이용되어 이혼 증서 한 장 딸랑 써주고 아무런 위자료나 사후보장도 없이 아내를 쉽게 버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런 폐단을 막으려고 바리새인 중 보수적인 샴마이 학파는 이혼은 부정과 율법의 위반 때만 가능하다고 가르쳤다. 반면에 진보적인 힐렐 학파는 한 쪽에서 이혼 의사를 보이면 이혼을 허락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예수님의 교훈은 힐렐 학파의 교훈보다 샴마이 학파의 교훈에 더 가깝다. 그러나 실제로는 샴마이 학파보다 더 여성의 인격과 권리를 옹호한 교훈이었다. 즉 예수님이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는 것과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것을 다 간음죄라고 한 것은 결국 여성을 함부로 버리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처럼 간음하지 말라는 7계명을 재해석한 예수님의 말씀은 여성 존중 사상이 깊이 투영된 말씀이다.

 요새 여성들의 권익이 점차 향상되고 있다. 그 일을 이루는데 여권운동가들의 공헌도 있었지만 더욱 큰 공헌 주체는 ‘복음’과 ‘전쟁 없는 평화'이다. 전쟁이 없으면 자연히 여권은 신장된다. 그러다가 큰 전쟁이나 내란이 생기면 무서운 전쟁 폭력으로 여권은 그때부터 다시 무섭게 추락한다. 그래서 전쟁은 없어야 한다. 그런데 전쟁보다 더 없어져야 할 것은 이중 잣대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둘러싼 대중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라고 하셨다. 그 말씀도 간음한 여자는 끌고 오면서 상대 남자는 도망치게 놔둔 군중들의 이중 잣대를 질책한 말씀이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여권을 매우 중시하셨고 여성을 위해 헌신하셨다. 그래서 복음이 더 소중한 것이다. 그 예수님의 뜻과 삶을 따라 여성을 존중하고 더 나아가 버림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함부로 버리지 말고 존중해주라는 것이 예수님이 재해석하신 7계명에 담긴 깊은 교훈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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